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국판 순례길'을 걸으며 되새겨 본 순교자들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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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한국판 순례길'을 걸으며 되새겨 본 순교자들의 발자취

대전 서구 장안동-충남 금산 진산성지 잇은 순례길 개통
27일 대전, 세종, 충남 천주교인 순례길 걷고 의미 되짚어

  • 승인 2023-05-29 12:54
  • 수정 2023-05-29 18:56
  • 신문게재 2023-05-30 4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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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대전 장안동-충남 금산 진산성지 순례길 입구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5월 27일 오전 9시 대전 서구 장안동. 장태산 끝자락에 있는 한적한 동네에 천주교인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에서 우리나라 최초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 기념성당이 건립돼 봉헌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교인들은 미사 시작 전에 서구 장안동과 금산 '진산성지'를 잇는 숲길을 걷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산에 올랐다. 이곳은 순교자의 피와 눈물이 얽힌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교인들과 동행해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장태산을 끼고 있는 서구 장안동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로 피박 받던 순교자들이 숨어지내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던 동네다. 1791년 신앙을 위해 유교적 풍습인 제사를 거부하고 천주교식 제례를 지냈던 윤지충이 조선 조정의 배교 요구에도 뜻을 굽히지 않아 참형에 처했는데, 이 사건이 바로 '진산사건'이다. 이후 천주교 박해로 이어져 장안동에 피신했던 교인들은 윤지충의 얼이 서려 있는 진산에 가기 위해 장태산의 산중고개를 넘나들었고 각 마을에서 산길을 통해 교류하기도 했다. 이것이 이 숲길의 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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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대전 서구 장안동-충남 금산 진산성지를 잇는 순례길을 걷는 천주교인들의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역사를 바탕으로 대전 서구와 충남 금산은 장안동과 진산 성지를 잇는 6.3㎞ 규모의 '순례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봉헌식이 열리는 이날 대전과 세종, 충남권역 성당 교인 약1000명이 숲길을 찾은 것이다. 순교자들이 디뎠던 길을 밟으며 교인들은 의미를 되새겼다. 고통 속에서도 지키고 싶었던 신앙심과 숭고한 정신은 오늘날에 큰 자산을 남겼다.

산행 중 만난 천주교인 안기창 씨는 금산 진산성지 주변 마을이 자신의 고향이라며 숲길의 역사를 설명해줬다. 천주교인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까지도 주민과 상인, 나무꾼들 역시 산길을 넘나들었다. 차가 없고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산을 넘는 것이 힘은 들지만, 오히려 길을 돌아가지 않을 수 있어 이동은 더 빨랐다.



안 씨는 "옛날에는 주민들이 먹고살기 힘드니 숯과 감 등을 팔기 위해 지게를 지고 산을 넘어 흑석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내려 대전 시장에서 팔았다"며 "다시 흑석리 역으로 와 넘어 다닌 길이 이 산길이다. 그때는 진산면에 시장도 없어 주민들이 대전으로 향했다"고 했다. 이어 "장안동 쪽은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아 뗄감을 구하기도 쉬웠는데, 산길을 이용해 뗄감을 얻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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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대전 서구 장안동-충남 금산 진산성지 잇는 숲길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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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대전 서구 장안동-충남 금산 진산성지 잇는 숲길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안 씨와 얘기를 나누며 녹음이 만연한 숲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전망대에 도달했다. 원래도 사람이 다녔던 곳이지만, 대전 서구와 충남 금산에서 시민 편의를 위해 숲길을 정비했다. 숲길에는 전망대와 더불어 돌계단, 이정표, 안내판, 데크, 벤치 등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장태산의 절경과 대전과 금산의 마을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금산 진산성지 성당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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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대전 서구 장안동-충남 금산 진산성지 잇는 숲길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정바름 기자)
도달한 숲길 끝자락에서는 윤지충, 권상연 기념성당 모습이 펼쳐졌다. 성당은 숲길과 바로 이어져 있었다. 오전부터 나와 숲길을 걸은 교인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봉헌식에 참석했다.

이날 만난 천주교인 김맹철 씨는 "우리 선조들이 이 길을 지나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난을 맞았다"며 "이 신앙이 우리에게 전수되기까지 과정을 생각해봤을 때 이 길이 험난하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그분들을 생각하면 감사드릴 뿐이다. 후손이 신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이 길이 교훈이 되고 인생에서 삶의 커다란 위로가 되며 좋은 길잡이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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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봉헌식이 열렸던 윤지충, 권상연 기념 성당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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