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원시적 우정의 바다 '밀수'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원시적 우정의 바다 '밀수'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3-08-10 08:49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KakaoTalk_20230802_104827851
바다 밑에 가서 물고기나 조개, 문어, 해삼, 멍게 등을 잡는 여성들이 나옵니다.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그녀들을 해녀라 합니다. 땅 위에 발 디디고 터 잡고 일을 할 수 있다면, 아니면 벌이나 살림이 넉넉하여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도 아니면 든든히 울타리가 되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지켜 줄 남정네가 있다면 바다 밑으로 그렇게 변변한 보호장구 하나 없이 내려갔다 올라오기를 하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영화의 두 주인공 진숙(염정아 분)과 춘자(김혜수 분)가 한 명은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한 명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 내려주고, 올려주는 모습입니다. 수중에서 롱숏으로 느리게 잡아낸 장면을 통해 우리는 원시적 우정을 봅니다. 비록 그녀들이 끌어올리는 것이 애초의 해산물이 아니라 밀수품일지라도 관객들은 비난하기 어렵습니다. 이해타산과 원한이 없지 않지만 그것은 육지에서의 일. 바닷속에서 그들은 목숨으로 목숨을 지탱하고 격려합니다.

영화의 서사는 다소 헐겁습니다. 선주의 딸과 미모의 친구가 굳이 그 험악한 물일을 하는 것, 밀수품을 노리는 남정네들이 바닷속에서 그녀들을 없애려는 것이 그렇습니다. 지역 유지의 가족이 그런 일 할 이유가 없고, 물건 빼앗고 그녀들을 제거하는 것은 배 위로 올라온 뒤에도 가능한 일이니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총이 있고, 그녀들에게는 이렇다 할 무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닷속 액션을 통해 결국 승리하는 것은 해녀들이고, 패배하는 것은 그녀들에게 일을 주고, 협박하여 착취하려는 사내들입니다. 몸으로 일하는 이들이 말로 협박하고, 가로채는 자들을 이기는 것은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세상은 대체로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가장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몸으로 하는 이들이 맡고, 그들을 감시하거나, 언어적으로,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이들이 성과의 대부분을 가져갑니다.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다방 마담인 옥분입니다. 그녀는 말로 폭력으로 억압하고, 몸일 하는 이들을 감시하는 사내들을 상대로 물장사를 하며 레지에서 마담으로 성공한 여자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결정적인 순간 자신들의 고객 겸 연인 겸 물주를 버리고 물질하는 해녀들 편을 선택합니다. 즉 원시적 우정의 일원이 됩니다. 류승완 감독은 오랜 영화 이력과 같이 이 작품에서도 살벌하고 잔혹한 액션 이면에 숨은 낭만적 순정을 다시 한 번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