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민학]<580>소신과 양보

  • 오피니언
  • 신목민학

[신목민학]<580>소신과 양보

  • 승인 2011-03-16 15:12
  • 신문게재 2011-03-17 20면
  • 김학용 논설위원김학용 논설위원

김신호 정용기의 무상급식 반대 소신
‘침묵의 나선이론’과 소신의 어려움
茶山 “치밀한 지식 쌓아야 가능”

▲ 김학용 논설위원
▲ 김학용 논설위원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였던 김신호 대전시교육감이 사실상 입장을 양보, 철회하면서 시장과 시교육감, 5개 구청장 등 대전 지역 7명의 관련 기관·단체장 가운데 정용기 대덕구청장만 ‘반대론자’로 남았다. 대덕구의회까지 무상급식에 찬성하라며 압박하는 형국이니 정 청장이 사면초가 상태라는 표현도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의견에 동조해주길 원한다. 자기 주장을 외롭게 펼쳐야 하는 상황을 꺼리고, 자신이 여론에서 고립되지 않기를 바란다. 고립 상태에 빠지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다. 언론학에서는 이것을 ‘침묵의 나선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으로 설명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판단되면 자기 의견을 감추고 침묵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이 민심에서 나오는 정치인들에게 고립은 가장 피하고 싶은 문제 중 하나다. 다수를 따르지 않으면 궁극적으론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이런 문제에 맞설 용기를 갖춰야 한다. 용기는 소신에서 나온다. 소신이 없다면 그저 권력만 쫓고 다수파만 따르며 눈치만 보는 ‘무소신 정치인’일 가능성이 크다. 지역사회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 없는 시도지사, 국가 장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는가? 비전이든 정책이든 확실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소신을 갖고 추진할 수 있다.

소신은 옛 선비의 덕목이었다. 선비를 뜻하는 ‘士(사)’자를 열 사람이 공부해도 한 명만 선비가 된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아홉 명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아홉 명이 행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九人言言 九人行行)’ 사람이 선비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해도 “아니다” 말할 수 있고, 모두들 “그르다”고 해도 “바르다”주장할 수 있는 소신은 선비의 기본 조건이었다.

다만 소신이 고집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둘은 구분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선비들이 자기를 지키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이런 점에 유의했다. 다산(茶山)은 “슬기롭게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마음속에 굳고 끈질기며 치밀하게 지식을 쌓지 않으면서 자기 생각만 굳게 가져, 융통성 없이 고집하는 것을 견고함으로 여긴다면 (주장은) 오래 견디기 힘들다”고 하였다. 정 청장의 ‘반대론’은 궁구(窮究)한 바가 분명 있어 보이고, 지난번 김신호 교육감이 발표한 ‘반대의 이유’ 역시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더라도 모든 소신을 끝까지 관철시킬 수는 없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행정은 더욱 그렇다. 주민들의 뜻을 받들면서 자기와 다른 소신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내 소신이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면 서로 절충하거나, 양보할 수도 있다. 특히 주민들 의견과 차이가 있다고 판단되면 민의(民意)를 존중하는 게 원칙이다. 그게 민주적 리더십이다.

때론 직(職)을 걸고 지켜야 할 소신도 있지만 양보하고 타협할 수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정책 대결에서 승리, 자기 주장을 정책에 반영시킨 사람은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가령, 대전지하철2호선 방식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는 대전시장이 판단할 몫이다. 시장 소신대로 하다 실패로 돌아간다면 책임도 확실하게 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무상급식은 성공하든 실패하는 이 정책을 주도한 민주당이 몫이지, 시장, 교육감, 구청장의 책임은 그리 크지 않다. 정용기 구청장은 4월말까지는 주민 의견을 수렴, 최종 입장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정 청장은 반대 입장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반대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되면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떳떳하게 밝히고 시장 의견을 수용하면 된다. 주민의견이 분명치 않는 데도 주민을 핑계댈 필요는 없다.

소신의 정책 대결에서 양보는 패배가 아니라 미덕인 경우가 많다. 당초 입장에서 대전시에 일부 양보한 것으로 보이는 김신호 교육감이 양보한 내용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간 방식은 아쉽다./김학용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청권 부동산 시장 온도차 '뚜렷'
  2. 오인철 충남도의원, 2025 대한민국 지방자치평가 의정정책대상 수상
  3. 위기브, ‘끊김 없는 고향사랑기부’ 위한 사전예약… "선의가 멈추지 않도록"
  4. 국제라이온스협회 356-B지구 강도묵 전 총재 사랑의 밥차 급식 봉사
  5. '방학 땐 교사 없이 오롯이…' 파업 나선 대전 유치원 방과후과정 전담사 처우 수면 위로
  1. 대전사랑메세나·동안미소한의원, 연말연시 자선 영화제 성황리 개최
  2. 육상 꿈나무들 힘찬 도약 응원
  3. [독자칼럼]대전시 외국인정책에 대한 다섯 가지 제언
  4. 경주시 복합문화도서관 당선작 선정
  5. [현장취재 기획특집] 인문사회융합인재양성사업단 디지털 경제 성과 확산 활용 세미나

헤드라인 뉴스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은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시간이다. 주민과 가까운 행정은 자리 잡았지만, 지역이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제도는 커졌지만 지방의 선택지는 오히려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 수도권 일극 구조가 겹치며 지방자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의 자치 체계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 2026년은 지방자치 30년을 지나 민선 9기를 앞둔 해다. 이제는 제도의 확대가..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이 지역 의제로선 매우 이례적으로 정국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 뇌관으로 까지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강력 드라이브를 걸면서 보수 야당은 여당 발(發) 이슈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원심력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통합 단체장 선출이 유력한데 기존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준비하던 여야 정치인들의 교통 정리 때 진통이 불가피한 것도 부담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들과 오찬에서 행정통합에 대해 지원사격을 하면서 정치권이 긴박하게 움직이..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가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값을 따로 받는 '컵 따로 계산제' 방안을 추진하자 카페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다회용 머그잔과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 가격을 각각 분리한다는 게 핵심인데, 제도 시행 시 소비자들은 일회용 컵 선택 시 일정 부분 돈을 내야 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27년부터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 무상 제공을 금지할 계획이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컵 따로 계산제를 탈 플라스틱 종합 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