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농사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고령 농민의 현실 헤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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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농사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고령 농민의 현실 헤아려야

장갑순 서산시의회 의장

  • 승인 2026-09-14 23:25
  • 임붕순 기자임붕순 기자

농지 투기 방지를 위한 이용실태 조사가 강화되고 있지만, 고령화와 생산비 상승 등 현실적 어려움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는 농민들에게 농지 처분 의무와 강제금 부과는 가혹한 짐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처분을 강제하기보다는 임대·위탁 제도의 현실적 보완과 농작업 대행 지원 등을 통해 농지가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조성해야 합니다. 진정한 농지 보전은 농민의 삶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되므로, 행정은 제재에 앞서 농민의 목소리를 듣고 농업을 지속할 수 있는 희망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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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순 서산시의회 의장(사진=서산시의회 제공)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고, 나 역시 흙을 만지며 살아온 농업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새벽부터 논밭으로 나가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농사는 단순한 생업이 아니었다. 가족의 끼니를 책임지고 자녀를 키우며 한평생을 이어온 삶 그 자체였다.

그래서 농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농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농지 투기를 막아 실제 농업에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농지가 본래의 기능을 잃지 않도록 관리하는 원칙에도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농지를 지키기 위한 정책이 평생 농사를 지으며 농지를 지켜온 농민들에게 또 하나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농지 이용실태 조사가 강화되면서 직접 경작하지 않거나 휴경하는 농지에 대해 처분 의무와 이행강제금 등이 적용되고 있다. 제도의 취지와 필요성은 이해한다. 그러나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는 결과만을 놓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 농민이 왜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 때문에 농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오늘날 농촌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논밭으로 나가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비바람을 견디며 농작물을 키운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은 불안정한 반면 인건비와 비료·농약·농자재비, 농기계 사용료 등 생산비는 계속 오르고 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손에 남는 소득은 많지 않다. 풍년이 들면 가격 하락을 걱정하고, 흉년이 들면 수확량 감소를 걱정한다. 농사가 잘돼도 걱정이고, 농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걱정인 것이 지금 농민들이 마주한 현실이다.

특히 고령 농업인의 어려움은 더욱 크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어르신들에게 논밭은 여전히 삶의 일부다. 봄이 오면 논밭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들녘이 푸르게 변하면 농사 걱정부터 하는 것이 농부의 마음이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직접 농사를 짓자니 체력이 버겁고, 사람을 구해 농사를 맡기자니 높은 인건비가 부담된다. 농촌의 일손마저 부족해 필요한 시기에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평생 일군 농지를 쉽게 처분할 수도 없다.

농촌 인구가 줄면서 농지를 사거나 임차해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지역도 많다.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고, 임대를 주고 싶어도 마땅한 경작자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농민에게 단순히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농지를 처분하라고 한다면 얼마나 막막하겠는가. 그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다. 평생 새벽이슬을 맞으며 논두렁을 걷고, 허리가 휘도록 일하며 자녀를 키워낸 삶의 터전이다. 한 농부의 청춘과 가족의 세월,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농사를 짓기 싫어서 농지를 놀리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고,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정책은 바로 이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농지 이용실태 조사는 필요하다. 농지가 투기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농업 외 목적으로 방치되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조사하고 처분하는 것만으로 농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농지를 실제로 경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다.

고령 농업인이 직접 경작하기 어려운 농지는 청년농이나 전문농업인에게 안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임대·위탁 제도를 현실에 맞게 보완해야 한다. 노동력과 농기계가 부족한 농가에는 농작업 대행 등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농민이 농지를 포기하기 전에 행정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무엇보다 농지 이용실태를 조사하기 전에 농민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왜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는가.", "무엇을 도와주면 다시 이 땅을 일굴 수 있는가."

농업정책은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 역시 농업인으로 살아왔기에 농부의 마음을 안다. 몸은 늙어도 땅을 향한 마음은 쉽게 늙지 않는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민에게 농지는 재산목록의 한 줄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가족의 역사가 담긴 소중한 터전이다.

그렇기에 농지정책은 농지만을 바라보는 정책에서 농민을 함께 바라보는 정책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농지를 지키는 일과 농민의 삶을 지키는 일은 결코 다른 일이 아니다. 농민이 농지를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농지 보전정책이다.

농민에게 농지를 처분하라고 하기 전에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재하기 전에 지원할 방법을 고민하고, 조사하기 전에 농민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

행정의 역할은 농민에게 책임을 묻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농민이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농지를 지키겠다면 농민부터 지켜야 한다. 농민이 떠나는 농촌에서 농지만 남겨놓는 것은 진정한 농업정책이 될 수 없다.

평생 흙을 일구며 가족과 농촌을 지켜온 농민들의 굵은 땀방울이 더 이상 눈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민이 농지를 지키고, 농지가 농민의 삶을 지키는 농촌.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농업의 미래다.

나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 듣고, 농민의 어려움을 정책에 담아내는 일에 더욱 힘을 보태겠다. 농지를 지키는 정책이 농민을 옥죄는 정책이 아니라 농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이 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겠다.

농지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농민을 지키는 것이다. 농민이 살아야 농업이 살고, 농업이 살아야 농촌의 미래가 있다.(장갑순 서산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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