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무능과 부패의 대결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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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무능과 부패의 대결이 되지 않으려면…

김재석 소설가

  • 승인 2021-09-27 09:52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김재석 소설가
김재석 소설가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 '풀' 중에서)

김수영 시인은 왠지 저항의 아이콘 같은 시인이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가지 않았다면 아마 한국 문학계의 지형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의 대표 시 '풀'은 단순 도식으로만 봐도 '풀'은 민중이고, '바람'은 풀을 억압하는 독재다. 바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풀 같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웃는 민초(民草)의 인내와 강인함을 노래했다.

'바람'이란 독재의 시대도 지나가고 요즘 정치 풍향계는 여론조사가 그 자리를 꿰찼다. 민초가 어디로 눕는지 그 방향을 잰다. 1천여 명 남짓 표본을 조사해서 어떻게 국민 여론이 되는지는 알쏭달쏭 하지만, 말 그대로 흐름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참고는 된다. 추석을 전후한 여론조사에서도 2강 2중 체제는 여전하다. 추격의 조짐은 보이지만 2중을 형성한 여야 후발주자들의 역전이 가능할지 궁금하다.

여권의 후발주자인 이 전 대표는 도덕성에서 단연 돋보인다. 국민이 원하는 눈높이의 도덕성과 정제된 언변술을 가지고 있다. 야권의 홍 후보는 자유자재의 언변술과 확고한 보수철학을 가진 인물로 대선 3수의 저력이 있다. 지금의 여론조사는 대선 경쟁력을 중점으로 여론을 몰아가지만, 도덕성과 경륜으로 질문을 바꾼다면 당연히 후발주자들이 유리할지 모르겠다. 이들만 본다면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란 느낌이 든다.

반면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가 많은 여권의 선두주자는 여전히 도덕성의 늪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대장동 의혹'이 특검으로 가면 또 어떤 사실이 밝혀질지 알 수 없다. 야권의 선두주자는 준비되지 않은 인기의 버거움에 짓눌린 느낌이다. 현 정권의 반대급부로 얻은 인기 약발이 점점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감지된다.

민초들은 여러 번의 대선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찍을 사람이 정해진 정당정치의 한계로 인해 자신들이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해왔고, 진보와 보수의 대결인 줄 알았는데 결국은 무능과 부패의 대결이었다는 것을…. 4, 50대가 보수정당에 쉽게 눈길을 주지 않는 것도 누적된 경험치의 결과이다. 6, 70대 이상은 6.25 전쟁과 국가를 재건한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가 강하게 남아있어 보수정당을 쉽게 저버릴 수가 없다. 역으로 말하면 4, 50대에겐 무능해도 부패보단 낫고, 6, 70대에겐 부패해도 무능한 것보단 낫다는 참으로 알쏭달쏭한 논리가 적용된다.

이 두 세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들과 경험치가 전혀 다른 2, 30대가 어떤 선택을 하는 지가 후발주자뿐만 아니라 앞으로 대선 풍향계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후발주자들이 진정한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면 2, 30대를 겨냥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잘 될 것이란 희망 고문만 하지 말고, 취업, 결혼, 자녀 양육, 부동산 등 실물지표에서 고통받지 않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어떤 이는 차라리 결혼해서 애 잘 낳는 부부에게 몇억씩 주자는 허경영 같은 후보가 청년들의 마음을 더 잘 안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수영은 '풀'이란 시에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먼저 웃는 풀을 민중에 비유했다. 바람을 일으키는 정치는 무능하고 부패했을지 몰라도 한국 국민은 근면한 국민성으로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어떤 나라도 이루지 못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정치가 국민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정치는 국민 여론을 보듬고, 국민이 제시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능과 부패의 대결이겠는가? 진정한 진보와 보수의 대결을 원한다.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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