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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가 11월부터 한 달간 운영한 '찾아가는 원마음 서비스' 프로그램은 소박했지만 큰 울림을 남겼다. (사진=이영진 기자) |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가 11월부터 한 달간 운영한 '찾아가는 원마음 서비스' 프로그램은 소박했지만 큰 울림을 남겼다. 서울 노무현시민센터의 한 회의실에서 마주 앉은 삼청교육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조용히, 그러나 오래 눌러 담아온 상처를 꺼내 놓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공통된 감정이 묻어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그날을 지나고 있다"는 간절함이었다.
1980년 삼청교육대는 국가가 만들어낸 폭력이었다. 무려 6만 명 이상이 검거되고, 약 4만 명이 군부대에 수용돼 불법 구금과 폭행, 강제노역을 겪었다. 하지만 사건은 40년 넘게 흘렀어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사회 한편에 고립돼 있다.
명예 회복은커녕, '그 시절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라는 왜곡된 낙인이 삶을 뒤따랐다. 가족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많은 피해자들은 말한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온 한 참여자의 말이 오래 귓가에 남는다.
"열심히 살아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기분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가족에게조차 말이죠."
이 고백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국가폭력 피해자가 겪는 구조적 고립을 보여준다.
공공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들은 오늘도 트라우마와 싸운다.
국가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왔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트라우마치유센터가 마련한 프로그램은 단순한 심리교육이나 취미 활동이 아니다.
아로마오일을 이용한 안정화 기법, 긍정 경험을 재구성하는 시간, 삶의 불편함을 다루는 훈련…. 이 과정의 핵심은 '함께'다.
피해자들은 서로에게서 위로를 발견하고,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말 한마디, 손을 마주 잡는 짧은 순간이 수십 년 묵은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서울에도 트라우마센터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요청이다.
회복은 장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말할 수 있어야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로서,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작은 프로그램 하나에 피해자들이 이토록 위로를 느꼈다는 사실은, 동시에 그동안 국가가 보여준 무관심의 크기를 말해준다. 40여 년 동안, 왜 이 자리들이 더 일찍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국가는 세심한 치유를 요구하는 이들의 삶을 더 이상 '과거의 문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삼청교육 피해자들의 시간은 아직 진행 중이며, 치유는 이제 겨우 문턱을 넘었다.
그날의 고통이 역사의 기록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회복으로 이어지도록...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간, 더 많은 손길, 더 많은 경청이다.
그것이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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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