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꽃이 되었다

  • 오피니언
  • 독자위원회 & 독자위원 칼럼

[독자권익위원 칼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꽃이 되었다

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 승인 2026-09-10 10:25
  • 신문게재 2026-09-11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마정미(신규 사진)
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도처에 혐오스러운 멸칭들이 떠돌고 있다. 정치권의 진영 간 반목이 낳은 멸칭 '문조털래유'와 '한강새똥돼주길'은 심각한 후폭풍을 가져오고 있다. 이들의 대립은 정책과 정견에 대한 건전한 토론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멸시와 혐오로 점철되고 있어 많은 유권자들을 정치 혐오와 정치적 냉담자로 만들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다양한 멸칭들이 유행하고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혐오스런 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포티, 개저씨, 급식충, 국밥충, 연금충, 초글링 등이 그 사례다. 대체 특정 연령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어디서 오는 걸까? 얼마 전 문제가 된 배재고의 '탱크데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처럼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와 멸칭도 심각하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고유명사인 그 이름 대신 다른 것을 부른다. 특정 발음으로 비튼 별명, 동물에 빗댄 조롱, 신체나 외모를 희화화한 표현. 처음엔 온라인 게시판 한구석에서 시작된 농담이었을 이 말들은 어느새 방송 자막에, 신문 제목에, 정치인의 국회 발언에까지 등장한다. 멸칭의 본질은 상대를 사람이 아니라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한다. 그러나 멸칭을 부르는 순간, 그는 조롱거리가 되고 웃음의 소재가 되며 결국 논쟁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로 격하된다. 정치적 대립은 원래 논쟁이어야 한다. 정책을 두고 다투고, 가치관을 두고 맞서야 한다. 하지만 멸칭은 이 모든 논쟁의 과정을 생략해 버린다. 상대의 주장을 들을 필요도 반박할 필요도 없다. 그저 우스꽝스러운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멸칭이 위험한 이유는 폭력을 유머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욕설은 누구나 폭력성을 알아챈다. 그러나 재치있게 비틀린 별명, 그럴듯한 밈으로 소비되는 조롱은 폭력이라는 인식조차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유쾌한 언어유희라고 여기며 아무런 죄책감 없이 퍼 나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혐오는 가장 은밀하고 효과적으로 번식한다.

멸칭은 전통적으로 선전 기법의 일환으로 사용됐다. 한편에서는 권위에 대한 유쾌한 도전이자 패러디 기법으로도 사용됐다. 언어유희와 풍자는 정치 문화의 오랜 일부이며, 권력을 향한 신랄한 조롱은 때로 견제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견제와 혐오는 다르다. 정책과 발언을 겨냥한 날카로운 비판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조롱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최근 멸칭 문화 현상이 유독 심해진 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같은 성향의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언어를 확인하고 강화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명칭은 소속감을 확인하는 암호가 된다. 같은 멸칭을 쓴다는 것은 곧 같은 편이라는 증명이며, 더 자극적이고 더 재치 있는 멸칭을 만들어낼수록 그 안에서 인정받는다. 여기에 알고리즘이 가세한다. 자극적인 표현일수록 더 많이 공유되고 더 오래 노출되니, 혐오는 점점 더 덩치를 키운다.

언론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균형 보도라는 명분 아래 혐오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고, 자극적인 발언을 뉴스거리 삼아 따옴표째 옮기는 관행은 혐오를 정제하기는커녕 공인된 언어로 승인해주는 결과를 낳는다. 온라인 밈으로 머물러야 했을 말이 신문 제목에 오르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일부 극단적 이용자들의 언어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용인하는 공식 언어가 돼 버린다.

혐오는 유머의 얼굴을 하고 가장 손쉽게 스며든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거창한 관용이 아니라, 그저 상대를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러주는 아주 기본적인 예의다. 김춘수 시인의 시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처럼 말이다. /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전국체전 22개 메달 수확… 종합점수 452점 상승
  2. 세종사회적경제협의회, 제2차 세종사회연대경제포럼
  3. 대전사랑메세나 11월 6일 ' 대전 메세나의 날' 개최
  4. 울산 중구 성남동 옛 포차거리, 주말 골목마켓으로 재탄생
  5. 천안시, 건강한 숲 조성 순환고리 '벌채-조림-숲가꾸기'
  1. '제3회 충남 월남전참전 전우회 활성화 행사' 천안서 개최
  2. 천안을 이재관 의원, "51억원 들인 해수부 '섬 원격진료', 실질적인 활성화 대책 마련해야"
  3. 백석대, 외국인 유학생과 따뜻한 밥상 나눠
  4. 충남교육청평생교육원, 성인 다문화 수강생과 '전통 한복체험' 진행
  5. 천안을 이재관 의원, "국가 방역조치로 폐원한 과수농가, 무병묘 특별지원으로 조기 영농복귀 지원해야"

헤드라인 뉴스


포스트 국정감사 예산 전쟁 열린다…충청 총력 대응시급

포스트 국정감사 예산 전쟁 열린다…충청 총력 대응시급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두 번째 국정감사가 막을 내리는 가운데 820조 9000억원에 달하는 내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대응이 충청권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전 트램, 국회 세종의사당, 대통령 세종집무실 등 지역발전을 위한 예산을 증액하거나 미반영 된 예산을 추가로 반영하는 과제가 충청 여야에 주어진 것이다. 행정수도 특별법 연내 제정과 국가 반도체종합연구소 대전설립, 공공기관 제2차 지방 이전 등도 포스트 국감 정국에서 힘을 쏟아야 하는 지점이다. 국회에 따르면 26∼27일 법제사법·외교통일·국방·행정안전·보건복지·기후에너지환경노..

가을 이사철에 대전·세종·충남 가계대출 상승세... 단, 연체율 증가에 차주상환 부담도
가을 이사철에 대전·세종·충남 가계대출 상승세... 단, 연체율 증가에 차주상환 부담도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대전·세종·충남 시중은행 가계대출 상승 폭이 두드러지고 있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도 가계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연체율도 소폭 오름세를 보이면서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차주들의 상환 부담 누적으로 가계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25일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가 발표한 '8월 중 대전·세종·충남지역 금융기관 여수신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시중은행 가계대출은 모두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우선 대전의 8월 가계대출은 잔액은 23조 4296억 원으로, 8월 한 달 4562억 원 증가했다...

충남대 통합 무산되면 재정 손실만 500억원 이른다
충남대 통합 무산되면 재정 손실만 500억원 이른다

충남대와 국립공주대의 통합신청서 제출안이 구성원 투표에서 부결된 이후 통합 재추진에 나서고 있는 충남대가 통합 무산 시 예상되는 재정 손실 규모가 500억원에 이른다고 공개했다. 충남대는 23일 유성구 정심화국제문화회관 백마홀에서 학내 구성원과 동문 등을 대상으로 '충남대학교 미래 발전을 위한 전 구성원 의견수렴 공청회'를 열고 통합신청서를 12월 31일까지 제출하지 못하면 글로컬대학30 사업비 516억원(국비 430억원·지방비 86억원)이 감액된다고 밝혔다. 내년 2월 28일까지도 제출하지 못하면 사업이 취소되고, 선지급된 123..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