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송편과 소나무

  • 오피니언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송편과 소나무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9-09-15 14:36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마땅한 장난감이 부족하던 시절, 여럿이 모여 남의 물건 훔치는 놀이를 했다. '서리'라고 하는 것이다. 어렵게 유년 시절을 보낸 세대의 뇌리 속에 고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탓일까? 관련 글이나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이 고상한 일일 수 없다. 요즈음에야 당연히 절도죄가 된다.

아이가 성장하며 한번 쯤 거쳐야하는 통과의례 정도로 곱게 봐 주는 문화가 아니었을까?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보고도 못 본 척 묵인 해 주었다. 아이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다만, 그 특권에도 규칙이 있다. 혼자 하면 안 된다. 여럿이 재미로 해야 한다. 절대로 축적하거나 집으로 가져와도 안 된다. 밖에서 함께 나누어야 한다. 따라서 당장 먹어치워야 하는 적은 양이어야 한다. 이러한 정서적 규칙이 있어 용서도 가능하다.

서리 대상은 먹거리가 대부분이었다. 놀이로 봐주기도 하지만, 없던 시절 가슴시린 추억이기도 하다. 허기진 탓이겠지만 어느 것이고 참 맛있었던 기억이다.

콩도 서리 대상 중 하나로, 주로 '서리태'였다. 묵은 짚이나 검불을 모아 불을 지르고 그 위에 뿌리 채 뽑은 콩대를 얻는다. 아직 푸른 가지라 연기가 많이 난다. 불길이 잦아들면 구워진 콩을 까먹는다. 그 맛을 어디에서 다시 만나랴. 모르는 사이 손이며 얼굴은 껌정으로 분장된다.

www.sukjeok.com
게티 이미지 뱅크
송편은 송병(松餠) 송엽병(松葉餠)으로도 부른다. 한가위를 대표 하는 음식이다. 소 종류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깨송편, 콩송편, 팥송편, 녹두송편, 잣송편, 밤송편, 대추송편, 꿀송편 등이 그것이다. 팥, 깨에는 계핏가루를 섞기도 한다. 반죽하는 멥쌀가루에 쑥을 넣으면 쑥 송편, 소나무 껍질을 넣어 만들면 송기송편, 모시 잎을 넣어 만들면 모시 잎 송편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드물게 호박을 넣어 만들기도 한다. 소나 반죽, 만드는 방식에 따라 맛도 천차만별이다. 필자는 동부콩이나 밤콩을 소로 넣은 것이 맛있었던 기억이다.

동산에 떠오르는 둥근 달을 바라보며 온 가족이 모여앉아 송편을 빚는다. 울안 가득 보름달과 다르지 않은 함박웃음이다. 송편 모양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누가 빨리 만드나 내기 하자 어른다. 손길이 바쁘다. 조금 지루하다 싶을 때, 두레상 갓부터 줄지어가던 송편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상위에 가득하다. 일그러진 얼굴로 함지박에 가득하던 반죽도 사라진다.

떡을 둥글게 비빈다음, 오목하게 만들고 소를 넣는다. 오므려 붙이는 방식, 만드는 사람 솜씨에 따라 모양이 제각각이다. 자연스레 반달 모양이 되므로 가장 많이 눈에 띈다. 반달 모양이 달을 연상하게 되고 달은 다시 둥근 보름달로, 보름달은 풍요와 행복, 함박웃음으로 마음에 안긴다.

가마솥에 적당히 물을 붓고, 채를 놓은 다음 솔잎을 편다. 그 위에 송편을 놓고 다시 솔잎을 깐다. 같은 방법으로 켜켜이 놓는다. 아마도 주안점은 솔잎을 까는 것이리라. 낮에 아이들이 소쿠리 들고 산에 올라 솔잎을 채취한다. 향기 차이일까 어른들은 토종 소나무 잎을 따오라 주의를 주셨다. 떡에 솔 향이 짙게 밴다. 떡살이 서로 달라붙지 않는 역할도 한다. 노래진 솔잎을 떼어내며 먹는 것 또한 맛을 돋운다. 솔잎을 넣지 않고 찐 떡은 송편이 아니다.

소나무하면 떠오르는 것이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 ~ 1856, 조선후기 문신, 실학자, 서화가)의 「세한도」이다. 발문이나 논어의 인용 구절을 정리하면, 시절이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늘 푸른 것을 안다는 것이다. 추사가 제주에서 9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본인의 억울함, 단심을 표현한 그림이다. 소나무는 지조, 절개, 단심, 신의의 상징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민족은 음주가무에 출중하다. 막걸리 한 사발에 온종일 노래할 수 있는 민족은 한민족뿐이란다. 끼와 흥이 넘친다. 그렇다고 술상을 산해진미로 차리지 않는다. 개다리소반에 차려진 소박한 음식이라도 흥겹게 먹고 즐긴다. 차례상이나 제사상도 다르지 않다. 귀한 음식으로 차리는 것이 아니라 평소 가꾸고 거둔 곡식과 먹거리로 한다. 한가위 차례상은 햇것으로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집집마다 술도 빚었다. 정겹게 나눌 심산으로 양은 넉넉하게 준비한다.

역사는 제각각이나 대부분 나라가 추수에 대한 감사행사를 한다. 명칭, 시기는 다를지언정 종교 집단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행사이기도 하다.

문화는 집단적 정서의 발로이다. 명절 대이동으로 많은 시간 길거리에서 보내는 고충이나 어려움, 수고로움은 문제가 아니다. 매년 겪는 일이요, 명절증후군 운운하기도 하지만 기꺼이 고향으로 향한다. 모든 일가친척과 이웃, 나아가 우리 한민족이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나누는 멋진 축복의 시간이다. 웃음꽃이 만발하고, 행복 가득한 고운 한가위가 되기를 염원해 본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늑구' 탈출 장기화… 포획 원칙에 폐사 가능성 열고 수색 확대
  2. 전례없는 늑대 포획 계획에 커지는 수색방식 논란
  3. 세종시의원 20석 주인은 어디로… 경쟁구도 속속 윤곽
  4. 한국늑대 종복원 18년 노력의 결실 '늑구'… 토종의 명맥 잇기도 '위태'
  5. 민주당 세종시의원 10개 선거구 '본선 진출자' 확정
  1. KINS, 입체적인 안전점검 체계로 원전 사고 예방… 생활 주변 방사선 안전도
  2. 잊힌 '서울대 10개 만들기'…"부족한 지역 거점국립대 교원 확보부터 절실"
  3. 월평정수장 용출 4곳 중 3곳서 하루 87톤 흘러 …"시설 내 여러 배관 검사부터"조언
  4. 이춘희→조상호 향해 "헛공약·네거티브 전략" 일침
  5. 대덕특구 '글로벌 과학기술혁신 허브'로… 특구 5개년 육성계획 확정

헤드라인 뉴스


2029년 `서울 청와대→세종 집무실` 대통령 시대 요원

2029년 '서울 청와대→세종 집무실' 대통령 시대 요원

문재인·윤석열 전 정부에서 시작된 '청와대 이전' 움직임이 이재명 새 정부에서 어떻게 완성될지 주목된다. 문 전 대통령은 광화문 시대를 준비했으나 좌절됐고, 윤석열 전 정부는 용산 시대를 열었으나 결국 얼룩진 역사만 남겼다. 이재명 새 정부는 올 초 도로 청와대로 컴백한 만큼, 2030년 임기까지 판을 바꾸는 과감한 시도를 할지는 미지수다. 수도권 정치권 등 기득권 세력들은 여전히 대통령실의 지방 이전에 극렬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의 14일 긴급 브리핑이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편의점 업계 비닐봉지 가격 인상·발주량 제한에 편의점주들 `예의주시`
편의점 업계 비닐봉지 가격 인상·발주량 제한에 편의점주들 '예의주시'

편의점 업계가 매장에서 쓰는 비닐봉지 가격을 인상하거나 발주량을 제한하고 나섰다. 중동 전쟁으로 비닐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격히 오른 데 따른 조치인데, 편의점주 등은 고정 지출이 커지진 않을까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낸다. 14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세븐일레븐은 최근 매장에서 점주들이 쓰레기를 담을 때 사용하는 비닐봉지 가격을 최대 39% 인상했다. 세븐일레븐이 점주에게 제공하는 비닐봉지는 50매 묶음으로 총 네 종류다. 검정 비닐봉지 큰 사이즈는 77원에서 106원으로 37.7% 인상했으며 작은 사이즈는 57원에서 78원으로..

학교에서 또… 계룡 교사피습에 도교육청 예방 체계 미흡 지적
학교에서 또… 계룡 교사피습에 도교육청 예방 체계 미흡 지적

충남 계룡 교사 피습 사건이 발생하면서 교육현장의 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형태는 다르지만 과거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바 있어 충남교육청의 시스템 구축이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충남 학생인권조례도 교사 신변보호에 제약이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인 13일 오전 8시 40분께 계룡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와 상담을 하던 학생이 미리 준비한 흉기로 교사에게 해를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교사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학생은 중학..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호 참사 12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 대전오월드 인근에서 목격된 ‘늑구’ 포획에 나선 경찰들 대전오월드 인근에서 목격된 ‘늑구’ 포획에 나선 경찰들

  • 대전시 선관위, 지방선거 50여일 앞두고 투표참여 캠페인 대전시 선관위, 지방선거 50여일 앞두고 투표참여 캠페인

  • 초여름 날씨에 등장한 반팔 초여름 날씨에 등장한 반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