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쫀득한 소속감의 마법: 주도적인 아이들을 만드는 학급 브랜딩

  • 정치/행정
  • 세종

[교단만필] 쫀득한 소속감의 마법: 주도적인 아이들을 만드는 학급 브랜딩

김누리 새롬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26-03-19 16:41
  • 신문게재 2026-03-20 18면
  • 이은지 기자이은지 기자

교사는 학생들이 수동적인 배정에서 벗어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학급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설정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학급 브랜딩'을 실천했습니다. 학생들은 직접 학급 이름과 마스코트를 정하고 AI 기술로 캐릭터를 구현하는 과정에 참여하며, 스스로 규칙과 활동을 제안하는 능동적인 주인공으로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학교를 가고 싶은 즐거운 공간으로 변화시키며 아이들의 공동체 의식과 주도적인 성장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새롬초 김누리 선생님
김누리 새롬초등학교 교사
교단에 선지 10년. 새 학기 새 교실 문 앞에 서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낯선 긴장이다. 우리는 행정적 절차에 의해 '3학년 10반'이라는 칸 안에 수동적으로 배정된 사이일 뿐이니 말이다. 아무런 사전 공감대나 약속 없이 숫자 아래 묶인 이 관계가 아이들에게 바로 소속감을 주기는 어려울 터. 나는 이 거리감을 좁히고, 아이들을 수동적인 '10반 구성원'에서 능동적인 '우리반 주인공'으로 바꾸어 줄 학급 브랜딩 방안을 고민한다.

'학급 브랜딩'이란 우리 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설정하고, 이를 문화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우리 반 하면 떠오르는 가치와 이미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아이디어가 학급의 브랜드가 되고, 그것이 다시 아이들에게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으로 돌아가는 과정. 이를 위해 나는 3월의 '학급 세우기 주간'을 활용했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일주일 가량 가진 뒤, 아이들에게 주문했다. "우리는 10반 대신, 우리만의 비밀 코드 같은 이름을 지을 거야." 스토리텔링에 몰입하는 열 살 아이들의 눈이 금세 반짝인다.

숙제로 내준 학급 이름 공모 결과, 칠판에는 저마다의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의미 있고 귀여운 후보작이 가득 적혔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평화로운 하늘반', '밥알처럼 뭉친 따듯한 햇반' 등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눈에 띈 이름은 '누쫀쿠'반이었다. 지난 해 디저트계를 휩쓴 '두바이 쫀득 쿠키'를 잘못 썼나 싶었지만, 그 아래에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깜찍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누리 선생님과 쫀득한 쿠키들'의 줄임말이란다. '쫀'의 쌍자음과 '쿠'의 거센소리 조합이 주는 리듬감이 강렬했던 탓일까. 아이들은 자석에 이끌리듯 누쫀쿠라는 이름에 표를 던졌고, 그렇게 우리 반은 전국 어디에도 없는 3학년 '누쫀쿠반'이 되었다.

브랜딩은 마스코트 만들기 활동으로 탄력을 받았다. 누쫀쿠반의 얼굴인 마스코트 공모전을 열겠다고 하니, 열 살 아이들의 상상력은 날개를 달았다. (개성적인 우리처럼) 다양한 모양의 쿠키 상자를 든 고양이 '누쫀냥', 마시멜로우처럼 쫀득하게 붙어있는 '모찌' 등 귀여운 후보들이 쏟아졌다. 나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아이들이 그려온 원작의 감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깜찍한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어 주었다. 삐뚤빼뚤한 선의 그림이 화면 속에서 생명력을 얻은 캐릭터로 나타난 순간, "마법 같아요!"라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AI를 교실에 들여온 이래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최종 당선된 마스코트는 강아지 포켓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누쫀쿠멍'이었다. 동글동글 귀여운 쿠멍이의 모습에 아이들은 벌써 마음을 다 뺏긴 듯했다. "이 아이로 이제 뭐 해요?"라는 물음에 나는 질문의 화살표를 다시 아이들에게 돌렸다. "그건 너희의 아이디어에 달렸지!" 아이들은 저마다 빛나는 생각들을 쏟아냈다. "저희가 수업 잘 참여하면 쿠멍이한테 쿠키 점수를 주세요!", "쿠키가 많이 쌓이면 진짜 쿠키 만들기 수업을 해요!", "가방에 달 수 있는 쿠멍이 굿즈를 만들어요!" 학급은 교사 혼자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요즘 교육 현장에서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교육철학으로 아이들의 잠재된 다채로운 빛깔을 발견해 내는 선생님들의 학급 브랜딩 사례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우리 반은 이런 반이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이러한 노력은 결국 학교라는 공간을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힘으로 이어진다. 새 학년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을 안고 교실에 온 아이들은 어느새, 재미있는 상상을 통해 주도적으로 학급을 운영하는 쫀득한 쿠키들이 되어가고 있다. 스무 명의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갈 달콤 쫀득한 일 년이 기대된다. /김누리 새롬초등학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 연서면 월하리 폐차장서 불…"주민 외출 자제"
  2. 아산시, 전통시장 주차환경 "확 바뀐다"
  3. 한국 수묵 산수화 거장 조평휘 화백 별세… 충청 자연을 '운산산수'로 남기다
  4. 충남 선거구 획정, 행안부 재의요구 현실화… 도의회 6일 원포인트 임시회 다시 연다
  5. [상고사 산책](16)별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 오성취루와 『환단고기』 석재의 천기누설
  1. '정진석 공천 반대' 김태흠, 지선 예비후보 등록 연기
  2. 세종시 조치원 'A아파트' 입주민, 6일 일상 복귀한다
  3. 더불어민주당 장기수 천안시장 후보, "원팀으로 일하는 캠프 꾸릴 것"
  4. 이장우 "더욱 위대한 대전으로"… 재선 대전시장 출사표
  5. 충남도, 금강수목원 매각 재추진…"땅만 팔고 분쟁 위험은 세종에" 공분

헤드라인 뉴스


[기획] 6·3지선 어젠다-대덕세무서 신설 힘모아야

[기획] 6·3지선 어젠다-대덕세무서 신설 힘모아야

(가칭) 대덕세무서 신설을 둘러싼 요구가 경제계와 산업계, 민간단체 등 지역 각계로 확산되며 공론화되고 있다. 이에 중도일보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정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등 지역의 현안을 짚어보고, 출마 후보들이 지역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6·3 지방선거 어젠다, 대덕세무서 신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세정 수요·공급 불균형 ② 경제계, 민간단체도 한 목소리 ③ 현실화 위해선 정치권 역량 결집 필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덕세무서 신설 목소리가 지역 전반으로 확산..

전남 보성 `녹차 마라톤` 흥행… 세종시에 투영한 모습은
전남 보성 '녹차 마라톤' 흥행… 세종시에 투영한 모습은

'달려야 산다'는 신조어로 연결되는 러닝 열풍이 지역 경제 활성화의 새로운 기제로 주목받고 있다. 파크 골프와 함께 전국적인 인기몰이를 하며, 지역마다 흥행 가능한 마라톤 및 러닝 대회가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신청 가능한 대회만 올해 117개로 파악되고, 전체적으로 300~4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종시에선 4월의 조치원 복사꽃 마라톤대회(21회)와 10월 한글축제의 한글런(3회)이 가장 큰 규모 대회로 진행되고 있다. 이 밖에 어울림 마라톤 대회와 천변 러닝 대회 등 지역민 참가 중심의 대회도 열리고 있..

[지역민 염원, 대덕세무서 신설] 대전 세정 수요·공급 불균형… 불편은 지역민·기업 몫?
[지역민 염원, 대덕세무서 신설] 대전 세정 수요·공급 불균형… 불편은 지역민·기업 몫?

(가칭) 대덕세무서 신설을 둘러싼 요구가 경제계와 산업계, 시민단체 등 지역 각계로 확산되며 공론화되고 있다. 이에 중도일보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정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등 지역의 현안을 짚어보고, 출마 후보들이 지역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6·3 지방선거 아젠다, 대덕세무서 신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세정 수요·공급 불균형 ② 경제계, 시민단체도 한 목소리 ③ 현실화 위해선 정치권 역량 결집 필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덕세무서 신설 목소리가 지역 전반으로 확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과학과 나무랑 놀자’…유성 어린이 한마당 행사 성료 ‘과학과 나무랑 놀자’…유성 어린이 한마당 행사 성료

  • 올해 첫 모내기로 본격 영농 시작 올해 첫 모내기로 본격 영농 시작

  •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분주한 선관위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분주한 선관위

  • 다양한 체험과 공연에 신난 어린이들…‘오늘만 같아라’ 다양한 체험과 공연에 신난 어린이들…‘오늘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