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단골 식당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단골 식당

방원기 경제부 차장

  • 승인 2025-12-29 10:53
  • 수정 2025-12-29 10:55
  • 신문게재 2025-12-30 18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방원기 증명사진
방원기 경제부 차장
밥 한 끼 하자는 말에 원도심 골목으로 들어섰다. 좁은 길을 한참 헤매다 간신히 주차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성인 두 명이 어깨를 접어야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골목을 지나 조금 걸어가니 만나기로 한 식당이 나왔다. "이런 곳에 식당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어 머쓱한 인사를 건네고 앉자 찬이 일사불란하게 깔린다. 김치, 콩나물무침, 깻잎장아찌, 계란말이 등등. 밥은 갓 지은 듯 김이 모락모락 난다. 이 집의 메인인 국이 나오고 식사가 시작됐다. 40줄이 다 되어가니 자극적이지 않은 이런 음식이 좋다. 욕심을 내 공깃밥을 하나 더 주문한다. 한참을 먹자 마무리로 주인장이 숭늉을 내어준다. 오래간만에 맛있는 식당을 찾았노라 앞자리 앉은 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식당 곳곳에서 주인장과 오랜 단골인 듯한 어르신들의 얘기가 귀에 들어온다. SNS를 타고 맛집이라 불리는 여러 식당에만 포커스가 맞춰지는 요즘, 이런 식당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대전 토박이라 자부하는 나도 처음 본 식당이니 어르신에게만 입소문을 탄 식당일 것이다.

"지난번 싸준 김치 잘 먹었어, 오래 장사해줘." 머리가 백발인 노신사는 주인장에게 말했다. "하는 데까지는 해보겠는데 영 손님이 적어져서 말이야." 주인장은 말끝을 흐렸다. "사람만 많으면 더 할 텐데, 올해는 유독 춥네." 주름진 손으로 빈 반찬 그릇을 치우며 행주로 식탁 물기를 훔치는 주인장의 말에 유난히 힘이 빠졌다.



자영업자들에게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생계를 유지하는 마지막 수단이 사라지고 있다.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가 발표한 '대전지역 자영업 현황 및 잠재 리스크 점검' 보고서를 보면, 감소세를 지속하던 대전지역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최근 도·소매업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2024년 기준 대전 자영업자의 폐업률은 10.39%로, 전국 평균(9.5%)을 뛰어넘는다. 전국 7대 특·광역시 중에서 울산(10.42%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업종별로 보면 음식숙박업 19.4%, 도소매업 18.0%, 개인 서비스업 11.6%, 건설업 9.4%, 운수창고업 8.4%, 제조업 6.8% 순으로 폐업률이 높다.

어쩌면 수많은 단골과 일상의 시시콜콜함을 공유하던 이 식당도 폐업의 길로 들어설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단골이라 여기던 식당이 어느 순간 사라지는 모습을 이따금 경험한다. 나의 점심을 책임져주고, 내부를 집처럼 훤히 꿰고 있던 옛 단골 식당을 떠올리니 이곳도 하나의 추억으로 사라질까 괜스레 가슴이 뭉클하다. 백발의 노신사의 유일한 말동무일지도 모르는 이 식당을 더 자주 애용해야겠다. 내 집 드나들 듯 간단한 안부와 덕담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건네는 내 단골 식당도 더 찾아야겠다. 지역 경제 활성화는 어려운 게 아니다.
방원기 경제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양주시, 옥정물류창고 2부지 사업 취소·용도변경 양해각서 체결
  2. 노희준 전 충남도정무보좌관,'이시대 한국을 빛낸 청렴인 대상'
  3. 천안시농업기술센터, 2026년 1~2월 새해농업인실용교육 추진
  4. 천안법원, 토지매매 동의서 확보한 것처럼 기망해 편취한 50대 남성 '징역 3년'
  5. 천안문화재단, 2026년 한 뼘 갤러리 상반기 정기대관 접수
  1. [독자칼럼]센트럴 스테이트(Central State), 진수도권(眞首都圈)의 탄생
  2. 대전 아파트 화재로 20·30대 형제 숨져…소방·경찰 합동감식 예정
  3. 천안중앙도서관, '1318채움 청소년 놀이터' 운영
  4. 은둔고립지원단체 시내와 대전 중구 청년센터 청년모아 업무협약
  5. 백석대학교 물리치료학과, 성장기 아동 척추 건강 선제적 관리 나서

헤드라인 뉴스


성착취 피해 호소 대전 아동청소년 크게 늘어…"기관간 협력체계 절실"

성착취 피해 호소 대전 아동청소년 크게 늘어…"기관간 협력체계 절실"

<속보>대전에서 청소년이 성착취 범죄 피해자가 되는 사건이 18세 이하 전 연령에서 증가 추세이며, 대전경찰이 파악하는 사건에서도 저연령화가 뚜렷한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들의 이러한 피해는 남성에게도 발생하는 중으로, 경찰과 교육청, 아동청소년지원센터의 통합적 대응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중도일보 12월 15일자 6면 보도>대전경찰청이 '대전지역 성착취 피해청소년 지원체계 현황 및 대안' 토론회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2024년 대전에서 아동·청소년(18세 이하)에게 접근해 성착취물 제작과 배포, 대화 등의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대전·충남통합 추진 속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경쟁 `3자 구도`로
대전·충남통합 추진 속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경쟁 '3자 구도'로

대전·충남통합 추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경쟁이 3파전으로 재편된다. 출마를 고심하던 장종태 국회의원(대전 서구갑)이 경쟁에 뛰어들면서다. 기존 후보군인 허태정 전 대전시장과 장철민 국회의원(대전 동구)은 대전·충남통합과 맞물려 전략 재수립과 충남으로 본격적인 세력 확장을 준비하는 등 더욱 분주해진 모습이다. 장종태 국회의원은 29일 대전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그동안 장 의원은 시장 출마를 고심해왔다.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며 민주당의 대전·충청권 지방선거 승리를 견인해야 한..

정부 개입에 원·달러 환율 1440원대 진정세… 지역경제계 "한숨 돌렸지만, 불확실성 여전"
정부 개입에 원·달러 환율 1440원대 진정세… 지역경제계 "한숨 돌렸지만, 불확실성 여전"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원·달러 환율이 정부의 본격적인 시장 개입으로 1440원대로 내려앉았다. 지역 경제계는 가파르게 치솟던 환율이 진정되자 한숨을 돌리면서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며 우려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8일 금융시장과 지역 경제계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의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1440.3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4일 1437.9원 이후 약 한 달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환율은 지난주 초 1480원대로 치솟으며 연고점에 바짝 다가섰으나, 24일 외환 당국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