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칙적 찬성, 현실적 반대"라는 말의 함정

  • 오피니언
  • 여론광장

[기고] "원칙적 찬성, 현실적 반대"라는 말의 함정

소순창/건국대 교수, 전 한국지방자치학회장

  • 승인 2026-03-05 11:07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 지자체 통합 등 행정개혁의 역사에서 완벽한 합의와 완벽한 제도 설계가 먼저 이루어진 뒤 개혁이 시작된 사례는 거의 없음
- 대부분의 제도 변화는 정치적 결단과 제도적 보완이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짐
- 일부 전문가 담론은 통합 논의가 정치권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당성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함
- 정치가 개입했기 때문에 문제다라는 접근은 현실 정치와 정책 형성 과정의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해석일 수 있음
- 정책 변화는 언제나 특정한 정치적·사회적 조건이 맞물릴 때 가능함
- 현실 정치와 정책 실행의 제약 속에서 더 나은 설계와 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음

소순창
소순창 교수
최근 시·도 통합 논의가 확산되면서 학계와 전문가 집단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원칙적으로는 통합에 찬성하지만, 지금의 절차와 방식에는 반대한다." 언뜻 보면 매우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표현이 때로는 책임을 회피하는 안전한 위치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닌, 가장 비판받기 어려운 위치이기 때문이다. 통합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현실의 추진 방식에는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는 학문적 논의로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책 현실 속에서는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통합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절차의 완성인가, 재정 구조의 확정인가, 주민 합의의 완전한 일치인가.'

이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수준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논의는 언제나 더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자체 통합 등 행정개혁의 역사에서 완벽한 합의와 완벽한 제도 설계가 먼저 이루어진 뒤 개혁이 시작된 사례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제도 변화는 정치적 결단과 제도적 보완이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 담론은 통합 논의가 정치권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당성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주요 국가 구조 변화는 대부분 정치적 의제에서 출발했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도 그랬고, 특별자치도나 특별자치시 역시 정치적 결단 속에서 시작되었다.

'정치는 문제를 제기하고 방향을 설정한다. 행정은 제도를 설계하고 실행한다. 학계는 이를 분석하고 보완한다.' 이 세 영역이 분리된 채 작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정치가 개입했기 때문에 문제다"라는 접근은 현실 정치와 정책 형성 과정의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해석일 수 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점은 정책 '기회의 창'이다. 정책 변화는 언제나 특정한 정치적·사회적 조건이 맞물릴 때 가능하다. 이러한 기회의 창은 오래 열려 있지 않다. 정치 환경이 바뀌면 논의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반대나 유보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일 것이다. "지금 방식은 문제다"라는 주장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학계의 역할은 정책 추진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 정치와 정책 실행의 제약 속에서 더 나은 설계와 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충청권 통합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이 논의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왜곡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 정치 속에서만 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외면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다. 통합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식으로 통합을 설계하는 것이다.

정책 논쟁이 원칙의 언어에 머무를 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현실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설계와 선택의 언어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칙적 찬성과 현실적 반대 사이의 안전한 위치가 아니라, 충청의 미래를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소순창/건국대 교수, 전 한국지방자치학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새 학기 첫날, '파업' 공무직 일단 웃으며 시작… 다음주 급식 파업 가능성도
  2. 택배 물류센터 직원이 41차례 택배 절취 '징역형'
  3. 대전 진보교육감 단일화 성광진·강재구 2인으로 진행… 30일 단일화 후보 발표
  4. 충남 하천·계곡 불법 점용시설 뿌리 뽑는다
  5. 'BRT-지하철-CTX' 삼각축, 세종시 대중교통 혁신 약속
  1. [제60회 납세자의날 기념식 성료] 대전지역 납세현장 곳곳 '감사의 물결'
  2. [사설] 행정통합 '무산' 아직 선언할 때 아니다
  3. '황종우 해수부장관' 후보에 쏠린 기대...현안 매듭 푼다
  4. 충남교육청, 충남 온돌봄 운영 현장 점검
  5. 국립대전현충원 3월 이달의 영웅 '아나키스트 원심창'

헤드라인 뉴스


[기획시리즈-3] `금강수목원 국유화`가 답… 지선 이슈 부각

[기획시리즈-3] '금강수목원 국유화'가 답… 지선 이슈 부각

중부권 최대 규모 공립수목원으로 33년간 지역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세종시 금남면 '금강수목원'. 그러나 지난해 7월 이후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 수개월째 정적에 휩싸여 있다. 수목원 내 충남도 산림자원연구소의 청양군 이전이 확정되면서다. 행정구역은 '세종시', 소유권은 '충남도'에 있는 모순을 풀 열쇠는 결국 이 곳의 산림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현재 충남도가 민간 매각 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지역사회에서는 난개발을 우려하며 '국유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중도일보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폐원 후 금강수목원의..

5일 6·3 지방선거 공직자 사퇴시한 금강벨트 출렁
5일 6·3 지방선거 공직자 사퇴시한 금강벨트 출렁

6·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공직자의 사퇴 시한을 코앞에 두고 여야 최대 격전지 금강벨트가 출렁이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등 충청 출신 또는 충청권에서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인사들의 출격 여부에 충청권 판세가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4일 대전선관위 등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6·3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공직자는 선거 90일 전인 5일까지 직을 사퇴해야 한다. 우선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충남 아산이 고향으로 3선 의원 출신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그는 통합특별시장 유력 후보..

“국힘과 이장우 시장·김태흠 지사는 행정통합 입장을 정하라”
“국힘과 이장우 시장·김태흠 지사는 행정통합 입장을 정하라”

더불어민주당 충남대전 통합 및 충청발전특별위원회는 4일 “국민의힘과 대전·충남 단체장은 행정통합에 대한 일관성 있는 입장을 정하라”고 촉구했다. 특위는 이날 논평을 내고,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은 대전·충남 통합법안에 대해 '20조원 규모의 지원 방안이나 재원 마련 방식, 교부 기준이 누락되었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밝혔다. 특위는 “국힘이 필리버스터까지 중단하며 처리를 촉구했던 대구·경북 통합법 역시 20조원 규모의 지원 방안 등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어린이보호구역 과속 금지 어린이보호구역 과속 금지

  • 3.8민주의거 역사적 의미 살펴보는 시민들 3.8민주의거 역사적 의미 살펴보는 시민들

  • ‘더 오르기 전에…’ 붐비는 주유소 ‘더 오르기 전에…’ 붐비는 주유소

  • 즐거운 입학식…‘반갑다 친구야’ 즐거운 입학식…‘반갑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