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90년대 정치 누아르 '대외비'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90년대 정치 누아르 '대외비'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3-03-16 08:50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대외비
국회의원 후보 해웅의 화면상 첫 위치는 절반 이하입니다. 유세할 때도, 유권자를 만날 때도 늘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때 그는 순수하기보다 순진하고, 겸손하기보다는 비굴해 보입니다. 후에 모든 우여곡절을 통과하고 마침내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될 때 그는 원래도 큰 키인데 모든 사람보다 위쪽에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드디어 그는 정치를 속속들이 알게 됐고, 더이상 순진하지 않습니다. 또 군림하는 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온몸으로, 눈빛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화 <대외비>는 1992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해의 이야기입니다. 30년 군사정권이 끝나고 실질적인 민주정부를 세우는 선거는 주지하다시피 오랜 민주화 투쟁의 성과입니다. 그러나 저명한 학자의 책 제목이기도 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명제처럼 민주 사회의 이상과 그렇지 못한 현실의 괴리는 한국 사회의 우울한 진실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모습을 누아르 영화의 특징을 담아 잘 드러냈습니다.

누아르 영화는 2차 대전 직후 미국의 갱스터 영화에 붙인 프랑스 비평가들의 용어입니다. 검은색을 뜻하는 누아르는 암흑가에서 벌어지는 불법, 탈법, 무법의 행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지 낮과 밤, 빛과 어둠의 이분법을 넘어 윤리와 도덕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미국 사회의 우울하고 비정한 분열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금주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횡행하는 밀주업과 이를 주도하는 이탈리아계 마피아들의 세력 다툼과 폭력이 누아르 영화의 주요 소재입니다. 유명한 '대부' 시리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이 대표적인 누아르 영화입니다.

정치가 악마와의 거래라는 암흑가 실세 권순태(이성민 분)의 말은 언필칭 국민을 위한 정치 운운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실상 정치는 들끓는 욕망의 현실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그럴듯한 명분으로 봉합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해웅뿐 아니라 그와 손잡고 일하는 사람들, 그를 배신하거나 따돌리려는 사람들 역시 큰 것 한 방을 잡으려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조진웅, 이성민 등 배우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그러나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폭력물, 그리고 이들 배우가 이미 보여준 캐릭터의 타성이 날 선 주제의식을 가리는 점은 많이 아쉽습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