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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피델리스(Saint Fidelis)는 가톨릭에서 매우 존경받는 성인 중 한 분이다. 성 피델리스는 믿음의 충실함을 상징하고, 이름 그대로 '항상 신앙에 충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피델리스'는 라틴어로 믿음과 성실, 충실함을 뜻한다. 1577년 독일 지그마링겐에서 출생한 성 피델리스는 젊은 시절에는 법률가로 활동했고, 정의롭고 청렴한 판결로 유명했다. 그러나 세속적 성공보다 신앙과 봉사의 삶을 택해, 프란치스코회 계열인 카푸친 수도회에 입회했다. 수도사로서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개신교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 활동을 하다가, 1622년 반가톨릭 세력에 의해 스위스 그루뷘덴에서 순교했다.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1746년에 성인으로 시성했다. 성 피델리스는 특히 법조인, 병사, 선교사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법조인 출신답게 성 피델리스가 세례명인 이상민 전 국회의원이 10월15일 선종하던 날 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대학 3년 후배인 이 전 의원 부인 손을 맞잡고 위로하면서 함께 많은 눈물을 흘렸다. 대학 10년 선배 학연에, 같은 엑스포아파트 주민으로 30년을 넘게 살았으니 지연까지 깊은 셈이다. 이 전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 변호사시절부터 우리 신문에 법조인 칼럼을 쓰는 인연으로 알고 지냈으니 인연의 끈이 제법 긴 편이다. 내가 아는 이 전 의원은 바른 소리, 곧은 소리 이전에 유머 감각이 매우 탁월한 분이어서 이 전 의원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요절복통하는 일이 많았다. 매주 토요일 밤 TV 조선의 정치 토크쇼 ‘강적들’은 이 전 의원이 출연할 당시 가장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으로 기억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할 말은 하고 보는 강직한 성격의 이 전 의원이 전하는 직설적인 정치비평은 톡 쏘는 사이다보다도 시원했다. 최고 권력자에 대해서도 쓴소리과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그의 용기를 높이 사고 박수를 보냈다. 평생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추구한 이 전 의원을 추모하고 편안한 영면을 기원하는 추모 행렬이 줄을 이었던 것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정치인을 다시 만나기 쉽지 않다는 아쉬움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와 동행해 여러 차례 성지순례를 함께 다녀오신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님이 대전평화방송 사장 신부 임기를 마치고 천안 신부동 성당 주임신부로 가 계실 때 이상민 전 의원이 김정수 신부님을 찾아뵙고 소중한 인연을 이어왔다고 한다. 김정수 신부님은 이 전 의원에 대해 항상 가까이 곁에서 좋은 일에 격려를 보내주신 의원님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정수 신부님 초대로 이 전 의원과 함께 세종시의 어느 가톨릭신자분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함께 한지 몇 달 안 되는데 이 전 의원은 김정수 신부님께 와인을 선물로 드리고 그날 점심값도 계산했다. 가톨릭 신앙을 가지신 분이라 신부님을 남달리 섬기셨던 것 같다. 필자에게도 잊지 못할 고마운 추억이 있다. 4년 전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 제목을 ‘허위조작정보 규제에 관한 연구’로 정하고 전문가 14분을 심층인터뷰해 분석하는 논문을 쓰게 됐는데 그때 당시 3선 의원이던 박광온 전 의원이 페이크뉴스 관련 법안을 가장 많이 발의했던 의원이었다. 그래서 5선 의원이던 이 전 의원이 박 전 의원을 소개시켜 주셔서 국회에 가 박 전 의원을 만나 심층인터뷰를 진행하고 논문을 완성시켰던 일화가 있다. 사적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다정다감하셨고 늘 재치있는 유머로 웃음을 주신 분이었고, 공적으로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꾸짖으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위해 가장 용감하게 목소리를 낸 멋진 정치인이셨다.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온 이 전 의원은 필자의 동네인 유성구 전민동에서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에 입성한 뒤 21대까지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전 의원은 한국 천주교회가 추진해온 사형 폐지 운동을 주도해왔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주장해왔다. 이 전 의원의 유머러스한 발언은 종종 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유머 감각은 '쓴소리'와 같은 직설적 발언과 함께 정치적 인물로서의 이미지를 더 친근하게 만들었다. 정치적 혐오와 불신이 높은 현대 정치에서 탁월한 유머로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역할을 했던 '미스터 쓴소리'. 직설적이고 냉철한 비판으로 진영을 넘어 국민 우선의 정치, 대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자세로 평가받았던 이 전 의원이 하늘나라에서 편히 영면하시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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