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4장-전우치의 장대바위와 두 영웅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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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4장-전우치의 장대바위와 두 영웅의 여정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8-17 10:44
  • 수정 2026-08-17 14:47
  • 신문게재 2026-08-18 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보문산 장대바위 전설 등 전국에 전해지는 전우치의 기이한 행적은 고전소설의 바탕이 되었으며, 이는 지략과 변장으로 시련을 극복한 서양 영웅 오디세우스의 여정과 유사한 면모를 보입니다. 두 영웅은 비범한 능력으로 세상을 휘젓기도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난을 겪으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성장의 과정을 공유합니다. 결국 전우치와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보편적인 인간의 성장 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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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 장대바위 전경 사진=김진희 대전시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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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 장대바위에서 바라본 식장산 사진=김진희 대전시해설사
보문산 장대바위에는 전우치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식장산 고산사로 공부하러 다니던 전우치는 어느 날 개울에서 빨래하는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 마음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입을 맞출 때마다 입속에서 신비한 구슬을 굴렸는데, 그 황홀함에 빠져 공부도 소홀히 하게 되었지요. 이를 알게 된 스승은 다음에는 구슬을 삼키라고 일러주었는데, 과연 그 말대로 하자 여인은 도술을 담은 신비한 책 한 권을 남기고 여우가 되어 사라져 버렸습니다. 삼킨 구슬과 전우치에게만 보이는 책 덕분에 뛰어난 능력을 얻게 된 전우치는 훗날 청나라 도술가와 겨루게 됩니다. 전우치가 꿩으로 둔갑하자 상대는 매로 변해 뒤쫓았지요. 다급히 날아가던 전우치가 돛단배의 장대인 줄 알고 내려앉은 곳이 바로 보문산의 커다란 바위였고, 이후 그곳은 '장대바위'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도술을 통해 부조리한 세상을 뒤집어보려는 의지가 담긴 고전소설 『전우치전』도 이와 비슷하게 시작됩니다. 전우치는 여우의 구슬을 삼킨 뒤 천문과 지리를 깨치고 신비한 능력을 얻게 되지요. 실존 인물로 알려진 전우치는 뛰어난 도술과 기이한 행적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전국으로 퍼져 다양한 전설이 되었습니다. 인근 논산에도 그가 꽂아둔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은행나무가 남아 있지요. 이처럼 곳곳에 전해지던 전우치의 이야기들은 『전우치전』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전우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요즘 화제를 모으는 영화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떠오르네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10년에 걸친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 기간까지 합치면 무려 20년 동안 집을 떠나 수많은 유혹과 시련을 겪은 뒤 마침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이지요.

오딧세이 포스터
영화 '오디세이' 메인 포스터 출처=유니버설 픽처스
오디세우스는 위대한 영웅이지만 전우치와 닮은 면도 적지 않습니다. 트로이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고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고, 여행길에서도 꾀와 속임수로 위기를 벗어나지요. 전우치가 도술과 변신으로 세상을 휘젓는다면 오디세우스는 지략과 변장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셈인데,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면서 더 큰 시련을 겪게도 됩니다. 물론 두 이야기가 생겨난 시대와 배경은 다릅니다. 하지만 두 영웅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의 힘과 한계를 깨닫고 성장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요.

세이렌의 치명적인 노랫소리를 견뎌내고, 칼립소가 약속한 영원한 삶의 유혹도 뿌리치며 오랜 세월을 떠돌던 오디세우스의 여정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다닙니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에게 붙잡혔을 때 '우티스(아무도 아닌 자)'라고 이름을 감추었던 그는 무사히 빠져나온 뒤 자신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쳤고, 그 때문에 키클롭스의 아버지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바다에서 많은 고난을 겪게 되지요. 그러다 알키노오스 왕의 궁정에서 자신이 겪은 트로이 전쟁을 들려주는 음유시인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오디세우스임을 밝히고 지나온 여정을 이야기하지요. 수많은 방랑 끝에 비로소 자기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모든 여정을 지나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이타카의 왕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전우치도 긴 방랑을 통해 성장합니다. 신비로운 능력을 얻은 뒤 그 힘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몰라 임금을 속이고 함부로 도술을 부리며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자신보다 뛰어난 화담 서경덕을 만나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지요. 이후 그의 조언대로 어머니를 잘 봉양하다가 돌아가신 뒤에는 서화담을 따라 영주산으로 갑니다. 원래 영주산에서 약을 캐던 선동이었다가 죄를 지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전우치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두 이야기는 모험담이면서 한 인간이 인생의 우여곡절을 지나 자신을 알게되는 성장의 서사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겠지요. 우리 역시 저마다의 인생길에서 크고 작은 고개를 넘으며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있을 테니까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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