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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
도시는 오랫동안 풍경과 거리를 두었고, 자연은 도시의 바깥에 놓였으며, 풍경은 감상의 대상이거나 관리의 대상이었다. 산은 배경이 되었고, 강은 구획선이 되었으며, 바다는 도시의 끝으로 정의되었다. 그렇게 도시는 스스로를 가두고 풍경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나 도시의 골목들이 지닌 많은 이야기들이 보여주었듯, 도시는 풍경을 결코 배제하지않았고, 그 결과 경계는 도시의 주제가 되지 않았다. 도시와 연관되어 온 물, 지형, 시간, 문명의 흐름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되는데, 도시는 언제 풍경을 경계로 삼지 않게 되는가. 다시 말해, 풍경을 통제하거나 구분하지 않고도 도시가 성립할 수 있는 상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그 질문 앞에서 도시가 아닌 아프리카의 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아프리카 동쪽 내륙에 있는 케냐와 탄자니아의 공유지인 '세렝게티 국립공원'다. 이곳에는 건물도, 거리도, 광장도 당연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렝게티는 우리가 도시라 부르는 공간보다 훨씬 오래된 질서를 유지해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풍경은 배경이 아니라 구조이며, 경계는 선이 아니라 조건이다. 하늘과 바람도 이어지는 물길이며 풀이며 이곳을 지나는 모든 동물도 역시 멈출 수 없다. 물론 세렝게티는 명확한 행정경계가 존재하는 국립공원으로, 지도 위에서는 분명한 선으로 나뉘며, 국가와 보호구역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사바나의 시원한 비와 뜨거운 마름이 반복되는 초원 위에서 그 경계는 체감되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가늠하기 어려운 누와 얼룩말 떼들은 국경을 인식하지 않고 이동하며, 강과 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삶의 경로를 바꾼다. 이곳에서 풍경은 분리의 기준이 아니라 이동과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일 뿐이다.
반면, 우리가 사는 일상의 도시와 대비해 보면 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도시의 경계는 멈춤을 전제로 한다.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을 나누고, 그 사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세렝게티의 풍경은 멈춤을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동을 전제로 나름의 질서를 만든다. 풍경이 경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섞인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조정된다는 뜻이다. 방치된 듯, 인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야생은 도시의 반대편에 서 있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가 잃어버린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물과 분리되지 않았던 도시들, 지형이 질서가 되었던 도시들, 시간과 계절이 공간을 조직했던 도시들, 문명과 시간이 겹쳐 흐르던 도시들 역시 같은 질문을 던져왔다. '도시는 모든 것을 선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풍경도 경계하지 않는 도시'는 '경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라는 해답을 준다. 국경과 제도, 관리와 계획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그것들이 도시의 본질이 되지 않는 상태를 상상한다. 풍경이 도시의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고, 도시의 내부에서 함께 존재하는 상태다. 그때 경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드러나지 않게 된다. 구태여 새로운 도시의 모델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대신 이미 존재해 온 도시들과 도시가 아닌 공간들을 통해, 우리가 익숙함 속에서 놓쳐온 감각을 회수함으로 함께하는 도시의 재구성을 상상해 본다. 풍경을 배경으로만 보지 않던 감각, 시간을 관리 대상이 아니라 질서로 받아들이던 태도, 차이를 구분하기 보다 중첩으로 이해하는 시선이다. 풍경도 경계하지 않는 도시는 어쩌면 도착해야 할 미래가 아니라, 이미 여러 곳에서 존재 해왔던 상태일지 모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도시는 더이상 풍경을 염려하지 않고 내일의 이어짐으로 나아갈 것이다.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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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