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78. 그들도 잘 살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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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78. 그들도 잘 살았더라면

'관창수' 단상

  • 승인 2018-11-1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고시원 일용직, 죽음마저도 외로웠다" 11월 11일자 S신문의 사회면에서 뽑은 기사의 제목이다. 지난 11월 9일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7명이 숨지는 참변이 발생했다.

고된 노동에 지쳐 겨우 2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서 쓸쓸히 잠들었던 일용직 노동자들은 기사 그대로, 죽음마저도 '외로웠다'. 이 뉴스를 보는 순간, 과거 하숙집 쪽방에서 새우잠을 잤던 아픔이 해묵은 영화로 상영되었다.



찢어지는 가난에 더하여 어머니조차 없었던 고난의 소년가장 시절부터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조차 없었다. 만취하시어 늘 술만 사오라는, 그러면서도 정작 돈 한 푼 주지 않았던, 아니 줄 수 없었던 가난뱅이 선친이셨다.

한데 당신께서는 꼭 그렇게 습관처럼 자정이 임박할 무렵이면 하나뿐인 이 아들을 못살게 굴었다. 당시는 자정부터 엄격하게 실시되었던 통행금지 시절이었기에 자정을 넘겨 돌아다니면 즉시 체포되어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래서 소년가장으로 구두닦이 등의 돈을 벌면서는 항상 비상금을 챙겨야 했다. 그건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처, 예컨대 가장 싸구려 숙소인 허름한 하숙집 쪽방에서 1박을 하는 것이었다.

하룻밤 자는 데 200원으로 기억되는 그 즈음의 단골 하숙집은 고향 역전에 위치했다. 그러나 아주 얇은 벽은 바로 옆방 남녀의 호흡소리까지 들렸는지라 당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을 자러 간 게 아니라 밤새 뜬눈으로 천장만 바라보다 나왔기에 눈까지 충혈되어 빨간 토끼 눈이 따로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국일고시원 화재로 말미암아 숨진 7명의 쓸쓸한 장례는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빈민에 대한 실태를 새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화두를 숙제로 남겼다. 신문을 펼치면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이제야 비로소 안정세라는 따위의 '쓸데없는' 기사가 보인다.

아무튼 하지만 10억이 훌쩍 넘는 서울 아파트의 '미친 가격'은 아주 오래 전부터 빈민들에겐 관심조차 없는 '상실의 구역'으로 고착화되었다. 그곳은 서민이 평생을 벌어서 한 푼 안 쓰고 모아봤자 죽어도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주거장소인 까닭이다.

이 시대의 서민과 빈민들은 오로지 가족들과 먹고사는 문제만으로도 이미 심각의 임계점을 돌파한 지 오래다. 최근 같은 동네서 사셨던 노파께서 비 오는 날 교통사고로 작고하셨다.

고립무원으로 혼자 사셨는데 꼭두새벽부터 휴.폐지의 수거에 이어 시장에 나가 깐 마늘 등을 파느라 고생만 하시던 분이었다. 이 같은 '팩트'에서도 볼 수 있듯 국일고시원 화재처럼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이들만 죽음의 대상으로 전락한지 오래인 것이 대한민국의 또 다른 민낯이다.

고시원에서 유명을 달리한 분들께 삼가 명복을 빈다. 막노동과 비정규직 등 사회의 변방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는 분들에 대한 정부의 가시적 지원이 시급하다. 그들도 잘 살았더라면 어찌 쪽방에 다름 아닌 고시원에서 그처럼 힘든 삶을 살았을까!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다. 추울수록 고시원에서도 전열기구 등의 겨울용품을 더욱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화재의 취약성을 더욱 세심하게 살피고 이에 대처하는 마음자세는 기본이다.

병행하여 2009년 7월에 제정된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대한 특별법' 이전에 건립되어 스프링클러가 없는 고시원과 같은 다중이용업소에 대한 소방시설 등의 확충 역시 서두르고 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둡고 우울한 소식은 이만 하고 화제를 바꾼다.

올봄에 결혼한 아들이 며느리와 집에 온다는 기별이 왔다. 결혼 뒤 몇 번 오긴 했지만 공교롭게 내가 일하는 날과 맞물리는 바람에 외식조차 맘 놓고 하지 못 했다. 나는 남들은 쉬는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때문이다.

더욱이 먹지도 못하는 밤을 늘 까야 하는 '날밤까기', 즉 밤새기의 연속은 만성피로까지를 덕지덕지 화상(火傷)처럼 각인시켰다. 한데 이번 주말의 달력을 보니 마침맞게 나도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갈무리했다.

재작년에 결혼한 딸에 이어 아들 내외에게도 과거의 사진을 분배해 줄 요령에서였다. 그렇게 사진을 고르던 중, 지난 1983년 봄 경의 사진이 눈에 꼭 들어와 화살처럼 박혔다. 아산의 현충사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아내의 배가 불룩한 걸로 봐서 아들을 임신한 때였지 싶었다.

아, 맞다! 아들의 생일이 양력으로 8월이니 이 사진을 찍은 몇 달 후에 출산을 했구나……. 세월은 여류하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지난달에 우리부부는 결혼 37주년을 맞았다. 그래서 아이들로부터는 꽃다발과 용돈까지 받았다.

내가 환갑을 맞는 내년엔 외국여행까지 시켜주겠노라 벼르는, 효심까지 진득한 아이들이다. 비록 박봉의 경비원으로 일하느라 피곤하지만 지난 시절 사진을 보노라니 어느새 행복과 만족으로 바뀌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이의 정의(定義)를 논하자면 십인십색(十人十色)인 것처럼 사람마다 각기 다른 '처방'을 내릴 것이리라.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인데 사랑은 치약과 나무, 그리고 우유 같아야 한다고 했다. 우선 치약은 매일 조금씩 없어지는 치약이기에 부지런히 채워 넣어야 한다. 어린 묘목은 튼실한 뿌리를 내리도록 매일 물을 줘야 하기 때문에 나무가 등장한 것이다.

끝으로 변질되면 마실 수 없는 우유인지라 늘 싱싱한 온도를 제공해야 하듯 부부의 사랑 역시 그래야 한다는 뜻이다. 가수 조영남은 <사랑이란> 노래에서 "혹시 제가 잘못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줘요"라고 애원했다.

마치 내가 해야 할 말을 대독(代讀)해 주는 듯 싶다. 사는 형편이 여전히 옹졸한지라 아내에겐 늘 미안한 느낌이다. 그렇긴 하되 열애시절까지를 더하면 40년도 넘는 세월동안 여자라곤 오로지 아내 하나만을 사랑하며 살았노라 자부한다.

이실직고하자면 여기에 딸을 추가해야만 비로소 정답이겠지만(^^;) 아무튼 사진은 촬영 당시를 구속하여 보관하는 일종의 타임머신(time machine)이다. 그래서 예식장에 가서 머뭇거리면 "이담에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함께 사진 찍기를 강권하는 것이다.

평소 생선매운탕을 좋아한다. 그 매운탕에 미나리를 샤브샤브처럼 살짝 데쳐서 먹으면 미나리 특유의 쌉싸름한 맛까지 정말로 별미다. 미나리는 뜯어도 또 새순이 나는 화수분과 같은 풀이다.

미나리김치의 향긋한 맛은 산채(山菜) 가운데서도 일품으로 꼽힌다. 뜬금없이 '미나리 예찬'으로 치환한 것은 아내의 성정이 미나리를 닮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이다. 4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상큼한 아내를 보자면 미나리가 연상되는 때문이다.

성공은 노력에 묻어야 꽃이 피고 젊음은 희망에 묻어야 꽃이 핀다. 그래서 말인데 애정은 정성에 묻어야 비로소 꽃이 되는 법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더 극진히 정성(精誠)의 눈길로 봐야 하는 이유다.

이에 더하여 '관창수'의 심정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더욱 단단히 지켜야한다는 믿음에 있어서도 허투루는 없을 것이다. 화재 현장의 최일선에서 소방호스 노즐을 잡고 최초로 불과 맞서는 소방관을 '관창수'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임무는 119의 베테랑에게만 주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관창수는 시작 단계에서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여 화세를 제압하고 인명구조 통로를 개척하며 진압작전을 주도해야 하는 때문이다.

이러한 중책의 임무를 맡아야 하는 건 이 시대 모든 가장일 터임에. 11월 15일 치르는 수능에서 한 점이라도 더 받고자 고군분투한 수험생들의 궁극적 지향점 역시 결국엔 남들보다 더 살자는 것에 방점이 찍힌 때문이리라.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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