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돌아오는 자의 고통 -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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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돌아오는 자의 고통 - '오디세이'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6-08-19 16:49
  • 신문게재 2026-08-20 18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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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디세이' 포스터.
분명 먼 옛날이야기건만 영화 속 인물들은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같습니다. 그들의 고민과 방황, 갈등과 기다림은 현대인들의 실존적 고통과 다르지 않습니다. 넓은 해변의 물결이 얕고 잔잔한데 한 사내가 긴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멀리 홀로 걷습니다. 유명한 트로이의 전쟁을 끝낸 영웅인데 집으로 가는 길은 험하기만 합니다.

영화는 이렇듯 돌아오는 자의 회한을 그려냅니다. 전쟁의 불가피성은 전술의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분명 속임수의 연속입니다. 부하를 속이고, 적군을 속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입니다. 이 고전 이야기 속 현대적 인물은 신들을 만납니다. 물론 신들은 인간 편에서 그들을 위로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신의 계율을 저버린 자신을 한없이 채찍질합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은 나그네를 변장한 신으로 여기는 데 이르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자책 속에서도 맞닥뜨린 현실 앞에 또다시 속임수를 택합니다. 참으로 불행한 영웅입니다.

영화 속 시간은 비선형적입니다. 전쟁은 한참 전에 끝났고 수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여신 칼립소와 함께 7년을 보냅니다. 기억조차 잃고 앞길도 막막합니다. 하나하나 회상하며 지난 전쟁의 세월을 고통스럽게 되새깁니다. 어떻게 가족들과 이별했고, 전쟁에 참여할 군사를 뽑았으며, 어떻게 목마를 써서 적들을 속였는지의 이야기들은 그가 한 순간도 환희와 영광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종종 마주하는 아테나와의 일도, 마녀 키르케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그에게는 괴로움일 뿐입니다.

떠난 오디세우스가 남긴 가족들에게도 시간은 무의미합니다. 페넬로페의 오랜 기다림은 재혼에 대한 압박이 됩니다. 낮이면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다가 밤이면 다시 풀어냅니다. 수의를 다 짜면 구혼자들의 요구에 응해야 하기 때문. 그러니 무의미한 시간의 반복일 뿐입니다. 아들인 텔레마코스 역시 그러합니다. 나이는 먹었지만 제대로 성장해서 어른의 단계에 진입하지 못합니다. 남편과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시간은 텅 빈 그릇과 같습니다.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영웅을 소환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려 3,200년 전 이야기 속 사람을 말입니다. 영화 서두에 자막과 함께 제시되는 '한 인간, 한 지략' 등의 표현은 그것이 특정한 경우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부정관사 'a'를 사용합니다. 그 시절 그 일이 오늘날의 경험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하나의 사례입니다. 그러므로 전작 <오펜하이머>(2023)의 주제와도 연결됩니다. 승리자의 회한과 죄책감 말입니다. 영화는 시대적 배경으로 마법이 행해지던 시대라고 제시하지만 결과적으로 신들의 계율로부터 멀어져 타락해가는 인간 세상을 아프게 성찰합니다. 현대로 보자면 문명비판적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첨단화된 기계문명 속에 인간다움을 상실한 세상에 대한 죄책감.

앞서 기술한 해변의 오디세우스가 영화적 장면이라면 마지막에 이르러 이타카로 귀향한 그가 아내 페넬로페 앞에 앉아 대화하는 장면은 대단히 연극적입니다. 철망으로 가려진 채 그는 페넬로페와 분리되어 있습니다. 걸인의 행색을 한 그는 정체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깊은 죄책감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차림새는 단지 위장술이 아닙니다. 그의 궁핍한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수십 년만의 대면이지만 페넬로페는 알아채지 못한 척해 줍니다. 그의 어려움을 이해합니다. 드디어 그들은 공허한 무의미의 시간을 벗어나 인간다움을 회복합니다. 연민과 위로야말로 인간다움의 시간을 회복하게 하는 길이 됩니다.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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