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끝에 만난 나, 예술의 문이 열린다…이응노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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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끝에 만난 나, 예술의 문이 열린다…이응노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개최

4월 22일부터 6월 1일까지 '고독'을 주제로 현대미술 기획전 개최

  • 승인 2025-04-24 16:54
  • 신문게재 2025-04-25 10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2025 이응노기획전(포스터.F)-최종
이응노 기획전 '고독; 문이 닫히고, 또 다른 문이 열릴 때' 포스터./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외로움은 자신의 빈곤이고 고독은 자아의 풍요로움이다."

미국 시인 메이 사튼의 말처럼 고독은 단절이 아닌 충만일 수 있다.



이응노미술관의 기획전 '고독; 문이 닫히고, 또 다른 문이 열릴 때'는 창작의 여백 속에서 피어난 사유의 흔적들을 따라간다. 전시는 4월 22일부터 6월 1일까지 36일간 이응노미술관 본관 2·3·4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고독'이라는 감정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참여 작가들이 자신만의 예술세계 안에서 고독을 견디고, 돌파하며, 새로운 창작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그 과정을 포착한다. 김명주(도자, 회화), 김병진(회화), 김윤경숙(설치), 박운화(판화) 네 명의 작가가 총 30점의 작품을 통해 각자의 고독을 들려준다.



전시의 모티브는 이응노 화백이 감옥에서 겪은 내면의 고통이다. 1967년 동베를린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그는 'UNGNO LEE'(가나아트, 1994)에서 "옥중생활을 회고하고 내가 가장 고생했던 것은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간수마저 접근하지 않는 철문 뒤 그림 그릴 도구조차 허락되지 않은 독방에서 그는 깊은 고독과 마주했다.

하지만 그 고독은 그를 꺾지 않았다. 오히려 그 내면의 침묵은 다시 붓을 들게 했고, 사유를 새롭게 열어젖혔다.

이응노는 작업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대를 아쉬워하며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Oriah Mountain Dreamer, 1954~)의 시 '초대'에서 노래한 것처럼 확신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지나온 과거에 대한 회한, 그리고 슬픔과 절망이 뼈속까지 멍든 밤을 지나며 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고독의 흔적은 오늘날의 작가들에게서도 발견된다.

마음의 평정을 위해서는 내면의 고요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바로 '고독'이 그 일을 한다. 고독은 존재의 단절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활짝 열어젖히게 된다. 고독을 견뎌냈을 때 우리는 본래의 자기 자신과 조우하게 되며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기존 가치관의 강요를 피해 홀로 고요히 침전하는 것, 자신에게로 돌아가 '있는 그대로'의 실재와 만나며 묵묵히 묵언 수행하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 그들의 정원에 들어가 홀로 있음으로써 거두어 들인 결실을 보며 지친 마음과 걱정에 쌓인 마음에 평안을 찾을 수 있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4인은 각기 다른 주제와 매체를 통해 고유한 예술세계를 구축해 온 창작자들이다. 이응노 화백이 감옥에서 예술과 고독을 통해 느꼈던 내적 성찰과 고뇌는 오늘날 창작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 전시는 고독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현대 작가들이 이응노와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탐구한다. 관객들은 고독이 창작의 과정에서 영감과 사유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경험을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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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작가 프로필 사진./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2전시실에서는 김명주 작가와 김병진 작가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김명주 작가는 유약처리된 석기 조각으로 제작된 도자조각 '생각에 잠긴 두상 XI, XII'를 통해 반추상의 형상과 흐르는 유약의 질감을 결합해 몽환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생명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묻는 그녀의 작품은 침묵 속에서도 많은 말을 건넨다.

어둠속을뚫고가는마음의빛, 130.3x193.9cm, Mixedmedia, 2018
김명주 작가의 '어둠 속을 뚫고 가는 마음의 빛'(2018)./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김명주 작가는 한남대와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으며, 2008년부터 일본,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핀란드, 한국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2019년에는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6기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지역 예술계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다.

그는 지난 21일 열린 간담회에서 유럽에서의 창작 생활을 돌아보며 깊은 성찰을 나눴다. 김명주 작가는 "유럽에서 10여 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고독하게 살아도 되는 건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며, 프랑스 화가 오딜롱 르동의 저서 'A soi-meme'(나 자신에게)의 첫 구절을 인용해 "내가 혼자 있을 때 나는 큰길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나는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자유로운 걸음은 가볍고 내 몸은 내 정신이 방해받지 않도록 내버려 둔다. 정신은 이야기하고 사유하며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문장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문장을 읽으며, 마치 나의 고독이 면죄부를 얻은 듯한 위로를 받았다"며 "고독할 때 비로소 나를 표현할 수 있고, 나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을 때야말로 나다운 것을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프로필
김병진 작가의 프로필 사진./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같은 공간에서 김병진 작가는 LOVE LOVE LOVE 연작을 통해 평화에 대한 열망을 담는다. 전쟁의 상흔과 폭력을 거칠게 긁고, 칠하고, 지장을 찍는 방식으로 시각화한 그의 작업은 캔버스 위에서 증언처럼 서 있다. LOVE LOVE LOVE No. H-24034와 H-24068 두 작품은 수묵과 종이, 잉크의 질감을 극대화해 압도적인 에너지로 다가온다.

김병진 작가는 한남대 일반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일본, 중국, 프랑스, 미국, 몽골, 베를린 등 다양한 국가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2024년 대전 갤러리메르헨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22년에는 대전 갤러리고트빈TJB에서 전시를 열는 등 지금까지 총 36회의 개인전을 진행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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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작가의 'LOVE LOVE LOVE No.H-24081'(2024)./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전시에서 '전쟁과 인간성 상실'을 주제로 한 작품을 소개하며 "2014년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당시 한 여인이 히잡을 쓴 채 얼굴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 순간 내가 인류를 위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인간으로서 바라본 참혹한 상황이고 작품을 통해 '인간성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며 "작품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서명을 찍는 형식을 사용했다. 손 지장은 평화의 상징으로 이를 통해 모든 이가 평화를 위한 서명을 남기는 것처럼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쟁을 겪어서는 안 된다. 평화를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프로필
김윤경숙 작가의 프로필./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3전시장으로 이어지면 김윤경숙 작가의 설치작 '하얀 비명'이 맞이한다. 2014년작인 이 작품은 빨간 비닐 테이프와 전구를 조합해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환기시킨다. 개인적 기억이 사회적 맥락과 연결되는 지점을 포착하며, 고독을 넘어 연대로 향하는 길을 제시한다.

김윤경숙 작가는 목원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해 대전과 청주 등 지역 작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 2013년에는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에 선정되고, 2012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청년작가상을 받는 등 인정받고 있다.

하얀비명,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4
김윤경숙 작가의 '하얀 비명'(2014)./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사회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게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길을 고독하게 걸으며 거의 30년 가까이 작업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현실 속 감정의 단면들을 담아낸 것으로 이응노 미술관의 초대로 이런 자리에 설 수 있어 감사하다"며 "작품에는 '질문'과 '광장'의 모습을 담았다"고 전했다.

프로필
박운화 작가의 프로필./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마지막 4전시장에서는 박운화 작가의 판화작업들이 따뜻한 감정의 결을 전한다. 'Memento'(2022), '책상 위의 기억'(2020) 같은 작품은 에칭과 아쿠아틴트, 신콜레 기법을 활용해 일상의 잔상과 감정을 새긴다. 그의 작업은 조용히 응시하고 침묵 속에서 감정을 끌어올린다. 일상의 평범한 사물이 작가의 손을 거치며 시적 은유로 탈바꿈된다.

박운화 작가는 2009년 '내 안의 풍경, 책 속의 풍경'이라는 개인전을 시작으로 최근 2021년 '박운화 展'까지 충청 지역에서만 7번의 개인전을 열고 10번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또 그는 2020년 제18회 이동훈미술상 특별상을 수상하며 지역 미술인으로서 인정받은 바도 있다.

책상위의기억, 38×60×2cm, etching, aquatint, ,2020
박운화 작가의 '책상 위의 기억'(2020)./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21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간직해 왔다"며 "퇴직 후 비로소 하나 작업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매칭 작업에 처음 매료되었을 때의 인상이 깊게 남아 있다"며 현재는 오랜 시간 간직해온 개인적인 이야기와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들을 주제로 소소한 장면들을 작업에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판화 작업은 2009년부터 시작해 어느덧 15년이 됐는데, 여전히 새로운 표현 방식이 생겨나서 매번 놀라고 그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고 말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내 안에 오래 묵혀 있던 이야기들을 꺼내는 작업이자 고요하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이갑재 이응노미술관장은 "이번 기획전은 고독이라는 감정을 예술적 언어로 전환하며, 과거의 이응노 화백과 현재 작가들 간의 시간적 연대를 잇는 자리"라고 밝혔다. 그는 "시대는 달라졌지만 예술가들이 마주하는 내면적 갈등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관객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고독을 창조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얻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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