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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
AI 에이전트 시대를 맞아 글로벌 AI 판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소수 빅테크 기업의 기술 독점 시대를 지나, 이제는 얼마나 많은 연구자와 개발자가 AI 혁신에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느냐가 곧 국가 경쟁력이다. 인공지능이 국가 산업, 과학,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가 된 지금, AI 연구와 개발에 필요한 자원은 전기나 도로처럼 누구나 사용 가능한 공공재가 돼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 미국이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10개 연방 기관과 25개 AI 산업계 및 비영리 파트너들과 함께 2024년 초 본격 출범시킨 NAIRR(National AI Research Resource) 파일럿은 정부와 민간의 컴퓨팅 자원, 고품질 데이터셋,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교육 프로그램 등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한 국가 전략이다. AI 연구의 접근 장벽을 낮추고 국가 AI 인프라에 대한 민주적 접근을 목표로 하는 AI 기술 민주화 운동이다.
국가 AI 컴퓨팅센터는 2025년 말 가동을 앞두고 있다. 1.5조 원 규모의 추경으로 확보된 1만 개의 H200, B200 GPU는 민간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 우선 배치되며, 공공 51%, 민간 49% 지분의 특수목적법인(SPC)이 운영을 맡으며 향후 국가 AI 컴퓨팅센터에 완전 이관 예정이다. 이 센터는 '월드 베스트 언어모델(WBL)'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한국산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의 거점이 될 것이다.
KISTI 슈퍼컴퓨터 6호기는 2026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구축 중이다. 600페타플롭스의 연산 성능을 갖춘 이 시스템은 세계 10위권 슈퍼컴퓨터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GH200 GPU는 HPC 워크로드와 AI 학습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AI+과학기술' 융합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GH200 기반 월드클래스 슈퍼컴퓨터로 독일 율리히 슈퍼컴퓨팅센터의 '주피터'(24000개 GPU), 스위스 국립슈퍼컴퓨팅센터(CSCS) '알프스'(10752개 GPU) 등이 구축되고 있어, 한국도 이들 센터와의 글로벌 AI 연구 협력에 적극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시스템의 진정한 가치는 개별 성능보다 상호 보완적 시너지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를 하나의 통합 인프라 생태계로 묶고, 연구자 누구나 목적에 맞는 자원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한국형 NAIRR', 곧 KAIRR(가칭, Korea AI Research Resource)이다. KAIRR는 단일 포털을 통해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 목적과 필요한 자원을 요청하면, 최적의 컴퓨팅 자원과 사용하기 쉬운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SPC에서 학습된 모델을 KISTI-6에서 과학적 분석에 활용하거나 KISTI-6에서 생성된 과학 데이터를 SPC에서 AI 학습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도 필요하다.
또한 KISTI가 보유한 과학기술 데이터와 국가 AI 컴퓨팅센터의 AI 학습 데이터, 공공 및 민간의 오픈 데이터셋을 정제해 데이터 허브로 제공하고 다양한 사전 학습 모델과 개발자가 공유할 수 있는 모델 저장소를 운영해야 한다. GPU 활용법, 대규모 모델 훈련 기법 등 실무 중심 교육 프로그램과 연구소·대학·기업과 연계한 인턴십과 멘토링 프로그램도 필수다.
학계, 산업계, 연구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원 배분 위원회를 통한 공정하고 투명한 자원 분배 기준 마련이 성공의 열쇠다. 이러한 통합 운영 전략은 국가 AI 컴퓨팅 자원의 효율적인 접근을 통해 중소기업, 스타트업, 대학 연구자 모두가 혁신적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AI 민주화를 실현할 것이다. 국가 AI 인프라의 미래는 단순한 GPU 확보에 있지 않다. 누구나 혁신에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 KAIRR는 그 시작점이자, 우리가 지금 설계해야 할 미래 전략이다. 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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