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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두 국가독성과학연구소장 |
국민건강과 안전사회 실현을 위한 글로벌 독성 연구기관이라는 비전에 걸맞은 기관명과 함께 독성연은 허정두 소장을 필두로 미래 20년을 위한 기술로드맵을 준비 중이다. 허 소장은 평가제도 개편을 통해 노력을 인정받는 문화를 만들고 구성원과의 정기적 간담회 '허심담회'로 연구소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모은다. 허 소장은 그 목소리를 허투루 듣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거나 불가능할 땐 그 이유를 설명하며 기관을 운영 중이다.
1989년 계약직 동물시험 담당부터 한 기관을 책임지는 기관장이 된 허정두 소장은 자신의 연구가 국민에게 어떤 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철학을 지녔다. 그에게 기관 명칭 변경과 이를 통해 독성연이 추구하는 연구소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주>
-2025년 3월 안전성평가연구소에서 국가독성과학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했다. 바꾸게 된 배경과 과정이 궁금하다.
▲가장 큰 배경은 기존 명칭이 연구소의 실제 역할과 정체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국민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안전성평가연구소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국민이 산업재해나 시설, 건축물, 소방 안전 등과 같은 기관으로 오해했다. 과제 수주를 위해 외부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기관 명함을 내밀면 뭐 하는 곳인지 물었다. 기관장이 되기 전부터 명칭 변경 필요성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2024년 9월 취임 후 조직개편을 했고 10월 말, 11월부터 문제를 제기해 기관 명칭 변경을 진행했다. 2024년 말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연구소의 정확한 역할을 인식하는 응답자는 13%에 불과했다. 70% 이상이 다른 분야로 인식했다. 이러한 명칭의 모호함은 대국민 소통, 우수인재 확보, 국제협력 확대 등 연구소의 중요한 영역에서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다.
새로운 명칭에 '국가' '독성' '과학'이라는 키워드를 담아 기관의 위상과 핵심연구분야, R&D 중심 기관으로서의 과학기술 혁신 의지를 명확히 하고자 했다.
과정은 약 3개월에 걸쳐 일반 국민, 내부연구소원,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명칭 적합도 조사를 했고 이 결과에 대해 명칭변경위원회를 구성해 타당성과 명칭 후보군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관련 부처와 유관기관, 학회, 산업계, 언론, 연구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명칭 수용성, 미래지향성, 기관운영 목적성, 브랜드가치, 활용성, 차별성, 연구영역 대표성 등에 대해 검토했다. 이후 2025년 3월 28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정기이사회에서 최종 변경 의결됐고 4월 29일 명칭 변경식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선포하게 됐다.
-명칭 변경에 따라 기관 미션과 비전, 역할과 책임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연구소는 10여년 전 연구소의 핵심역할을 '시험평가'에서 '연구'로 전환한 바 있다. 민간 CRO와의 경쟁구도 해결, 공공적 역할 강화 등을 위해 2014년 임무재정립, 2019년 R&R 수립 등으로 기관 핵심 역할을 변경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역할을 재정립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명칭에 계속 '안전성평가'라는 단어가 남아 있어 대내외적으로 많은 혼란을 주었다. '안전성평가'를 '독성과학'으로 변경한 것은 과거의 '시험평가' 중심의 기관 이미지보다는 독성 분야의 과학연구를 주로 하는 연구소로서의 역할 강화를 염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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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구소는 과거부터 산업계 안전성평가 지원 등을 비롯한 많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임팩트 있는 연구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소장 임기 동안 내부적인 많은 혁신을 통해 연구 경쟁력을 강화해 대형 연구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연구기관으로 변모하는 것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임기 시작과 동시에 연구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소가 중점 육성할 4개 핵심기술을 발굴했다. 핵심기술 개발이 성공할 수 있도록 인사제도 개편·조직문화 혁신·연구환경 개선 등을 추진 중에 있다. 인력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인센티브 제도와 인건비 배분제도를 현실적으로 개선했다. 지금은 중장기 인력운영 전략과 성과평가 제도 개선을 진행 중이다.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분기별 보직자 리더십 평가제도'(QLC)를 도입해 보직 임면에 고려하고 있다.
10월부터 연구소원 전체 간담회를 계속하고 있다.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연구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다. 소장 주관 간담회 '허심담회'를 통해 임기 시작 이후 현재까지 총 29회까지 진행하며 정규직·비정규직 소원들 모두와 직접 대화하고 관련 의견을 청취하고 기관운영에 반영하고 있다.
또 고가 연구장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를 개선했고 지역조직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상생협력센터를 설치해 지자체와 지역 산업계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부분도 추진 중이다.
-2024년 R&D 삭감 파동 당시 독성연의 삭감 폭이 유독 컸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2024년 국가 R&D 예산 삭감 파동은 과학기술계 전반에 걸쳐 큰 충격과 우려를 안겼다. 우리 연구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대한 삭감 폭이 매우 컸다. 우리 연구소는 전년 대비 24.1%가 삭감됐다. 출연연 중에서 가장 큰 폭의 감소를 겪은 기관 중 하나였다. 이러한 삭감으로 인해 신규과제 추진의 어려움, 기존 과제의 예산 감액, 인력 운용의 불확실성 증대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는 정부가 연구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과학기술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성연은 명칭 변경을 한 만큼 바이오와 보건의료 분야 R&D 예산 확대 기조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바이오헬스 R&D 분야 예산을 1조 원 규모로 확대하고 합성 생물학, 백신 개발과 같은 첨단바이오 분야에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독성연구는 첨단바이오 기술개발과 국민 건강 및 안전 확보에 필수적인 분야므로 내년(2026년)에는 어려움을 벗어나 예산 상황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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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구소는 R&R(역할과 책임)과 미션 자체에 국민건강 보건 증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그 역할을 했다고 본다. 당시 폐질환 이외의 다양한 피해 질환에 대한 독성학적 규명 필요성이 제기됨이 따라 우리 연구소가 2021년 센터로 지정돼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이후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과학적 진실 규명을 위한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성분 중 'PHMG'를 동물 모델 호흡기에 노출시켰을 때 유사 천식 증상이 발병됨을 확인했다.
그리고 'CMIT-MIT'와 같은 성분의 폐섬유화 유발을 규명함으로써 가습기살균제 항소심에 결정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그 외 다양한 연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률적 판단과 의학적 지원의 근거 자료로 활용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앞으로도 그동안 축적된 전문성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피해자들을 위한 건강 영향 연구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또 자랑할 만한 연구성과가 있다면.
▲독성연은 국민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유해물질에 대한 독성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으로서 세 가지 정도 대표적인 연구 성과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흡입독성평가와 독성예측기술 고도화다. 미세먼지, 나노물질 같은 다양한 흡입성 유해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동물모델과 세포실험을 통해 규명하고 독성기전을 밝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첨단 흡입노출시스템을 개발해 실제 생활 환경을 모사한 정밀한 기술을 구축하고 있다.
둘째는 대체독성 시험법 개발과 국제 표준화다. 동물시험 윤리와 효율성 증대가 요구됨에 따라 오가노이드(3D 장기유사체) 기반 독성평가, 오믹스 기술을 활용한 바이오마커 발굴 등과 같은 첨단 대체독성시험법을 개발하고 있다.
셋째는 AI기반 바이오빅데이터 독성예측기술이다. 기존 독성데이터나 유전체 정보, 단백질체 정보 등 방대한 독성관련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을 데이터 분석에 적용해 방대한 화학물질의 독성여부를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잠재적 유해물질을 효율적으로 식별하고 특정 물질에 대한 인체 반응을 예측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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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연구자 본인만 만족해선 안 되고 인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연구자들한테도 항상 이야기하지만 이름을 내기 위해 연구하고 논문 쓰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연구를 하는 게 사람과 관련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떻게 선한 영향을 미칠지 항상 생각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특히 우리 연구소 이름이 바뀌면서 국민 건강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출연연의 역할을 분분히 해야 한다. 구성원에게 이런 내용을 어떻게 계속 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허심담회는 계속할 계획이다. 연구자들은 항상 예산이 부족하다고 한다. 예산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앞단에서 말한 것처럼 이 연구가 무엇이, 어떤 부분이 국민한테 영향을 끼칠 것인지 명확히 알고 이해되면 과감하게 투자할 생각이다.
남은 임기 동안 앞에 설명한 4대 핵심기술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연구환경을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연구자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연구 수행에서 연구 인력의 활용이 가장 중요하므로 우수한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연구 성과를 내는 선순환 시스템 구축에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인력과 조직의 효율적 배치, 적절한 교육·훈련 등 육성 제도, 공정한 평가와 성과보상제도의 혁신을 임기 내내 고민하고 추진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연구소의 중장기 발전을 위해 KIT 비전 2045를 수립하고 향후 20년간의 기술로드맵을 수립을 추진할 생각이다. 우리 연구소는 '시험평가'에서 '연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정체성과 미래 비전에 혼란을 느껴왔다. 저 또한 그중 한 명이었다.
변경된 명칭에 부합하는 연구소의 미래 비전을 마련하고 앞으로 연구소가 나아갈 방향을 정부와 국민과 그리고 소속 연구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년 이후인 2045년에 연구소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그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 연구자들과 고민해서 같이 만들어 볼 생각이다. 대담=고미선 사회과학부장·정리=임효인 기자·사진=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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