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산동성 청주의 고구려 흔적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산동성 청주의 고구려 흔적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 승인 2025-04-20 16:52
  • 신문게재 2025-04-21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2025030901000494900020201
김덕균 소장
고구려는 당대 최강 수나라와 대적할 정도로 강성한 나라였다. 수나라는 남북조의 혼란을 수습하고 중국을 통일한 강국이다. 고구려는 그런 수나라와 싸워 승리했으니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수나라 이후 들어선 당나라도 몇 차례 고구려 정벌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세계 최강 당나라와 싸워 고구려가 이긴 것이다. 그 정도로 강했던 고구려가 한반도의 가장 나약했던 신라에 의해 망했다. 상상도 못할 일이다. 물론 당나라의 도움을 받은 신라의 승리라 하더라도 자존심의 상처는 보통 심한 게 아니었다.

처음 나당연합군의 침략을 받은 고구려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나약했던 신라는 안중에도 없고, 바닷길로 들어온 당나라 군대와 당당히 맞서 싸웠다. 고구려의 명장 연개소문과 그 아들들이 버틴 고구려는 흔들림이 없는 강한 나라였다.



문제는 연개소문이 죽고 고구려 지도층이 분열하면서 시작됐다. 그렇게도 강력했던 군대가 사분오열되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고구려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지도층의 분열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알려준 교훈적인 일이다. 이후로 고구려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펼쳐보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이제 고구려에는 '남은 사람'(遺民)과 '떠도는 사람'(流民)만 남았다. 분열의 한복판에서 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눈뜨고 경험한 한(恨) 많은 사람들이다. 갈 곳 없는 백성들은 뼈저린 패배의 땅에 남아 그래도 고향을 지키며 미래를 기약했다. 일부는 '랜드피플'이 되어 대륙의 새로운 정착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20세기 내전에 시달리던 동남아국가들의 수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보트피풀'이 되어 바다로 나갔듯 7, 8세기 고구려 유민들은 '랜드피풀'이 되어 대륙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했던 고구려 유민들은 그렇게도 얕잡아보던 신라에 종속되어 고개 숙이고 살기보다는 그래도 세계 최강 당나라로 건너가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당나라의 외국인 포용정책과 어우러진 "이민족으로 이민족을 제압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외교정책도 고구려인들을 유혹했다. 서쪽으로 향했던 고선지(高仙芝, ? ~ 755)와 그 일행은 당나라 실크로드 개척의 중심이 됐다. 남쪽으로 내려간 상당수 사람들은 묘족(苗族)을 비롯한 남방의 소수민족과 어우러졌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정기(李正己, 732~781), 고구려 유민으로 태어나 산동성 등주(登州)를 거쳐 치주(淄州, 현재의 치박)와 청주(淸州, 현재의 유방)에 정착하면서 절도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유민의 신분으로 당나라에서 가장 빨리 출세하는 방법이 군인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군인이 되어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을 토벌하는 중심이 됐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는 결국 절도사까지 됐다. 혼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했다. 토벌군에 참여한 수많은 고구려 유민들의 협력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토벌군의 중심은 아니었다. 부장으로 있으면서 주변의 신망을 얻었다. 그리고 큰 공을 세우며 지금의 유방 청주지역 절도사가 됐다. 당나라 중앙정부가 힘을 쓰지 못할 때에는 산동성의 더 큰 영역에서 정치 경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나라도 어사대부, 청주자사 등 그를 달래기 위한 여러 관직을 내렸다. 고구려 유민의 든든한 신뢰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산동성과 가까운 한반도의 발해나 신라와의 통상에서 얻은 이익도 그를 성공으로 이끈 매우 소중한 자산이었다.

이정기 사후 그 후손들이 산동성의 강력한 세력으로 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나친 그들의 욕심은 멸망을 재촉했다. 훗날 고구려를 재평가하는 사람들은 서역을 개척한 고선지보다 이정기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당나라에서 그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가를 보여준다. 산동사범대 한국학연구소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으로 이런 산동성의 기본자료를 부현지(府縣志)에서 찾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다.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 불당중 폭탄 설치 신고에 '화들짝'
  2. 대전방산기업 7개사, '2025 방산혁신기업 100'선정
  3. 대전충남통합 추진 동력 확보... 남은 과제도 산적
  4. 의정부시 특별교통수단 기본요금, 2026년부터 1700원으로 조정
  5. "신규 직원 적응 돕는다" 대덕구, MBTI 활용 소통·민원 교육
  1. 중도일보, 목요언론인상 대상 특별상 2년연속 수상
  2. 대전시, 통합건강증진사업 성과공유회 개최
  3. [오늘과내일] 대전의 RISE, 우리 지역의 브랜드를 어떻게 바꿀까?
  4. 대전 대덕구, 와동25통경로당 신축 개소
  5. [월요논단] 대전.세종.충남, 문체부 지원사업 수주율 조사해야

헤드라인 뉴스


`벌써 50% 돌파`…대전 둔산지구 통합 재건축 추진준비위, 동의율 확보 작업 분주

'벌써 50% 돌파'…대전 둔산지구 통합 재건축 추진준비위, 동의율 확보 작업 분주

대전시의 노후계획도시정비 기본계획안이 최근 공개되면서, 사업대상지 내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들이 선도지구 선정을 위한 동의율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8일 지역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대전 둔산지구 통합14구역 공작한양·한가람아파트 단지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는 최근 다른 아파트 단지 대비 이례적인 속도로 소유자 동의율 50%를 넘겼다. 한가람은 1380세대, 공작한양은 1074세대에 이른다. 두 단지 모두 준공 30년을 넘긴 단지로, 통합 시 총 2454세대 규모에 달한다. 공작한양·한가람아파트 단지 추진준비위는 올해..

[충남 소상공인 재기지원] 위기의 소상공인 다시 일어서다… 경영·디지털·저탄소 전환까지 `맞춤형 종합지원`
[충남 소상공인 재기지원] 위기의 소상공인 다시 일어서다… 경영·디지털·저탄소 전환까지 '맞춤형 종합지원'

충남경제진흥원이 올해 추진한 소상공인 지원사업은 경영개선부터 저탄소 전환, 디지털 판로 확대, 폐업 지원까지 영역을 넓히며 위기 대응체계를 강화했다. 매출 감소와 경기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도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질적인 경영지원금을 지급하고 친환경 설비 교체와 온라인 마케팅 지원 등 시장 변화에 맞춘 프로그램을 병행해 현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진흥원의 다양한 지원사업의 내용과 성과를 점검하며 충남 소상공인 재기지원 우수사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충남경제진흥원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구제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시스템..

유성복합터미널 1월부터 운영한다
유성복합터미널 1월부터 운영한다

15여년 간 표류하던 대전 유성복합터미널이 1월부터 운영 개시에 들어간다. 8일 대전시에 따르면 유성복합터미널의 준공식을 29일 개최한다. 유성광역복합환승센터 내에 조성되는 유성복합터미널은 총사업비 449억 원을 투입해, 대지면적 1만5000㎡, 연면적 3858㎡로 하루 최대 65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로 건립된다. 내년 1월부터 서울, 청주, 공주 등 32개 노선의 시외 직행·고속버스가 운행되며, 이와 동시에 현재 사용 중인 유성시외버스정류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4월까지 정비를 완료할 예정이다. 터미널은 도시철도 1호선과 BR..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 알록달록 뜨개옷 입은 가로수 알록달록 뜨개옷 입은 가로수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