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타인의 불행 위에 선 폐쇄적 행복의 비극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타인의 불행 위에 선 폐쇄적 행복의 비극

존 오브 인터레스트

  • 승인 2024-06-27 17:08
  • 신문게재 2024-06-28 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KakaoTalk_20240626_200044301
존 오브 인터레스트.
너무나 잘 알려진 거대한 역사를 배경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소소한 개인사가 펼쳐집니다. 그것도 아주 근접한 장소를 두고서. 담장 너머 일은 비극적 괴성과 암울한 연기로만 원경으로 보입니다. 근경으로는 주인공 루돌프 가족의 낙원과도 같은 집이 그려집니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핵심 간부로 일하는 루돌프는 비극적 거대 역사의 주역이면서 동시에 중산층의 욕망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행복과 염려는 담장 너머의 비참함과 전혀 다른 세계의 일처럼 여겨집니다. 이따금 날아오는 분진과 고통에 찬 소리들이 아니라면 이들 가족의 소소한 갈등과 염려는 지극히 평범한 일일 뿐입니다.

600만의 유태인과 또한 수백만의 유럽인들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독일군 간부 가족의 소소한 꿈과 안락함은 참으로 낯선 일입니다. 유리 온실과 각종 식물이 자라는 정원,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 시설까지. 타인의 불행과 비극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그저 생계와 안락을 위한 직업적 일이라는 것이 몸서리쳐지게 다가옵니다. 심지어 이제 막 행복의 터전에 발을 디뎠다고 생각될 때 타지로 발령난 것이 그들 가족의 갈등 요인이 되고, 뇌물을 써서 원직으로 복귀하는 모습은 극도로 폐쇄적인 그들만의 세상을 보게 합니다.

그러나 빈틈없이 봉합된 것처럼 보이는 그들만의 세상에도 예기치 않은 균열이 존재합니다. 엑스선을 투과한 것처럼 처리된 야간 장면에서 딸은 집을 빠져나와 비극적 현장을 헤매며 잔해를 수습하는 몽유병자로 그려집니다. 또한 같은 시간 그토록 단란해 보이던 부부가 실상 진심을 공유한 관계가 아니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욕망의 동거인에 불과하다는 것이 유태인 하녀를 두고 벌인 일을 통해 발견됩니다.

거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평범한 욕망의 부조리와 더불어 이 영화는 이른바 악의 평범성을 통해 희생당한 이들의 비극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 생각납니다. 평범한 이들에 의해 자행된 무도한 악행은 누구든 타인의 불행을 바탕으로 폐쇄적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길고 어두운 복도와 계단을 내려오는 루돌프의 시선 끝에 오늘날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역사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욕망의 실체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AI 시대, 컨택센터 미래전략은 '경험 중심 플랫폼'으로의 진화
  2. [호국보훈의 달] 나라를 지킨 참전영웅들…어린이 위로공연에 '눈물'
  3. 아산시, 취약지역 하수도시설 일제 점검
  4. 아산선도농협, 고추재배농가에 영농자재 지원
  5. 아산시, 반려동물 장례문화 인식개선 적극 추진
  1. 천안시의회 권오중 의원, "교통약자 보호 및 시민 보행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2. 천안시, 제77회 충청남도민체육대회서 주택안심계약 홍보
  3. 천안시의회 정도희 의원 대표발의, 천안시 마을행정사 운영에 관한 조례안 본회의 통과
  4. 천안법원, 신체일부 노출한 채 이웃에게 다가간 20대 남성 '벌금 150만원'
  5. 천안시의회 유영채 의원, '전세피해임차인 보호조례' 제정… 실질 지원과 안전관리까지 법제화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이재명 정부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추진하며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충청권 대표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완성 의지에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 집권 초부터 PK 챙기기에 나서면서 충청권 대표 대선 공약 이행에 대한 진정성은 실종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자칫 충청 홀대로 해석될 여지도 있는 대목인데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선 특별법 제정 또는 개헌 등 행정수도 완성 로드맵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임기 내 국회 세종의사당..

대전시의회, 유성복합터미널 BRT 등 현장방문… "주요 사업지 현장방문 강화"
대전시의회, 유성복합터미널 BRT 등 현장방문… "주요 사업지 현장방문 강화"

대전시의회가 유성복합터미널 BRT 연결도로와 장대교차로 입체화 추진 예정지 등 주요 사업지를 찾아 현장점검을 벌였다. 산업건설위원회는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현장, 교육위원회는 서남부권 특수학교 설립 예정 부지를 찾았는데, 을 찾았는데, 이번 현장점검에 직접 나선 조원휘 의장은 "앞으로 민선 8기 주요 사업지에 대한 현장 중심의 의정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조 의장은 13일 유성구 일대 교통 현안 사업 현장을 찾았다. 먼저 유성복합터미널 BRT(간선급행버스체계)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유성복합터미널 BRT 연결도로는 유성구..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흥행에…주변 상권도 `신바람`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흥행에…주변 상권도 '신바람'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에 힘입어 경기 당일 주변 상권들의 매출이 2배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국 야구장 중 주변 상권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구장은 한화이글스의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볼파크다. 15일 KB국민카드에 따르면 2022~2025년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개막 후 70일간 야구 경기가 열린 날 전국 9개 구장 주변 상권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매출액은 2022년 대비 2023년 13%, 2024년 25%, 올해 31%로 각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용·체크카드로 결제한 141만 명의 데이터 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 ‘선생님 저 충치 없죠?’ ‘선생님 저 충치 없죠?’

  • ‘고향에 선물 보내요’ ‘고향에 선물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