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종연]처벌의 역효과

  • 오피니언
  • 사외칼럼

[탁종연]처벌의 역효과

[기고]탁종연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범죄학 박사

  • 승인 2011-03-15 14:02
  • 신문게재 2011-03-16 20면
  • 탁종연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범죄학 박사탁종연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범죄학 박사
▲ 탁종연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범죄학 박사
▲ 탁종연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범죄학 박사
범죄학의 오랜 딜레마는 처벌이 애초 의도대로 사람들은 법에 순응하도록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처벌을 받거나 남이 죄를 짓고 벌 받는 것을 보면 두려움을 느껴 범죄를 그만두지만, 다른 사람들은 처벌 후에 오히려 더 많은 범죄, 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호되게 매를 맞고 정신을 차린 학생이 있는가하면, 오히려 반항하고 학교를 떠나버리는 학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셔먼(L. Sherman)이나 타일러(T. Tyler)같은 학자들은 가장 중요한 원인을 처벌의 공정성으로 본다. 비록 죄를 지었다하더라도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항변할 기회를 주지 않고, 강압적으로 행하는 처벌은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것이고, 비슷한 죄를 지었는데 남들은 놔두고 그 사람만 벌한다면 '분배적 정당성'이 없는 경우로서, 이렇게 정당성을 상실한 처벌은 애초 의도와는 달리 범죄성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들도 다 교통법규를 위반하는데 나만 재수 없게 교통스티커를 받는다고 느꼈을 때 사람들이 법규위반을 그만 두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연구는 죄 지은 사람에게 처벌을 하느냐 안하느냐 만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요즘 언론지상엔 소위 '함바게이트'에 연루된 전 경찰청장을 필두로, 모친을 살해한 경찰간부 등 경찰의 비리와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이 때문에 일선 경찰관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시민들이 싸움을 말리러간 지구대 경찰관에게 “너나 잘하라”고 오히려 되받아칠 지경이라니 그 심정이 짐작이 간다.

그런데 범죄통계를 연구하는 필자로서는 최근 경찰에 대한 비난이 조금 과장되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통상 어떤 조직의 범죄현상을 비교할 때 조직원 수는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범죄건수만을 비교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직무관련 범죄통계에 근거해 검찰공무원은 연 500건의 직무관련 비리를 저지르는데 반해 경찰관은 연 2000건 이상을 저지르므로 대단히 썩어빠진 조직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 같은 경우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지적은 불합리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경찰관의 수는 10만 명이 넘는데 검찰공무원은 1만여 명에 불과하므로, 실제로는 검찰의 비리공무원 비율이 경찰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이다. 사실 이렇게 따져보면 경찰의 직무관련 비리공무원 비율은 법을 집행하는 법원, 법무부, 대검찰청 중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사람들이 경찰관들의 비리가 심각하다고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국민과 대중매체의 높은 관심 때문일 수도 있다. 경찰관들은 우리가 집을 나오는 순간부터, 거리에서 도로에서 계속 마주치는 친근한 존재이며, 나와 내 가족이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우리 곁에' 있는 공무원들이다. 따라서 경찰관들의 비리가 각종 영화, 소설, 언론기사의 단골소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투캅스'나 '부당거래'를 본 사람들이 경찰하면 비리경찰관을 떠 올리는 것은 이런 관심의 부작용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우리 경찰이 절대적으로 청렴하므로 개선의 노력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일부이긴 하나 경찰 수뇌부부터 일선까지 부패와 비리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이는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고쳐나가야 할 점이다. 하지만, 이제 매를 맞고 난 아이를 보듬는 부모의 마음으로 경찰을 안아주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바라는 건 벌을 받고 더 삐뚤어지는 경찰이 아니라, 잘못을 용서받고 우리의 집과 거리를 더욱 안전하게 지켜주는 경찰이기 때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청권 부동산 시장 온도차 '뚜렷'
  2. 오인철 충남도의원, 2025 대한민국 지방자치평가 의정정책대상 수상
  3. 위기브, ‘끊김 없는 고향사랑기부’ 위한 사전예약… "선의가 멈추지 않도록"
  4. 국제라이온스협회 356-B지구 강도묵 전 총재 사랑의 밥차 급식 봉사
  5. '방학 땐 교사 없이 오롯이…' 파업 나선 대전 유치원 방과후과정 전담사 처우 수면 위로
  1. 대전사랑메세나·동안미소한의원, 연말연시 자선 영화제 성황리 개최
  2. 육상 꿈나무들 힘찬 도약 응원
  3. [독자칼럼]대전시 외국인정책에 대한 다섯 가지 제언
  4. 경주시 복합문화도서관 당선작 선정
  5. [현장취재 기획특집] 인문사회융합인재양성사업단 디지털 경제 성과 확산 활용 세미나

헤드라인 뉴스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은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시간이다. 주민과 가까운 행정은 자리 잡았지만, 지역이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제도는 커졌지만 지방의 선택지는 오히려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 수도권 일극 구조가 겹치며 지방자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의 자치 체계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 2026년은 지방자치 30년을 지나 민선 9기를 앞둔 해다. 이제는 제도의 확대가..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이 지역 의제로선 매우 이례적으로 정국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 뇌관으로 까지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강력 드라이브를 걸면서 보수 야당은 여당 발(發) 이슈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원심력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통합 단체장 선출이 유력한데 기존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준비하던 여야 정치인들의 교통 정리 때 진통이 불가피한 것도 부담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들과 오찬에서 행정통합에 대해 지원사격을 하면서 정치권이 긴박하게 움직이..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가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값을 따로 받는 '컵 따로 계산제' 방안을 추진하자 카페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다회용 머그잔과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 가격을 각각 분리한다는 게 핵심인데, 제도 시행 시 소비자들은 일회용 컵 선택 시 일정 부분 돈을 내야 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27년부터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 무상 제공을 금지할 계획이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컵 따로 계산제를 탈 플라스틱 종합 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