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전투 개시 전 중구 침산동 잠입한 인민군, "세천고개 어디냐"

  • 사회/교육
  • 국방/안보

대전전투 개시 전 중구 침산동 잠입한 인민군, "세천고개 어디냐"

문화동 거주 진교만옹 대전전투 개시 전 피란
침산동 아들바위에서 만난 인민군 4명 길 물어
"어느 방향이 세천고개냐, 총열 쥐어 운반하라"
건강상 더는 인터뷰 어려워 경험·기억세대 사라져

  • 승인 2024-06-25 17:35
  • 수정 2024-06-25 17:42
  • 신문게재 2024-06-26 4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아들바위 원경
진교만(91) 씨가 피란 중 인민군과 조우한 대전 중구 침산동 아들바위 및 뿌리공원 방아미다리 모습. /사진=임병안 기자
6·25전쟁 발발 74주기를 나흘 앞두고 찾은 대전 중구 뿌리공원 건너편 아들바위는 가까이서 흐르는 유등천을 말없이 바라보는 듯했다. 1950년 이곳은 피란민들이 유등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있던 곳으로 당시 태평동에 살던 진교만(92) 옹에게는 북한군 선발대를 마주해 생사의 갈림길 같은 곳이다. 1950년 7월 20일 대전전투에 대한 기억을 수집하기 위해 이뤄진 인터뷰에서 진 옹은 대전전투 개시 전 중구 침산동에서 마주한 북한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평상복 차림에 도리우찌라는 납작모자 쓴 남자가 아들바위 인근서 피난길을 재촉하는 진 씨를 잡아 세워 길을 물었다. "어디로 나가야 세천고개에 갈 수 있느냐." 겁을 먹어 대답하지 못하는 진 씨에게 납작모자의 남성은 다시 "그러면 잠시 여기서 기다렸다가 총열과 총열 다리를 짊어지고 운반하는 일을 도와라"고 요구했다. 진 씨는 자기를 잡아 세운 이들이 평범한 옷을 몸에 걸쳤지만 사실은 인민군이고 무장 군인들을 인솔해 길을 안내하는 선발대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우쳤다. 이때는 인민군이 금강을 넘어섰다는 소식은 전해졌으나, 대전에 총과 포 소리가 들리지는 않던 때다. 부모가 먼저 피란을 떠나 고향 정생동에 임시거처를 마련했고, 진 씨는 등에 난 부스럼을 마저 치료하고 정생동을 향해 유등천을 따라 걷다가 하천을 건너려던 찰라, 숨어든 인민군을 만난 것이다. 진 씨는 고름이 터져 피가 흐르는 등을 보여주며 총열을 짊어질 수 없다고 사정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진교만(91) 옹
6·25전쟁 때 대전에 잠입한 인민군 선발대의 모습을 기억하는 진교만옹. /사진=임병안 기자
진 씨는 "그들은 총을 휴대하지 않았고 군복도 아니었으나 총열과 총열다리를 운반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인민군이 여기까지 벌써 내려왔구나 알 수 있었다"라며 "세천고개 가는 방향을 내가 직접 인솔했거나 총열을 쥐어 날랐다면 쓰임을 다하고 난 뒤에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라고 회상했다. 진 씨의 목격담이 74년 만에 다시 주목되는 것은, 그들이 목적지로 삼았던 세천고개에서 후퇴하는 미군 딘 소장의 제24사단 인명 피해가 크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민군들은 갑천에서 본격적인 대전전투를 벌이기 전에 정림동 방향에서 구봉산 뒤, 보문산 뒤로 부대를 이동시켜 세천까지 잠입해 미군의 옥천과 금산 방향 퇴각로에서 잠복했다. 대전에서 옥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세천고개에서 예상 못한 기습을 당한 미군은 차량을 버리고 불을 질러 불능화한 후 걸어서 후퇴하는 과정에서 많은 인명피해를 겪었다. 오히려 북한군은 대전에서 금산과 옥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갑천에서 대전전투의 개시를 지연한 정황도 발견되는데, 진 씨가 경험하고 목격한 것은 긴박했던 7월 20일 대전전투에 앞서 7월 19일 인민군의 움직임을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진 씨는 또 수복한 대전에 복귀해 지금의 서대전공원의 미군묘지에서 대전시내 곳곳에 남겨진 시신을 수습해 안장하는 일을 담당했다. 진 씨는 "낙오된 병사들이 있었는데 안영동의 검은바위에는 인민군 총에 당한 미군 유해 3구를 안장해 훗날 미군으로 수송해 갔다"고 설명했다. 2023년 12월 문화동 경로당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대화를 나눴으나, 이번 취재 때는 건강상 이유로 전화 통화만 가능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건고추 100%로 속여 판 충북 옥천 식품업체 대표, 벌금 8억 7000만원 선고
  2. '읍면 공동주택' 1.2만 호 무산 여파… 세종시 후속 대책 추진
  3. 올 가을 행정수도특별법 결실 맺나… 연내 제정 기대감 커져
  4. 대전맹학교, 휠체어 리프트 갖춘 대형 전기버스 도입
  5. “건물 폭파하겠다” 방위사업청서 소란 피운 여성 도주…경찰 추적
  1. 중기부 이어 국정자원마저?… 대전, 또 ‘기관 이탈’ 위기감
  2. 대전시가족센터·대전오페라단 업무협약
  3. '한글 비문'에 담긴 광복의 기쁨… 대전 속 잊힌 독립 유산을 아시나요?(영상있음)
  4. [날씨] 광복절 연휴 첫날 충청권 흐리고 비…오후부터 곳곳 소나기
  5. 대전사랑메세나·동안미소한의원,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 위한 의료품 지원

헤드라인 뉴스


`한글비문`에 담긴 광복의 기쁨… 대전 속 잊힌 독립 유산을 아시나요?(영상있음)

'한글비문'에 담긴 광복의 기쁨… 대전 속 잊힌 독립 유산을 아시나요?(영상있음)

1945년 8월 15일 조국 독립의 감격은 대전 도심 곳곳에 깊은 역사적 족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세워진 대전의 대표적 광복 상징물이 마침내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시 문화유산으로 결실을 맺었다.대전시는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중구 보문산에 위치한 '대전 을유해방기념비(乙酉解放記念碑)'가 대전시 문화유산으로 정식 등록됐다고 밝혔다.을유해방기념비는 1946년 8월 15일 광복 1주년을 맞아 대전부민(시민)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대전역 광장에 세운 약 3m 규모의 비석이다. 다른 지역의 해방기념..

올 가을 행정수도특별법 결실 맺나… 연내 제정 기대감 커져
올 가을 행정수도특별법 결실 맺나… 연내 제정 기대감 커져

행정수도특별법 연내 제정 가능할까. 앞서 범국민적 연대 조직이 닻을 올린 데 이어 전국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법안 제정을 실현할 긍정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시민사회의 협력과 전국 시·도지사들의 지지를 발판삼아 본격 법제화 행보에 돌입한 가운데,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이란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조상호 세종시장은 14일 서울에서 열린 제61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행정수도특별법의 연내 제정을 위한 전국적 지지를 요청하고 나섰다. 조 시장은 "올해는 20여..

충남대·공주대 통합대학 명칭 ‘충남대’로… 법적 대표주소 대전
충남대·공주대 통합대학 명칭 ‘충남대’로… 법적 대표주소 대전

통합을 추진중에 있는 충남대와 국립공주대의 통합대학 밑그림이 구체화 됐다. 통합대학은 '충남대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법적 대표주소는 대전으로 정하되, 대전과 공주에 통합본부를 두고 캠퍼스별 특성에 따라 주요 행정기능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양 대학은 14일 세종공동캠퍼스 학술문화지원센터에서 양교 총장과 통합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동안의 통합 추진 경과와 주요 쟁점에 대한 협의 결과를 중간 발표했다. 이번 조정안에 따라 통합대학의 교명은 충남대학교로, 법적 대표주소는 대전으로 정해졌다. 통합본부는 대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백중사리 기간에 침수된 보령시 오천항 일대 백중사리 기간에 침수된 보령시 오천항 일대

  • ‘자동차 불법 튜닝 안됩니다’ ‘자동차 불법 튜닝 안됩니다’

  • 대전시-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당정협의회 대전시-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당정협의회

  • 대전 가장교 시멘트 떨어짐 현상…시민들 안전 ‘위협’ 대전 가장교 시멘트 떨어짐 현상…시민들 안전 ‘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