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장-보문산과 소유의 욕망

  • 문화
  • 문화/출판

[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장-보문산과 소유의 욕망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2-09 15:16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 도심에 자리한 보문산은 수많은 문화유산과 생태자원을 품은 시민들의 대표 휴식처입니다. 삶과 가까이 있기에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그 품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또한 풍성하지요. 오늘은 보문산이라는 이름에 얽힌 유래 중 하나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옛날 마음씨 착한 동생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준 대가로 무엇이든 끊임없이 나오는 요술주머니를 얻게 되었습니다. 욕심 많은 형이 가만 있었을리 없지요, 소식을 들은 즉시 찾아와 동생의 주머니를 빼앗으려했고, 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때 주머니가 땅에 떨어졌는데 형이 발로 밟는 순간 흙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주머니 안에서는 끝임없이 흙이 쏟아져 나왔고, 마침내 거대한 산을 이루었지요. 이후 사람들은 보물주머니가 묻힌 산이라해서 보물산이라 불렀고 이후 보문산이 되었다고 하네요.



보문산 전설에 나오는 요술주머니는 신화에서 '풍요의 뿔'이라 불리는 상징의 변용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풍요의 뿔은 제우스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됩니다. 아기 제우스에게 젖을 먹여 키웠던 암염소 아말테아의 뿔이 부러졌을 때, 제우스는 감사의 뜻으로 그 뿔에 원하는 음식이 무엇이든 솟아나게 하는 힘을 부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양 미술과 조각에서 과일과 꽃이 넘쳐흐르는 뿔의 형상으로 등장하는 풍요의 뿔이지요.

동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징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넣으면 계속해서 나오는 화수분 항아리나, 휘두르면 보물이 쏟아지는 도깨비방망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요술 주머니 등이지요. 이 모든 도구는 굶주림과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이야기들은 늘 경고합니다. 풍요의 도구가 탐욕과 만나는 순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변한다는 사실을요.



이 경고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프리기아의 미다스 왕입니다. 미다스는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있던 한 노인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 노인은 다름아닌 풍요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스승이었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소원을 물었고, 그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축복처럼 보였던 소원은 곧 저주가 됩니다. 배고픔을 달래려 집어 든 빵이 황금이 되고, 갈증이 나서 먹으려던 물은 금빛으로 굳어버립니다. 위로하며 손을 잡는 딸마저 황금 동상으로 변하고 말았지요.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미다스는 다시 디오니소스에게 도움을 구하고, 팍톨로스 강에서 몸을 씻으며 참회한 뒤에야 비로소 마법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소유의 욕망은 물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구약 성서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보문산 전설의 형제와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제물을 축복하자, 형 카인은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혀 동생을 죽이고 맙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혹은 타인의 인정을 독차지하기 위해 상대를 견제하는 시기심은 형제마저 없애버릴 만큼 무서운 것이었지요.

세월이 흘러 요술주머니가 만들어냈다는 거대한 흙더미 위에는 나무가 자라고 길이 놓여 시민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보문산의 숲길은 경쟁과 소유에 지친 인간의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며, 가지지 않아도 충분한 상태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지요. 아직도 보문산 어딘가에 묻혀 있을 요술주머니는 이제, 흙이 아니라 공존과 휴식이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요술주머니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더 많이 가지려 애쓰지만 때로는 그 주머니에서 쏟아지는 무게에 짓눌리기도 하지요. 보문산을 찾고, 즐기고,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소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진정한 소유란 내것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더불어 함께 누리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요. 풀꽃 하나, 흙 한 줌 내 것으로 취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보문산의 주인이며, 그 넉넉한 품이 내어주는 자리에서 보물같은 즐거움들을 만끽하고 있으니까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최종
한소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황종헌 전 수석, "36년간 천안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순간"
  2. 양승조 "충남에서 검증된 실력 통합특별시에서 완성"
  3. 대전시 설 연휴 24시간 응급진료체계 가동
  4. 대전경제 이정표 '대전상장기업지수' 공식 도입
  5. 대전 중구, 설연휴 환경오염행위 특별감시 실시
  1. 추워도 즐거운 물놀이
  2. 대전 서구, 2년 연속 민원서비스 종합평가 '우수'
  3. 대전 대덕구, 청년 창업자에 임대료 부담 없는 창업 기회 제공
  4. 대전시 2026년 산불방지 협의회 개최
  5. 대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부활할까 "검토 중인 내용 없어"

헤드라인 뉴스


법무부 세종 이전 탄력받나… “이전 논의에 적극 응할 것”

법무부 세종 이전 탄력받나… “이전 논의에 적극 응할 것”

세종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미이전 중앙행정기관의 이전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가 세종 이전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간 신중론에 치우쳤던 법무부의 입장이 '논의에 적극 응하겠다'는 태세로 돌아서면서 이전을 위한 특별법 개정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법무부는 6일 일부 언론 보도의 해명자료로 법무부의 세종 이전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 자료를 통해 법무부는 "향후 이전 방안 논의 시에 국가균형성장을 고려해 적극 응할 것임을 알려드린다"며 이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간 세종 이전에 대한 법무부의 방..

김태흠 충남지사·김영환 충북지사 같은 날 국회 기자회견 왜?
김태흠 충남지사·김영환 충북지사 같은 날 국회 기자회견 왜?

국민의힘 소속인 김태흠 충남도지사와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9일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행정통합을 비판하며 ‘국회 특별위원회 구성’과 ‘충청북특별자치도법’ 제정을 촉구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을 대동해 행정통합 논의과정에서 배제되고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충북은 대전·충남과 엄연히 다르다며 특별법안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태흠 지사는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성일종 의원(충남 서산·태안)과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국회 행안위 공청회에 참여하려 했으나 끝내 배제됐다”며 “(..

설 앞두고 대전 농산물은 안정세지만, 축산은 계란·한우 등 강세
설 앞두고 대전 농산물은 안정세지만, 축산은 계란·한우 등 강세

설 명절을 앞두고 배추·무와 과일 등 농산물 가격은 안정세를 보이지만, 한우와 계란 등 축산물 가격은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에 따르면 6일 기준 대전 배추 한 포기 소매 가격은 4993원으로, 1년 전(4863원)보다 2.67% 인상된 것으로 집계됐다. 대전 무 가격도 한 개에 1885원으로, 1년 전(2754원)보다는 31.55% 내렸고, 평년(1806원)에 비해선 4.37% 올랐다. 평년 가격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가격 중 최대·최소를 제외한 3년 평균치다. 2025년 한때 작황 부진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추워도 즐거운 물놀이 추워도 즐거운 물놀이

  • 가족과 함께 하는 세대공감 예절체험 가족과 함께 하는 세대공감 예절체험

  • 취약계층을 위한 설맞이 사랑의 온정 나눔 취약계층을 위한 설맞이 사랑의 온정 나눔

  • 국민의힘 대전시당, ‘졸속통합, 차별통합 중단하라’ 국민의힘 대전시당, ‘졸속통합, 차별통합 중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