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근로자, 그들도 가장이다

  • 사회/교육
  • 노동/노사

비정규직 근로자, 그들도 가장이다

이은만씨 충남대서 9년째 '치우고 닦고' 고단한 하루 지난해 떼인급여 못받아, 학교측이 나서줬으면…

  • 승인 2012-04-30 18:21
  • 신문게재 2012-05-01 5면
  • 이종섭 기자이종섭 기자
●오늘 근로자의 날…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

30일 오전 6시 30분, 충남대 경상대학에서 만난 청소용역노동자 이은만(63)씨의 손놀림이 분주해진다.

올해로 9년째 이 대학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는 이씨는 보통 동료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해 일을 시작한다. 이른 시각, 아직은 정적이 감도는 캠퍼스에서 어김없이 이씨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 충남대 청소용역노동자 이은만씨의 하루는 건물외곽 청소로 시작된다.
▲ 충남대 청소용역노동자 이은만씨의 하루는 건물외곽 청소로 시작된다.
이 대학에서는 150여 명의 청소용역노동자들이 각자 구역을 나눠 맡아 일하고 있다. 이씨는 5명의 '청소아줌마'들과 함께 경상대학을 맡아 작업반장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주로 강의실 내부 등을 청소하고, 이씨는 건물 외곽 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다. 학생들의 등교 시간 무렵, 이씨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학생들이 오기 전에 눈에 띄는 곳은 빨리 정리를 해놔야 해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기도 하죠.” 그렇게 이씨가 오전 일과를 마친 시각은 대략 11시께. 이른 아침부터 4시간 넘게 쉬지 않고 일해야 오전 일과를 마칠 수 있다.

잠시 숨을 돌린 이씨가 늦은 아침인 지, 이른 점심인 지 모를 끼니를 때우러 학생회관으로 향한다. 학생식당에서 2500원짜리 식사로 끼니를 때우고 이씨가 향한 곳은 쪽방을 연상케하는 당직실 한켠의 공간. 잠시 발을 뻗고 휴식을 취하는 장소다.

이씨가 나지막히 말문을 연다.

“새벽에 나오다보니 아침은 대부분 거르고 점심 값이 아까워 도시락이나 라면으로 한끼를 때우는 사람들도 많아요. 몇 푼 안되는 돈 받아서 몇 식구가 먹고사는데 매일 점심 사먹고 나면 남는 돈이나 있겄수.”

점심 식사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면 다시 3시간 가량 건물 전체를 청소하고, 오후 5시가 돼서야 이씨는 일터를 나선다.

이씨가 이렇게 한 달을 일하고 버는 돈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 돈으로 모두 네 식구가 한 달 생활을 꾸려가야 한다. 큰 아들이 아르바이트로 돈을 보태고 있지만 용돈 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나는 예전에 조금이라도 모아둔 돈이 있어 생활하고 있지, 이 돈 받아가지고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어. 아들 녀석들 장가도 보내야 하는데 그런거 생각하면 막막해….”

잠시 뒤 함께 일하는 청소노동자 몇몇이 이씨를 찾아왔다. 이들은 지난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매년 용역업체와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노동자인 이 대학 청소노동자 80%가량이 노조에 가입돼 있다.

지난 연말 이들이 고용돼 있던 용역업체의 부도로 한달 치 월급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이후 이들의 신세한탄이 늘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월급 100만원 이하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한달 치 월급과 일년 치 퇴직금은 적지 않은 돈이다.

지난 3월 새 용역 업체가 들어왔지만 아직 정식 근로계약이나 임금 협상을 체결하지 못했으며, 떼인 월급과 퇴직금은 어디서 받아야 할 지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최모(57)씨는 “학교 측에서는 퇴직금을 승계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지만 새로운 용역업체는 아직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학교에서도 평소에는 한 식구내 뭐내 하지만 정작 일이 생기면 회사측에 모든 것을 떠넘기고 만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종섭 기자 nomad@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경기 프리미엄버스 P9603번 운행개시
  2. [기획] 의정부시, 우리동네 정책로드맵 ‘장암동편’
  3. 충북·제주만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세… 서울 19주 만에 하락
  4. 유성복합터미널 3개사 공동운영체 출범…터미널·정류소 흡수·통합 본격화
  5. 국립한밭대 RISE 사업단 '지역사회상생협의체' 간담회
  1. 충남대, 충청권역 장애 대학생 기업 탐방 프로그램 개최
  2. 첫 대전시청사 복원활용 탄력 붙는다
  3. 누리호 4차 발사 D-4… 국민 성공기원 분위기 고조
  4. '세종시=행정수도' 진원지, 국가상징구역...공모작 살펴보니
  5. 충남도 청렴 파트너 '제8기 도민감사관' 출범

헤드라인 뉴스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6대 광역시 중 두번째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6대 광역시 중 두번째

대전지역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잇따라 폐업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도소매업의 경우 대출 증가와 폐업률 상승이 두드러지면서, 이들을 위한 금융 리스크 관리와 맞춤형 정책 지원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4일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가 발표한 '대전지역 자영업 현황 및 잠재 리스크 점검'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대전지역 자영업자 수는 15만 3000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이후 감소세를 보인 다른 광역시와 달리 대전의 자영업 규모는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다. 전체 취업자 수 대비 자영업자가 차..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대전 유성구파크골프협회가 맹꽁이와 삵이 서식하는 갑천 하천변에서 사전 허가 없이 골프장 조성 공사를 강행하다 경찰에 고발당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나무를 심으려 굴착기를 동원해 임의로 천변을 파내는 중에 경찰이 출동해 공사가 중단됐는데, 협회에서는 이곳이 근린친수구역으로 사전 하천점용허가가 없어도 되고 불법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24일 대전시하천관리사업소와 대전충남녹색연합에 따르면, 유성구 탑립동 용신교 일대의 갑천변에서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굴착기가 땅을 헤집는 공사가 이뤄졌다. 대덕테크노밸리에서 대덕구 상서동으로 넘어..

세종 도시재생 `컨트롤타워` 생긴다… 본보 지적에 후속대책
세종 도시재생 '컨트롤타워' 생긴다… 본보 지적에 후속대책

<속보>=세종시 도시재생사업을 총괄 운영할 '컨트롤타워'가 내년 상반기 내 설립될 예정이다. 국비 지원 중단 등 재정난 속 17개 주민 거점시설에 대한 관리·운영 부실 문제를 지적한 중도일보 보도에 후속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중도일보 11월 19일자 4면 보도> 세종시는 24일 오전 10시 기자간담회를 통해 도시재생 사업의 주민 거점시설 운영 현황과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본보는 10년 차 세종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광역도시재생지원센터와 현장지원센터 5곳이 폐쇄한 작금의 현실을 고발하며, 1000억 원에 달하는 혈세 투입..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