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신약개발의 출발점 '공유 플랫폼'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신약개발의 출발점 '공유 플랫폼'

이선경 한국화학연구원 의약정보플랫폼센터장

  • 승인 2020-03-26 13:40
  • 신문게재 2020-03-27 22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이선경(화학연 의약정보플랫폼센터장)
이선경 한국화학연구원 의약정보플랫폼센터장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 중 하나는 개인 취향이다. 모두 똑같은 게 아니라 나에게 꼭 맞는 서비스를 원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맞춤형 서비스에는 막대한 자원이 든다. 그래서 이미 생산된 제품을 다수가 공유하는 '공유경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정보 공유에서 출발해 물질을 공유하고, 데이터와 서비스가 융합해 순환되는 공유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의사결정의 중심축도 생산자에서 수요자로 이동하고 있다. 아직 제도·문화적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게 있지만 공유 플랫폼은 21세기 국가 경쟁력 제고에 필수적일 것이다.

2000년 인류는 인간 게놈지도를 완성했다. 바이오산업의 눈부신 청사진이 제시됐고, 선진 글로벌 제약사들은 자체 보유한 백만 종 이상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신약개발의 새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한국의 제약기업은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영세했다. 자체적으로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관리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이에 연구자들은 각자의 실험실 냉장고에 있는 화합물을 모아 공동으로 관리, 활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같은 해 한국화학연구원 내에 한국화합물은행이 탄생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2008년 한국화합물은행은 질적 성장의 전환점을 맞았다. 국가 화합물 관리·유통 전담기관으로 지정된 덕분에 양질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기탁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2000년 8천 종에 불과했던 화합물은 20년이 지난 현재 64만 종으로 크게 늘었다. 약효 데이터도 상당한 규모로 축적했다. 64만 종의 화합물 구조 및 물성 정보뿐만 아니라 화합물을 활용한 650만 건 이상의 약효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데이터 정보 이외에도 화합물 유통 관리 시스템도 관리하고 있다. 실물 화합물의 기탁, 품질관리 및 분양 정보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정보화해 놓은 것이다. 2019년에는 각각 관리하던 화합물 활용 정보와 실물 화합물 정보를 통합해 내부 관리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선했다. 또 한국화합물은행의 데이터를 해외 공공 데이터와 통합해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점진적으로 수요자 중심의 데이터 플랫폼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대규모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보유하고 있는 건 드물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경우 대부분 거대 제약사들이 자체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보유하고 있다. 공공 영역에서 연구 재원을 마련해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도 했으나 지속적인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반해 한국화합물은행은 화합물 라이브러리 운영을 통해 논문이나 특허에 공개되지 않은 비공개 연구 데이터까지 확보하고 있다. 해외 공공기관에 비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화합물은행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화합물은행 초창기에는 라이브러리 확보에 급급한 탓에 화합물의 품질이나 질적인 구성에서 적잖은 문제가 있었다. 화합물 활용 과정에서 문제점들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화합물 품질을 개선했다. 초창기 수집된 화합물들에 대한 품질검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데이터도 쓰다 보면 문제점들이 발견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명실상부한 신약개발 데이터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할 때까지 쌓아두기만 하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쓸수록 화합물 라이브러리와 데이터의 활용 가치도 상승한다. 한국화합물은행은 기관이나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신약·바이오 연구를 하는 국내 모든 연구자의 공동자산이다. 최근 한국화합물은행에 접수되는 활용신청서를 검토하면서 대한민국의 바이오 기술의 발전과 역량을 실감하고 있다. COVID-19 위기 상황에서도 발 빠르게 한국화합물은행이 기여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함께 구축하고, 함께 활용하는 신약개발을 위한 화합물과 데이터의 공동 활용 플랫폼인 한국화합물은행의 20주년을 자축한다. 이선경 한국화학연구원 의약정보플랫폼센터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산업단지 조성 전략 수정할까
  2. [주말사건사고] 폭염 여파 정전에 대전·충남 곳곳서 화재 발생
  3. 대전에 없는 '대전지방중수청'… 출범 전부터 청사 논란
  4. 충남대·공주대 통합 첫단추…14일 단일안 윤곽 나오나
  5. 李정부 5극 3특 성장엔진 산업 발표 코앞…충청권 들러리 되나
  1. 폭염이 만든 풍경…지상은 ‘썰렁’, 지하는 ‘인산인해’
  2. 사상 첫 폭염중대경보… 충청권 35도 안팎 무더위 이어져
  3. 표류하는 제2중경 유치전… 박수현호 정치력 시험대
  4. 허태정 대전시장, 재해취약지역 현장점검 나서
  5. [통(通)하는 충남, 시험대 선 박수현 충남지사의 소통 리더십] ①지천댐 건설을 둘러싼 찬반 갈등 해법

헤드라인 뉴스


대전 문화예술정책 판 바뀐다…하드웨어서 소프트웨어로

대전 문화예술정책 판 바뀐다…하드웨어서 소프트웨어로

대전 문화예술계 정책이 중대 변곡점에 섰다.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대전시가 재정난을 이유로 민선 8기에서 추진해 온 문화예술 시설사업 대부분을 재검토하기로 하면서다. 시설사업 중심이던 민선 8기 문화예술 공약이 대대적인 손질을 앞둔 가운데 새 시정의 무게중심은 하드웨어 정책에서 시민 문화 향유와 지역 예술인 지원 등 소프트웨어 정책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13일 대전시에 따르면, 민선 9기 인수위원회는 문화예술 분야 주요 시설사업에 대해 재검토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시정이 출범하자마자 시 재정 부담이 최대 현안으로 떠..

내리던 대전 기름값 숨고르기…중동 리스크에 추가 하락 `주춤`
내리던 대전 기름값 숨고르기…중동 리스크에 추가 하락 '주춤'

대전지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한 달 넘게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들어 하락 속도는 한풀 꺾인 모습이다. 정부의 유류가격 인하 조치로 가격 부담은 다소 완화됐지만, 중동 정세가 다시 고조되면서 국제유가가 반등해 추가 하락 기대감은 다소 약해지고 있다. 1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기준 대전지역 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857.70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 평균 1999원 안팎과 비교하면 140원 이상 낮아졌다. 다만 최근에는 하락 폭이 이전보다 줄어들면서 가격 조정 국면에 들어선 분위기..

이 대통령 "추가세수, 미래·청년·지방·교육 4대 분야 집중 투자"
이 대통령 "추가세수, 미래·청년·지방·교육 4대 분야 집중 투자"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대규모 추가 세수를 미래와 청년, 지방, 교육 등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4대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2026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다. 이 대통령은 모두 발언을 통해 "2027년 예산안이야말로 편성 단계부터 오롯이 우리 정부가 처음으로 그려내는 예산"이라며 "대체불가 대한민국이라는 담대한 꿈을 뒷받침하는 그런 방안들을 내년도 예산안에 잘 챙겨 담아야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 운영의 세 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우선 대규모의 추가 세수를 미래 대응을 위한 전략적..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썸머케어로 건강한 여름 나세요’ ‘썸머케어로 건강한 여름 나세요’

  • 드론 벼 병해충 공동방제 드론 벼 병해충 공동방제

  • 수 년간의 기다림 끝에…허물 벗는 매미 수 년간의 기다림 끝에…허물 벗는 매미

  • 폭염이 만든 풍경…지상은 ‘썰렁’, 지하는 ‘인산인해’ 폭염이 만든 풍경…지상은 ‘썰렁’, 지하는 ‘인산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