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12장-몽선대와 구봉산 신선바위

  • 문화
  • 문화/출판

[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12장-몽선대와 구봉산 신선바위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5-1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인류는 고단한 삶을 견디고 더 나은 세계를 꿈꾸며 다양한 이상향의 서사를 만들어왔으며, 대전의 몽선대와 신선바위 전설 역시 이러한 보편적 갈망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신선과의 만남과 시간의 왜곡을 다룬 이 전설들은 이상향이 영원히 머물 수 없는 곳이자 결국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상기시킵니다. 결국 이상향은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고단한 일상 속에서 잠시 얻는 평화와 위로의 순간이며, 이러한 환상은 우리가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는 원동력이 됩니다.

1
대전시 대덕구 신탄진 용정나루터와 취수장 사이에 위치한 몽선대 바위 원경 한소민 소장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만들어왔습니다. 마을 앞의 드넓은 호수나 기묘하게 솟은 바위를 보며 그 기원을 상상했고, 신분과 성별이라는 차별의 아픔을 이야기의 힘으로 견뎌내기도 했지요. 때로 이야기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권력의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서사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삶을 지탱해 온 방식이었지요.

이야기의 바탕에는 이상향에 대한 갈망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지금보다 나은 세계를 꿈꾸어 왔습니다. 고통과 늙음, 다툼과 핍박이 없는 영원한 안식처를 상상해 왔지요. 이 세상 어딘가에 더 나은 세계가 있으리라는 환상, 지금의 삶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낳았습니다. 중국의 무릉도원과 곤륜산, 그리스의 엘리시온, 켈트의 아발론은 모두 인류가 꿈꾼 완전한 세계이자 끝내 머물 수 없는 곳이었지요.

우리 대전에도 이러한 이상향의 서사가 남아 있습니다. 옛날 문의면 노산리에 살던 류씨는 금강에서 유유자적 뱃놀이를 즐기다 어느 바위 위에서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짧은 낮잠 속에서 그는 학을 타고 신선의 나라를 유람하는 황홀한 경험을 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신기한 꿈을 주위에 전했고, 이후 사람들은 그 바위를 '신선의 꿈을 꾼 곳'이라 하여 몽선대(夢仙臺), 또는 '학을 타고 올라간 곳'이라 하여 학선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2
몽선대에 새겨진 글씨 한소민 소장
구봉산 신선바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산에 나무하러 갔던 한 나뭇꾼이 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던 신선들을 발견하고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지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한참을 홀린 듯 그렇게 신선들을 구경하던 나뭇꾼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 둔 도끼자루가 썩어 있었습니다. 서둘러 마을로 내려갔으나 그가 알던 세상은 이미 변해버렸지요. 수많은 세월이 흘러 가족도 자신이 알던 세상도 모두 사라진 뒤였습니다.

34묵어
구봉산 신선바위 서쪽<사진 왼쪽>과 동쪽 모습 한 소민 소장
이 이야기는 중국의 난가(爛柯) 설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진나라 왕질이 신선들의 바둑을 보다가 배고픔을 잊게 하는 열매를 얻어먹고 한참을 머문 뒤 집에 돌아와보니 후손들이 증조부가 된 자신의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신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결코 같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시간 왜곡은 일본의 우라시마 타로 전설에서도 나타납니다. 거북이를 구해준 보답으로 용궁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낸 어부가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완전히 변해버린 세상과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이었지요.

이상향의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귀환의 숙명입니다.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꿈은 헛된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비록 닿을 수 없다 해도 저 너머를 꿈꾸며 환상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 그 자체가 삶의 고단함을 견디게 하고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주는 기회가 되었을테니까요.

신탄진 용정나루 근처 괴석들 사이에 놓인 몽선대와 구봉산 절경 속 깎아지른 듯한 절벽위에 자리한 신선바위. 그곳에 앉아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일상의 근심과 시간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도 됩니다. 세속을 벗어난 것 같은 대자연속에서 숨을 고르는 그 순간은 크나큰 위로가 되지요.

어쩌면 이상향이란, 우리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라,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잠시 바라보는 몽선대와 신선바위 같은 풍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에도 없는 곳(ou-topos)'이라는 이상향(Utopia)의 어원은 그곳이 세상 어딘가에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잠시 깃드는 감동과 평화의 순간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최종
한소민 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2. 여고·등산로서 상습 신체 노출… 50대 남성 검거
  3. [대전노인신문] 대전 어르신들 체육으로 하나됐다…제25회 어르신 체육대회 성료
  4. 원자력연, 원전 방사능 폐수지 굳혀서 처분기술 개발…특허로 이어져
  5. 집주인 모자 찾아가 흉기 휘두르고 불 지른 70대 체포
  1. [대전노인신문] 詩 한 편 편지 한 장
  2. [대전노인신문] 대전 대덕구 목상동 새마을부녀회, '어르신 효 잔치' 개최
  3. [날씨] 추석 연휴 충청권 구름 많아…추석 밤부터 약한 비
  4. [대전노인신문] "추석 명절 이야기"
  5.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헤드라인 뉴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맞아 거리를 걷다 보면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명절 풍경을 실감하게 된다. 온라인 장보기와 간편식, 모바일 선물 등이 일상화된 지금과 달리 약 20년 전 추석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불편했고 느린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추석 풍경이 달라진 것은 많지만 추석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가족과 친지가 직접 만나 웃음과 정겨움을 나누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예전 추석의 모습은 지금과는 얼마나 달랐는지 사진으로 살펴보자. 먼저 고향을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열차표 예매가 정해진..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상권 침체는 없다. 우리는 맛으로 승부하고, 고객들을 불러 모은다." 자영업자의 무덤으로 통하는 세종특별자치시에도 맛집들이 건재하고 있다. 세종사랑 맛집 98곳이 이름을 올리며, 읍면동 맛집 지도를 서서히 완성해가고 있다. (재)세종시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박영국)은 작년부터 시민 추천과 전문가 평가를 거쳐 선정한 '세종사랑 맛집'을 총 98개소로 확대했다. 작년 11월 44개소에 이어 이번에 신규 선정한 맛집은 모두 54개다. 최근 이름을 올린 맛집 54개소는 신도심 33개소, 구도심 21개소로 구성됐고, 한식과 중식, 일식, 카..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오상욱(대전시청)은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쿄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로 개인전 결승에서 선천펑(중국)을 15대 1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선수단 8번째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펜싱에서는 전날 여자 에페 개인전의 송세라(부산시청)에 이어 두 번째 '금빛 찌르기'가 펼쳐졌다. 오상욱은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남자 사브르 개인전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