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천장이 민심 앞에 무릎을 꿇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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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천장이 민심 앞에 무릎을 꿇은 날

  • 승인 2026-06-04 08:38
  • 김정식 기자김정식 기자
김정식 기자
김정식 기자<사진=김정식 기자>
어제 경남의 투표함이 열렸을 때 나온 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보수 야당의 오만함에 쌓이고 쌓인 도민의 분노였다.

경남도지사 선거 출구조사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가 54.3%를 기록하며 현직 국민의힘 박완수 지사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32년 보수 철옹성이 뿌리째 흔들린 서막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지만 진짜 반란은 경남 서부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진주와 거창, 합천과 의령.

보수가 숨을 쉬고 보수가 밥을 먹는다던 고장들이다.

바로 그 고장의 시장과 군수 자리를 무소속 후보들이 통째로 집어삼켰다.

진주에서는 현직 시장이 중앙당의 밀실 공천 과정에서 잘려 나갔다.

당이 사람을 버리자 유권자는 당을 버리고 사람을 택했다.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나선 현직 시장이 국민의힘 공천 후보를 보기 좋게 주저앉혔다.

거창과 합천, 의령도 판박이였다.

공천 학살에서 밀려난 지역 인사들이 무소속 간판을 달고 출마해 당당히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공천장이 곧 당선증이라는 거대 야당의 공식이 네 곳에서 동시에 박살 났다.

의령에서는 오태완 군수가 무소속으로 의령군 역사상 최초의 '3선 군수' 고지에 올랐다.

중앙당의 권력이 아닌 오직 군민의 두터운 신뢰가 만들어낸 대기록이다.

기초의원 선거로 내려가면 민심의 칼날은 더 선명하고 매서웠다.

골수 보수 텃밭인 산청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석을 빼앗아 왔다.

합천에서도 민주당이 2석을 챙겼고 거창과 함양에서도 의석을 확실하게 확보했다.

거창·산청·함양·합천 4개 군의 기초의원 38석 가운데 무소속 8석과 민주당 8석 등 총 16석이 국민의힘 울타리 밖으로 빠져나갔다.

보수 야당 안방에서 절반에 가까운 의석이 증발한 셈이다.

무소속 돌풍의 실체는 현장 바닥에서 확인됐다.

거창 다선거구 박수자, 산청 라선거구 안천원, 합천 다선거구 노성용 후보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국민의힘 정당 공천 후보들을 모두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리며 당선을 확정 지었다.

낙하산이 내려앉은 오만의 자리에서 민심이 땅을 박차고 올라온 결과다.

진주시의회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4년 전 국민의힘 15석, 민주당 7석이던 의회는 이번 개표를 통해 국힘 10석, 민주당 8석, 무소속 1석으로 재편됐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만 무려 5석이 날아갔다.

시장 자리를 무소속에게 내준 날 의회 권력마저 통째로 균열이 간 것이다.

사천시의회도 지형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4년 전 국민의힘이 지역구 10석을 독점했던 사천에서 이번엔 여당인 민주당이 5석을 가져가며 의석을 정확히 반분했다.

우주항공도시를 내세운 박동식 시장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의회 절반은 야당에 안방을 내어주게 됐다.

하동에서는 국민의힘 김현수 후보가 당선됐다.

전 KBS 보도국장 출신으로 현장을 제대로 아는 인물에게 군민들이 손을 들어준 결과다.

이날 경남 유권자들의 최종 투표율은 64.4%를 기록했다.

4년 전보다 무려 11%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도민들이 일제히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보수 야당의 공천 오만에 분노했고 줄 세우기 정치에 지쳤으며 낙하산 공천에 질렸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

조용히 기억하고 조용히 칼을 갈아왔다.

그리고 어제 그 서슬 퍼런 칼을 투표함 속에서 꺼내 들었다.

경남 민심이 내린 판결문은 단 한 줄로 요약된다.

민심을 배신한 공천 오만은 반드시 심판받는다.
경남=김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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