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기현 원장 |
이러한 지적은 막연한 인상이 아니라 환경심리학의 오랜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 심리학자 스티븐 카플란과 레이첼 카플란 부부가 1989년 제시한 '주의력 회복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에 따르면, 사람의 의식적 집중력은 유한한 자원이어서 도심처럼 자극적인 환경에서 쉽게 소진되며, 자연처럼 부드럽게 시선을 끄는 환경에서만 애쓰지 않고도 회복된다.
생각이 뻗어나갈 여백을, 편의상 '생각의 영토'라 부를 만하다. 이 영토를 되찾으려면 자극이 없는 시간을 견디는 연습이 필요하며, 이 연습은 자극이 거의 사라진 공간에서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도심에서는 5분의 여백조차 스마트폰이 먼저 차지하지만, 숲길에서는 걷는 동안 손이 자연히 비어 있게 되고, 그 빈손이 오히려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실제로 국립산림치유원에서 진행한 한 연구에서는 4박 5일형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방 공무원 293명을 대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변화를 측정한 결과, 참여 전 평균 11.38점이던 스트레스 점수가 참여 후 6.91점으로 유의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분 상태 점수 역시 참여 전 8.58점에서 참여 후 -0.63점으로 개선되며, 부정적 정서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수면시간이 6~8시간으로 확보되었을 때 스트레스 저감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 충분한 휴식과 자연 체류가 함께 이루어질 때 회복의 폭이 커진다는 점도 시사됐다.
숲에서는 스마트폰 신호조차 약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 억지로 참는 지루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여백이 찾아온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오래 바라보고, 발밑의 낙엽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 시간이야말로 생각이 다시 넓게 뻗어 나가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그 시간 동안 오랫동안 미뤄뒀던 고민의 답을 찾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말한다.
생각의 영토는 한 번에 넓어지지 않는다. 짧은 산책 한 번으로 완전히 회복되기보다는, 자극이 적은 시간이 반복적으로 쌓일 때 서서히 넓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짜리 나들이보다 며칠간 머무르며 걷고, 쉬고, 다시 걷는 체류형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첫날은 스마트폰을 찾는 손이 여전히 분주하지만, 이틀, 사흘이 지나면서 그 손은 점점 나뭇가지를 만지고, 흙을 밟고,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로 옮겨간다. 이 변화의 과정 자체가 곧 생각의 영토가 넓어지는 과정이다. 백두대간의 풍부한 산림자원을 기반으로 조성된 국립산림치유원이 다양한 숙박형·체류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좁아졌던 생각의 영토는 하루아침에 넓어지지 않지만, 자극을 덜어낸 시간이 쌓일 때마다 분명히 조금씩 넓어진다.
김기현/국립산림치유원장
![]() |
| 국립산림치유원 제공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