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골 때리는 인문학'-축구를 읽다가, 결국 사람을 읽게 되는 책

  • 전국
  • 광주/호남

[서평] '골 때리는 인문학'-축구를 읽다가, 결국 사람을 읽게 되는 책

  • 승인 2026-03-19 14:03
  • 이정진 기자이정진 기자
KakaoTalk_20260318_103241022
골 때리는 인문학 책 표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축구를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 그리고 곧이어 이런 확신이 따라왔다. "이 책은 축구 이야기보다는 축구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다."

'골 때리는 인문학: 축구로 읽는 40가지 삶의 지혜'는 K리그 선수 출신이자 스포츠사회학자인 명왕성 교수(한신대학교 특수체육학과)가 써 내려간 인문교양서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축구 인문서'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책에서 축구는 주제가 아닌 방법이기 때문이다. 목적은 더 분명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 관계, 윤리, 그리고 사유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다.



▲축구라는 가장 생생한 삶의 텍스트

저자는 축구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축구 장면을 읽는다. 골목 축구에서 시작해 노 룩 패스, 마르세유 턴, 팬덤, 이적 논쟁, 골 세리머니, 데이터화된 선수의 몸까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질문하지 않았던 장면들에 인문학적 조명을 비춘다.

이 책의 강점은 추상적 이론을 축구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철학과 사회이론은 언제나 장면 뒤에서 조용히 작동하며, 독자는 개념을 외우는 대신 이해하게 된다. 하이데거의 '지금-여기', 장자의 '물아일체', 칸트의 윤리, 벤야민의 아우라가 축구라는 언어로 번역될 때, 인문학은 갑자기 살아 있는 감각이 된다.



▲읽히는 인문학, 그러나 가볍지 않은 질문

'골 때리는 인문학'은 대중적으로 잘 읽힌다. 문장은 명확하고 장면은 생생하며 장마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리듬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는 매 장이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경쟁 속에서 품격은 가능한가. 기술과 자본의 시대에 인간다움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는가.

특히 선수 이적을 둘러싼 도덕적 딜레마, 팬덤의 열광과 배제, 알고리즘과 함께 뛰는 인간의 문제를 다룬 장들은 우리 사회의 구조를 정확히 겨냥한다. 축구장은 현대 사회의 본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임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경험과 사유가 만날 때 생기는 신뢰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저자의 위치다. 명왕성 교수는 축구를 이론으로만 아는 사람도, 현장 경험만 가진 사람도 아니다.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누볐고, 연구자로서 개념을 다뤄온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균형감'이 있다.

경험은 과장되지 않고 이론은 과시되지 않는다. 사례는 대부분 저자가 실제로 만난 사람과 겪은 사건에서 출발한다. 그 덕분에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이건 책상 위에서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는 신뢰를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이것은 누구나 흉내 낼 수 없는 저자만의 고유한 자산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책

'골 때리는 인문학'은 축구 팬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넓은 독자를 향한다. 성과와 효율, 속도와 경쟁에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은 묻는다. 마지막으로 온몸으로 몰입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우리는 아직 함께 뛰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

이 책은 인문학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 보여준다. 축구라는 가장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문화 속에서 인문학은 삶을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도구가 된다.

'골 때리는 인문학'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축구를 더 깊이 사랑할 이유를 주고,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인문학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확신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한국 사회와 경쟁과 분열, 기술과 불안 속에 있는 우리에게 "함께 뛰며 생각하는 삶은 가능하다"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메시지를 건넨다.

이 책은 분명히 말해도 좋다. 올해 가장 설득력 있게 '인문학의 현재'를 보여주는 책 중 하나다.

광주=이정진 기자 leejj0537@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영화·드라마' 촬영 명소로 간다
  2. 아산시 어의정로 교차점 광장 준공
  3.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4. 두 자녀 태우고 만취운전 30대 사고까지…여름철 엄격 단속 필요
  5. K리그 휴식기, 대전 서포터즈는 '청소' 중?… "승리의 기운을 줍습니다"
  1. 창업기업 74곳에 최대 4억원 '대전 창업기업 들썩'
  2.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3.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4. 천문연구원, 희귀 왜소신성 발견…공전주기 짧아 중요 연구대상
  5. 대전 보건소 인력부족에 '허덕'…전국 광역시 중 가장 적어 보건의료 '빨간불'

헤드라인 뉴스


삼전닉스 호남 투자 가시화…충청은 생색내기용 전락

삼전닉스 호남 투자 가시화…충청은 생색내기용 전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에 수백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생산기지 구축에 나설 것이 유력해지면서 충청권은 곁다리 투자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충청권의 경우 두 기업이 막대한 고용창출 등이 기대되는 대규모 생산 라인이 아닌 AI데이터센터 건립으로 기우는 모양새인데 이럴 경우 지역 경제 파급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코스피 시총 투톱으로 글로벌 메모리 업체인 두 기업이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지역균형 발전 정책에 부응하려면 충청권에도 생색내기 용이 아닌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정치권과..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 2030년 하반기로 늦어진다"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 2030년 하반기로 늦어진다"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이 2030년 하반기로 지연된다고 대전시가 공식 인정했다. 당초 2028년 개통보다 2년여가 더 늦어지는 것으로, 주요 공정 리스크와 차량 시운전 계획 반영 등을 이유로 꼽았다. 유득원 대전시 행정부시장은 23일 대전시청 기자회견장에서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관련 브리핑을 갖고 "향후 통합공정 계획 수립을 통해 개통 일정 등을 최종 확정할 것"이라면서 개통 지연을 공식화 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은 총연장 38.8㎞, 정거장 45곳, 차량기지 1곳 규모로, 2024년 12월 착공해 현재 본선 14개 전..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② ‘생산성을 넘어 브랜딩을 창출하라’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② ‘생산성을 넘어 브랜딩을 창출하라’

대전 중구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와 정동 인쇄거리, 원동 한복거리 등 과거 대전을 상징하던 유서 깊은 산업 자산들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자구책 마련을 위해 붙여진 특화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급격한 산업 구조 변화와 유통 시스템 현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간 채 존폐의 기로에 서면서다. '생산의 효율화'란 거대한 산업 발전 흐름이 오늘날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를 장악하고 있지만, 지역의 고유한 숨결과 정체성이 담긴 전통산업의 흔적이 미래세대에 적절히 계승돼야 마땅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낡은 산업의 미래를 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문창동 화재피해 복구 돕는 손길 문창동 화재피해 복구 돕는 손길

  •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월드컵 응원 고조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월드컵 응원 고조

  •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