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오의 시조 풍경-25] 충청도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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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오의 시조 풍경-25] 충청도 머슴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 승인 2026-08-05 23:40
  • 수정 2026-08-05 23:4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작가는 시 '충청도 머슴'을 통해 농경사회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성실히 일하며 정을 나누었던 어린 머슴의 순박한 삶과 애환을 회고합니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주인집 가족을 위해 칡뿌리를 챙기던 친구의 모습을 통해 잊혀가는 시대적 풍경과 시린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현대인들에게 과거의 정서와 역사를 이해하는 소중한 통로이자 새로운 상상의 영역을 제공합니다.

쌩쌩한 겨울 산길 올라가는 어린 머슴

도끼로 찍어낸 나무 휘어지게 짊어지고

산길을 내려올 때는

칡뿌리도 캐 얹는다



주인집 어린 아씨 알진 뿌리 잘라주고

허리춤 추스르며 슬며시 짓는 능청

가랑잎 신문지에 말아

피워 문다 담배 한 대



<시작노트>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뒤안길에는 전설이 살아있다. 시대에 따라서 환경이 다르고 생활상이 다르고 사람들의 의식이 다르기 때문에 삶의 이야기 그대로가 전설로 남기도 한다. 풍족하고 편리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전설에 대하여 흥미가 없겠지만 전설도 새로운 상상의 영역이 될 수 있고 정서의 깊이가 될 수 있으며, 역사를 알아가는 이해의 과정이 될 수 있다.

내가 우연히 세 번째 시집에 「충청도 머슴」이란 시조를 실었는데 후에 교원대학교 원로 교수님이 이 작품의 향토성과 시대성을 극찬하는 해설을 한 문예지에 실어주시어 깜짝 놀랐다.

머슴이란 머슴살이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농경지를 많이 소유한 사람을 '부자'라고 하였다. 당연히 자기 힘으로 자기 농토를 다 경작할 수 없으니 두레나 품삯 일꾼을 활용해서 농사를 짓지만 그 뒷받침과 뒤처리를 감당하기 위하여 상용 일꾼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위 '새경'을 일 년에 쌀 몇 가마 주기로 하고 머슴을 고용한다. 머슴방을 따로 두고 그 집에서 한 해 동안 살면서 일을 도맡아 한다. 때로는 나이 어린 머슴을 두기도 한다.

내 친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말없고 착하고 덩치가 큰 친구였다.

겨울이면 늘 땔감이 필요했다. 때로는 먼 산에 올라가 나무뿌리를 캐가지고 지게에 지고 온다. 그때 땅을 파다가 칡뿌리도 캐서 얹는다. 봄에는 진달래도 캐서 얹는다. 고된 등짐에 웃음 한 가지 얹는 멋스러움인 것이다. 즐기지 않고 어찌 머슴살이를 하랴. 순진한 소년 머슴은 주인집 예쁜 딸아이에게나 주인집 마님께 주고 싶어 은근히 즐거움을 품는다. 머슴이 또 한 가족이었다. 새경은 고마움의 표시였다. 예전에는 남성들이 대부분 담배를 피웠다. 머슴은 담배를 살 돈이 없으니 풀잎이나 나뭇잎을 부숴서 종이에 말아 피우기도 하였다. 그렇게 착하게 일하던 친구가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가끔 잊을 수 없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장작을 쪼개는 받침나무인 '모탕'에 비유해서 작품을 쓰며 시린 그리움을 앓는다.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박헌오
박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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