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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
이틀 후 반지를 무사히 찾은 여성과 그의 남편은 크게 감동하여 빌리를 위한 자선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이 따뜻한 사연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려 2억 3000만 원이라는 모금액이 모였다. 빌리는 새 삶을 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16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가족과도 다시 만나는 기적을 맛보았다.
정직했던 빌리가 삶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사람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하물며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만난다면 그 사람의 삶에는 과연 어떤 기적과 은혜가 임하겠는가?
창세기 28장에는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가로채 도망치던 야곱의 이야기가 나온다. 형의 분노를 피해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치던 야곱은 광야의 차디찬 길 위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바로 그 절망의 밤에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야곱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를 안전하게 지키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자고 일어난 야곱의 일성은 이러했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첫 감정은 뜻밖에도 '두려움'이었다. 사실 야곱의 일생은 늘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형이 두려워 도망쳤고, 훗날에는 삼촌 라반이 두려워 도망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두려운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놀라운 진리는 '하나님을 만나도 두려움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두려움의 대상'이 바뀔 뿐이다. 이전의 야곱은 상황과 사람, 힘을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 두려움은 단순한 무서움이 아니다. 피조물이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거룩한 경외감(敬畏感)이다. 경외란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을 참되게 만난 사람은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을 사랑하는 동시에 거룩한 두려움을 갖는다.
18세기 독일의 신학자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사람에게 끌려다니고, 돈을 두려워하면 돈의 노예가 되며, 환경을 두려워하면 상황에 갇혀 버린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뒤에 든든한 아버지가 서 있을 때 어린아이가 담대해지는 것처럼,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임을 믿을 때 세상이라는 거대한 골리앗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자고 일어났을 때, 그를 누르던 세상의 염려와 불안은 사라지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보였다. 집에서 쫓겨나 눈물 흘리며 베고 잤던 굳은 돌베개는, 하나님을 만난 아침에 거룩한 기름이 흐르는 은혜의 단으로 변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수많은 근심과 두려움 속에 아침을 맞이한다. 그러나 세상을 두려워하는 대신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바라볼 때, 우리가 지나온 눈물의 돌베개는 소망과 평안의 성전으로 바뀔 것이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경외하는 삶, 그곳에 바로 두려움을 넘어선 참된 평안과 반전의 기적이 시작된다. /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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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