[오늘과내일] 봄날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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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내일] 봄날 서신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24-04-14 10:10
  • 신문게재 2024-04-15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백낙천 교수
백낙천 교수
兄! 그간 평안했는지요? 마른 땅에 싹이 나고 처처에 목련꽃, 철쭉, 제비꽃, 라일락꽃들이 피어나는 4월은 시인 엘리엇의 절창대로 가장 잔인한 그러므로 기쁨과 생명을 소망하는 부활의 계절입니다. 엊그제는 완연한 봄을 알리는 비까지 내리더니 바야흐로 벚꽃 만개한 눈부신 시절이네요. 분분히 흩날리는 벚꽃 잎들 사이로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비치고 학생들의 환한 얼굴이 교정을 가득 채우는 젊음이 넘치는 축복의 봄날입니다. 신입생 모집으로 분주하게 시작된 올해였는데 이제 1학기의 반을 지나가고 있네요. 이렇듯 시간은 우리네 발걸음보다 늘 앞서가는 듯합니다.

兄! 돌아보니, 내가 '지금 여기'에 엄존하는 이유는 어느 시인의 헌사처럼 최후로 생각할 것을 생각하려는 사람들, 최후로 책임질 것을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인문학자요 국문학자라는 젊은 날의 생각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이러한 비장함이 엄혹하고 황량했던 시절을 의연하게 버티게 해주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兄! 돌아보니 내 삶 또한 크고 작은 인연의 견고한 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네요. 그중, 兄을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복되고 귀한 시간이었지요. 이런 저런 일에 책임을 맡아 동분서주하면서 갈피를 잡아가는 중에도 兄은 때마다 일마다 나에게 적절한 조언을 건네고 필요한 도움을 주었지요. 이후로도 크고 작은 일을 통해 兄과 좋은 인연을 맺어 온 것이 내게는 큰 행운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兄! 오늘날의 대학 현실이 녹록하지 않으며,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당연한 현실이 된지 꽤 되었으며, 와중에 오랫동안 학생들과 함께 해온 강좌들도 이제는 더 이상 종래의 목소리로는 버티기 힘들게 되었지요. 쓸모나 효율을 잃어가고 있는 듯한 손때 묻은 강좌가 간신히 폐강은 모면하더라도 남아 있는 학생들과 함께 한 한기를 버티는 것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게 되지요. 그래도 다행스럽고 고마운 것은 내 눈치를 보며 들어온 학생들이 종강 무렵에는 '고전(古典)의 가치를 고전(苦戰) 끝에 맛보는 것을 그들의 눈빛 속에서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기실 내가 학생들에게 남겨주려고 애쓴 것은 자신들의 삶에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자세였으니, 나는 학생들이 우리 사회 공동체의 순수 일원으로 마땅히 책임져야 할 것들을 책임질 수 있기를 가르치려고 했으며, 그리고 그 잠재적 원천이 인문학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했지요.



兄! 대학은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입시 지원율이 하락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은 나와 같은 처지의 지방대학 교수들에게는 참담한 심정과 함께 비장한 마음을 갖게 하지요. 대학 내부를 살펴보더라도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 후유증이 대학에서도 여전하여 이제 대학 교육은 '師弟同行'의 미덕이 사라져가는 황량한 분위기를 맞고 있고요. 이러한 때, 兄은 언제나 환한 미소와 함께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이 모든 것이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兄의 넉넉한 인품과 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兄! 나는 현실의 난관을 돌파하려고 애쓰는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이 시대의 '선생'으로서의 소임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러다 문득, 봄 햇살에 고개를 들어 창가를 바라보니 천진스러운 학생들의 모습이 정겨운 풍경으로 눈에 들어오네요. 이 시대의 우공을 꿈꾸는 학생들이 있기에 행복하며, 나 또한 그들과 함께 가고 있으므로 걸음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兄! 이제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이 글도 마치려고 합니다. 내 인생에서 마주한 은혜와 감사의 일들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 번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해 봅니다. 兄! 지금까지 늘 그러했듯이, 앞으로의 삶의 여정도 따뜻한 봄날처럼 포근하고 여유롭고 넉넉하기를 기원합니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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