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비극적 세계와 소년의 성장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비극적 세계와 소년의 성장

  • 승인 2025-06-26 16:42
  • 신문게재 2025-06-27 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KakaoTalk_20250625_144447832
영화 '28년 후' 포스터.
분노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퍼져 사람들이 감염되고 그들은 좀비가 됩니다. 감염을 피해 섬으로 사람들이 들어갔고 28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현대 문명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천 년 전 사람들처럼 활을 들고 적을 쫓거나 나무로 된 관문으로 외부인을 통제합니다. 철저히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갑니다.

섬 바깥은 좀비들이 수시로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그럼에도 섬 사람들은 그 세상에 나가 좀비들을 상대하고 살아 돌아오는 것을 대단한 용기로 추켜세웁니다. 어린 소년이 그 과정을 통해 성인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니 섬과 육지는 가정이나 혈육 공동체 등 안전한 세계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험난한 세상의 유비라 할 만합니다. 소년 스파이크는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섬 밖으로 나갑니다.



좀비를 향해 화살을 날리기도 했지만 육지 체험은 스파이크를 혼돈과 충격에 빠뜨립니다. 외부의 위험인 좀비는 물론이려니와 스파이크는 아버지의 혼란스러운 행동과 불륜을 목격함으로써 분노와 절망에 휩싸입니다. 성인 되기의 어려움은 어머니와도 관련됩니다. 병든 어머니를 방치하는 아버지를 대하는 스파이크에게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봅니다. 한편 어머니를 어떻게든 치료해 보려는 그는 거친 세상에 대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깊은 밤 졸음을 이기지 못한 채 좀비의 공격에 노출된 그를 구해낸 것은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 아일라의 모성애와 용기였습니다.

스파이크의 성장 서사가 중심인 이 영화는 두 번의 육지 여행과 섬으로의 귀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해 남성다움의 용맹함과 거친 세상에 대한 혼돈을 경험한 그는 어머니와의 여행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깊이 깨닫습니다. 전자의 경험이 외적인 통과의례였다면 후자의 경험을 통해 그는 내면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풍부한 시각적 장치, 좀비의 출몰로 인한 공포와 충격, 강도 높은 액션 등으로 볼거리가 충분한 이 영화는 그럼에도 다소 아쉽습니다. 소년의 성장이라는 고전적인 서사 구조와 SF 영화적 양상이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좀비의 아이를 얻어 살려냈지만 인간 세상이 어떻게 좀비처럼 비참하고 비극적인 세계로 전락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우지 못합니다. 관객 역시 깊이 있는 문명 비판의 관점으로 성찰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천변고속화도로 역주행 사고 경차 운전자 사망
  2. "설 연휴 대전 백화점과 아울렛 휴무일 확인하고 가세요"
  3. 충남교육청 "설 명절 주차, 걱정마세요" 도내 교육기관 주차장 무료 개방
  4. 설 귀성길… ACC 사고 사망자 10명 중 7명은 ‘ 주시 태만 ’
  5. 지방선거 후 '세종시 3분기'...새로운 전환점 맞는다
  1. 대전 백화점과 아울렛이 준비한 설 연휴 볼거리와 즐길거리는?
  2. 초등 졸업때 미래 나에게 쓴 편지 20년만에 열어보니…대전원앙초 개봉식 가져
  3. 백석대학교 유아특수교육과, 전국 8개 시·도 임용고시 수석·차석 등 합격자 배출
  4. '학교급식법' 개정, 제2의 둔산여고 사태 막을까… 새학기 학교는?
  5. 김석필 천안시장 권한대행, 설 앞두고 전통시장 민생 행보

헤드라인 뉴스


[그땐 그랬지] 1992년 설날, ‘홍명’과 ‘중앙’ 장악한 청춘들

[그땐 그랬지] 1992년 설날, ‘홍명’과 ‘중앙’ 장악한 청춘들

1992년 2월 4일 설날, 대전 원도심의 극장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OTT도, 멀티플렉스도 없던 시절, 명절 연휴 극장은 시민들에게 최고의 오락이자 문화를 향유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당시 본보(중도일보)에 실린 빼곡한 극장 광고는 그때의 열기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 홍콩 액션과 할리우드 대작의 격돌 광고의 중심에는 당시 극장가의 '흥행 보증수표'였던 홍콩 영화와 할리우드 액션물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홍콩연자(香港燕子)'는 당시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대변하며 중장년층과 청년층을 동시에 공략했다. 할리우드 액션물의 위세도 대..

한국 최초 근대교육기관 설립한 선교사 `친필 서간문집` 복원
한국 최초 근대교육기관 설립한 선교사 '친필 서간문집' 복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친필 서간문집이 복원된다. 한국전쟁 이후 발견됐던 이 서간문집은 교육과 외교 등 한국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사료다. 16일 배재대에 따르면,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 친필 서간문집'이 국가기록원 복원 사업에 선정됐다. 서간문집은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인정받아 국가기록원의 보존 처리, 정밀 스캔으로 디지털 파일로 복원돼 연구자와 시민에게 공개된다. 1005쪽에 달하는 서간문집은 배재학당 설립자인 아펜젤러 선교사(H. G. Appenzeller, 1858-19..

지방선거 후 `세종시 3분기`...새로운 전환점 맞는다
지방선거 후 '세종시 3분기'...새로운 전환점 맞는다

2026년 '세종시=행정수도' 완성의 골든타임 한해가 다시 시작됐다. 1월 1일 새해 첫날을 지나 2월 17일 설날을 맞이하면서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쪽 행복도시'로 남느냐,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나아가느냐를 놓고 중대 기로에 서 있다. 현실은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 해소 대의 실현에 거리를 두고 있다. 단적인 예로 4년째 인구 39만 벽에 갇히며 2030년 완성기의 50만(신도시) 목표 달성이 어려워졌다. 중도일보는 올 한해 1~4분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현안과 일정을 정리하며, 행정수도 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이제는 사라지거나 잊혀져 가는 명절 모습 이제는 사라지거나 잊혀져 가는 명절 모습

  • ‘건강하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세요’ ‘건강하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세요’

  • ‘대전 죽이는 통합법, 절대 반대’ ‘대전 죽이는 통합법, 절대 반대’

  • 누가 누가 잘하나? 누가 누가 잘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