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을 충실히 좇아 우리도 그리 하려 했으나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애면글면 어렵사리 사셨던 홀아버지께서 그만 홀연히 운명하신 때문이었다. 장례를 치렀지만 상실감은 여전히 깜깜한 한밤중처럼 무거웠고 장강처럼 깊었다.
그래서 아기를 하나만 더 갖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그렇게 하여 이듬해 태어난 아이가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다. 내가 처음으로 품에 안은 녀석은 우리 집안에 있어서도 유일한 딸이었다.
착하고 공부를 잘 했는가 하면 예의까지 깍듯했던 딸은 서울대 재학 중 지금의 사위를 만났다. 둘은 잉걸의 '첫사랑'이었기에 만나자마자 금세 애정의 모닥불에 불이 붙었다고 한다.
내가 아내를 만난 것은 지난 1980년대 초반인데 마찬가지로 아내는 나의 첫사랑이다. 사랑하는 딸은 올해 외손녀를 선물했다. 그래서 어찌나 반갑고 고마웠던지..!
나는 장손으로 태어났지만 형제가 없었다. 그래서 줄곧 사면초가의 외로움으로 성장했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가족이 많은 집이 가장 부러웠다. 어릴 적에 살았던 집 근처에 형제가 무려 열 명이나 되는 친구가 있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동생이 밖에서 맞고 오면 형제들이 모두 분기탱천하여 우르르 쫓아나갔다. 그리곤 반드시 '응징'하는 모습에서 새삼 가족이 많은 건 가장 큰 재산이라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는 수확이 짭짤한 해였다. 딸에 이어 아들도 친손자를 본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족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다다익선의 위력은 관혼상제(冠婚喪祭) 시 더욱 빛을 발한다.
혼례 때는 몰라도 가족이 너무 많아서 누가 상주(喪主)인지 알 수 없는 상가의 경우가 바로 이런 부러움의 증거다. 이런 경우, 상주가 몹시 피곤하여 잠시 눈을 붙이더라도 다른 가족들이 자리를 지키기에 큰 흉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보자면 한천작우(旱天作雨)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한천작우'는 몹시 가문 여름에 싹이 마르면 하늘이 구름을 지어 비를 내려 준다는 뜻으로, 아주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가족들의 십시일반(十匙一飯) 도움 역시 '한천작우'인 때문이다. 논리의 비약일지 몰라도 가족이 없는 삶이란 불행한 삶을 예약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가족은 암묵적 지식과도 같다. 지식에는 배움을 통해 얻어지는 명시적 지식과 익힘을 통해 얻어지는 암묵적 지식이 있다. 명시적 지식은 암기해야 내 것이 되지만 암묵적 지식은 습관을 들여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까닭이다.
가족은 또한 익숙하다. 익숙한 것은 좋은 것이다. 익숙한 생활은 행복이고 평화이며 웃음의 공급원이다. 거기엔 또한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경쟁심도 없다. 싸움과 미움조차 없음은 물론이다.
손자와 손녀를 본 지인들이 카톡에 그 아이들의 모습을 올려놓는 것을 나는 올 들어서야 비로소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시인 베를레르는 "인생의 희망은 늘 괴로운 언덕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를 '인생의 희망은 외로운 언덕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라고 바꾸고자 한다. 가족은 힘이자 버팀목이다.
가족은 '넝마주(株)'가 하나도 없어서 더 좋다.
'넝마주'는 기업의 영업 결손이 여러 해 동안 지속된 결과, 기업의 자구적인 노력만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게 된 주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주식은 휴지나 마찬가지다. 하늘은 내게서 어머니를 너무도 일찍 앗아갔다.
아버지 또한 힘들게 사시다가 영면하셨다. 이에 미안함을 느꼈던지 천사표 아내와 아이들을 선물로 주셨다. 이제 집에는 우리부부만 거주한다. 아내는 지금도 시집건즐(侍執巾櫛)로 일관하여 여전히 감사하다.
'시집건즐'은 수건과 빗을 들고 모신다는 뜻으로 아내가 남편 시중을 드는 것을 말한다. 12월 25일 오늘은 마침맞게 아내의 생일이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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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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