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4장-전우치의 장대바위와 두 영웅의 여정

  • 문화
  • 문화/출판

[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4장-전우치의 장대바위와 두 영웅의 여정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8-17 10:44
  • 수정 2026-08-17 10:53
  • 신문게재 2026-08-18 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보문산 장대바위 전설의 전우치와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는 각각 도술과 지략을 이용해 시련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영웅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두 인물은 방랑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단순한 모험담 이상의 성장 서사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고전 속 영웅들의 여정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신을 알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깊은 성찰을 제공합니다.

KakaoTalk_20260816_124528320
보문산 장대바위 전경 사진=김진희 대전시해설사
KakaoTalk_20260816_124528320_01
보문산 장대바위에서 바라본 식장산 사진=김진희 대전시해설사
보문산 장대바위에는 전우치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식장산 고산사로 공부하러 다니던 전우치는 어느 날 개울에서 빨래하는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 마음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입을 맞출 때마다 입속에서 신비한 구슬을 굴렸는데, 그 황홀함에 빠져 공부도 소홀히 하게 되었지요. 이를 알게 된 스승은 다음에는 구슬을 삼키라고 일러주었는데, 과연 그 말대로 하자 여인은 도술을 담은 신비한 책 한 권을 남기고 여우가 되어 사라져 버렸습니다. 삼킨 구슬과 전우치에게만 보이는 책 덕분에 뛰어난 능력을 얻게 된 전우치는 훗날 청나라 도술가와 겨루게 됩니다. 전우치가 꿩으로 둔갑하자 상대는 매로 변해 뒤쫓았지요. 다급히 날아가던 전우치가 돛단배의 장대인 줄 알고 내려앉은 곳이 바로 보문산의 커다란 바위였고, 이후 그곳은 '장대바위'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도술을 통해 부조리한 세상을 뒤집어보려는 의지가 담긴 고전소설 『전우치전』도 이와 비슷하게 시작됩니다. 전우치는 여우의 구슬을 삼킨 뒤 천문과 지리를 깨치고 신비한 능력을 얻게 되지요. 실존 인물로 알려진 전우치는 뛰어난 도술과 기이한 행적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전국으로 퍼져 다양한 전설이 되었습니다. 인근 논산에도 그가 꽂아둔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은행나무가 남아 있지요. 이처럼 곳곳에 전해지던 전우치의 이야기들은 『전우치전』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전우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요즘 화제를 모으는 영화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떠오르네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10년에 걸친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 기간까지 합치면 무려 20년 동안 집을 떠나 수많은 유혹과 시련을 겪은 뒤 마침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이지요.

오딧세이 포스터
영화 '오딧세이' 메인 포스터
오디세우스는 위대한 영웅이지만 전우치와 닮은 면도 적지 않습니다. 트로이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고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고, 여행길에서도 꾀와 속임수로 위기를 벗어나지요. 전우치가 도술과 변신으로 세상을 휘젓는다면 오디세우스는 지략과 변장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셈인데,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면서 더 큰 시련을 겪게도 됩니다. 물론 두 이야기가 생겨난 시대와 배경은 다릅니다. 하지만 두 영웅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의 힘과 한계를 깨닫고 성장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요.

세이렌의 치명적인 노랫소리를 견뎌내고, 칼립소가 약속한 영원한 삶의 유혹도 뿌리치며 오랜 세월을 떠돌던 오디세우스의 여정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다닙니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에게 붙잡혔을 때 '우티스(아무도 아닌 자)'라고 이름을 감추었던 그는 무사히 빠져나온 뒤 자신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쳤고, 그 때문에 키클롭스의 아버지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바다에서 많은 고난을 겪게 되지요. 그러다 알키노오스 왕의 궁정에서 자신이 겪은 트로이 전쟁을 들려주는 음유시인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오디세우스임을 밝히고 지나온 여정을 이야기하지요. 수많은 방랑 끝에 비로소 자기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모든 여정을 지나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이타카의 왕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전우치도 긴 방랑을 통해 성장합니다. 신비로운 능력을 얻은 뒤 그 힘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몰라 임금을 속이고 함부로 도술을 부리며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자신보다 뛰어난 화담 서경덕을 만나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지요. 이후 그의 조언대로 어머니를 잘 봉양하다가 돌아가신 뒤에는 서화담을 따라 영주산으로 갑니다. 원래 영주산에서 약을 캐던 선동이었다가 죄를 지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전우치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두 이야기는 모험담이면서 한 인간이 인생의 우여곡절을 지나 자신을 알게되는 성장의 서사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겠지요. 우리 역시 저마다의 인생길에서 크고 작은 고개를 넘으며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있을 테니까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최종
한소민 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금융위·개보위' 때늦은 세종 이전설… 행정수도 남은 퍼즐은
  2. 과천 경마공원 부분 개발… 시민과 노동계 강력 반발
  3. 천안시, 제81주년 광복절 맞아 독립운동 자료·사진 전시회 개최
  4. 천안교육지원청, 2026년도 을지연습 사전교육 실시
  5. 충남콘진원, AI 음원·뮤직비디오 공모전 수상작 발표
  1. "사방이 막힌다", 서산 석림6통 주민들, 40년 생활도로 통행권 대책 호소
  2. 천안중앙도서관, 시민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그림책 만들기' 운영
  3. 천안시, 여름 휴가철 청소년유해업소 민·관 합동점검 실시
  4. 독립기념관 입구, 한기대 손길로 새 옷 입다
  5. 서산 음암초 동문 50번째 소통과 화합 만남, "100년 역사, 새로운 도약 함께 만들자"

헤드라인 뉴스


가계부채 총량 증가 3%로 확대... 단순계산 시 주담대 7조넘게 여력생길 듯

가계부채 총량 증가 3%로 확대... 단순계산 시 주담대 7조넘게 여력생길 듯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총량 증가율 목표치를 3%로 확대하면서 꽁꽁 얼어붙던 주요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각 은행들의 총량 목표치를 같은 비율로 확대하고, 이를 추가 주택담보대출에 활용한다고 가정하면, 7조 5000억원 가량의 추가 한도가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16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5대 은행인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13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정책성 대출 제외)은 650조 7747억원으로, 2025년 말 644조 9700억원보다 5조 8047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

불법구금·물고문 통한 자백… 44년 만에 국가보안법 재심 무죄
불법구금·물고문 통한 자백… 44년 만에 국가보안법 재심 무죄

1980년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44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최근 무죄를 선고받았다. 1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전지법 제11형사부는 올해 7월 30일 국가보안법·반공법·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A 씨의 재심에서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계엄법 위반 혐의에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는 면소 판결했다. (사건번호 2025재고합6) A 씨는 1982년 당시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계엄법,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같은 해 10월 대전지법에서 모든 혐의가 유죄..

대전시 노후계획도시 정비 주민 상담 지원…20일 2차 컨설팅
대전시 노후계획도시 정비 주민 상담 지원…20일 2차 컨설팅

대전시가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에 대한 주민 이해도를 높이고 상담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16일 시에 따르면, 오는 8월 20일 오후 1시 30분 둔산2동 행정복지센터 2층 회의실에서 '2026년 제3회 미래도시지원센터 컨설팅' 2차 행사를 진행한다. 노후계획도시의 체계적인 정비를 위해 통합·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주민-지자체-지원기구(LH,한국부동산원)-국토부 간 소통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컨설팅에선 주민대표단 구성·운영 등 법 개정 사항과 추정분담금 산정 방식 등을 설명하고, 주민 질의에 대한 현장 상담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막바지 피서객 몰린 계룡산 계곡 막바지 피서객 몰린 계룡산 계곡

  • 백중사리 기간에 침수된 보령시 오천항 일대 백중사리 기간에 침수된 보령시 오천항 일대

  • ‘자동차 불법 튜닝 안됩니다’ ‘자동차 불법 튜닝 안됩니다’

  • 대전시-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당정협의회 대전시-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당정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