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거장 이정식 “재즈는 소통의 음악”
2017-09-04 23:38
섹소포니스트 이정식이 대전의 재즈 애호가들을 찾았다. 일본 재즈의 거장 ‘테루미사 히노’와 함께 정통 재즈의 진수를 한 것 쏟아냈다. 지난달 24일 대전시 둔산동 재즈 전문 클럽 옐로우택시 공연을 마친 이정식은 “대전이 재즈를 사랑하는 도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며 지속적인 재즈에 대한 사랑을 당부했다.
이정식은 대한민국에 ‘재즈’라는 음악을 알린 재즈 1세대로 불린다. 통기타를 통한 포크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80년대에 ‘재즈’라는 장르를 색소폰에 담아 선보였다. 처음 그의 음악을 접했던 사람들은 생소하기만 했던 그의 음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재즈를 하면 배곯는다는 핀잔 섞인 조언이 있었지만 그는 ‘재즈’를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식의 재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은 결국 90년대 들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승철, 김건모, 신승훈, 변진섭 등 당대 최고의 대중음악인들이 자신들의 음악에 새로운 색깔을 입히면서 ‘재즈’를 찾게 된 것이다. 90년대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부르는 노래 중에는 이정식의 재즈 선율이 담긴 앨범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정식은 이른바 ‘거장’으로 불리기에는 다소 젊은 나이다. 주변에 그 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이 ‘재즈’를 하고 있지만 대중에게 정통 재즈를 선보인 이는 이정식이 먼저다. 그가 재즈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정통재즈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퓨전 형태의 재즈가 등장했지만 그의 재즈는 변화를 거부했다. 만약 그가 유행에 따라 재즈에 변화를 줬더라면 재즈1세대라는 평가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이정식이 재즈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음악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라도의 시골 깡촌 함평에서 시작했다. 그가 다니던 중학교에 인근 미군부대에서 기증하고 간 악기를 새로 부임한 음악 선생님이 수습해 밴드 동아리를 결성한 것이다.
음악적인 재능이 충만했던 이정식과 재즈의 만남은 그때 시작됐다. 처음 그의 손에 잡힌 악기는 트럼펫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섹소폰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선율이 그의 귀를 자극했고 결국 포지션을 바꿔 섹소폰을 잡게 됐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60년대에 음악에 빠져 사는 중학생 아들을 보는 부모님의 심경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남사당패냐 서커스단에 들어갈 것이냐”타박하며 말려봤지만 소년 이정식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더욱 깊어만 갔고 결국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면서 배고프고 고달픈 뮤지션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십 수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여전히 재즈 보급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찾고 있지만 그 사이 대중음악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TV와 라디오에선 힙합과 아이돌, 걸그룹의 음악이 경쟁하듯 홍수를 이루고 있다. 손가락 터치 한번이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손쉽게 들을 수 있고 음악적 지식이 없는 이들도 간단한 작곡이 가능한 시대가 왔다.
재즈는 여전히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통재즈 보다는 말랑말랑한 듣기 쉬운 재즈를 원하고 그런 재즈를 연주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은 그에게 재즈에 대한 의문을 끝없이 제기한다. 하지만 이정식의 대답은 확고하다. “퓨전재즈는 커피전문점 가서 들어라! 재즈는 연주자들의 에너지를 공유하고 받으면서 상호 작용하는 음악이다. 공연장을 한 번이라도 가서 들어봐라 전혀 다른 세상이 올 것이다”
금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