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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8년 후' 포스터. |
섬 바깥은 좀비들이 수시로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그럼에도 섬 사람들은 그 세상에 나가 좀비들을 상대하고 살아 돌아오는 것을 대단한 용기로 추켜세웁니다. 어린 소년이 그 과정을 통해 성인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니 섬과 육지는 가정이나 혈육 공동체 등 안전한 세계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험난한 세상의 유비라 할 만합니다. 소년 스파이크는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섬 밖으로 나갑니다.
좀비를 향해 화살을 날리기도 했지만 육지 체험은 스파이크를 혼돈과 충격에 빠뜨립니다. 외부의 위험인 좀비는 물론이려니와 스파이크는 아버지의 혼란스러운 행동과 불륜을 목격함으로써 분노와 절망에 휩싸입니다. 성인 되기의 어려움은 어머니와도 관련됩니다. 병든 어머니를 방치하는 아버지를 대하는 스파이크에게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봅니다. 한편 어머니를 어떻게든 치료해 보려는 그는 거친 세상에 대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깊은 밤 졸음을 이기지 못한 채 좀비의 공격에 노출된 그를 구해낸 것은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 아일라의 모성애와 용기였습니다.
스파이크의 성장 서사가 중심인 이 영화는 두 번의 육지 여행과 섬으로의 귀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해 남성다움의 용맹함과 거친 세상에 대한 혼돈을 경험한 그는 어머니와의 여행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깊이 깨닫습니다. 전자의 경험이 외적인 통과의례였다면 후자의 경험을 통해 그는 내면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풍부한 시각적 장치, 좀비의 출몰로 인한 공포와 충격, 강도 높은 액션 등으로 볼거리가 충분한 이 영화는 그럼에도 다소 아쉽습니다. 소년의 성장이라는 고전적인 서사 구조와 SF 영화적 양상이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좀비의 아이를 얻어 살려냈지만 인간 세상이 어떻게 좀비처럼 비참하고 비극적인 세계로 전락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우지 못합니다. 관객 역시 깊이 있는 문명 비판의 관점으로 성찰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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