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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조선중기 이후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조선시대는 학문적, 정파적으로 퇴계 선생 중심의 '영남학파'와 율곡 선생 중심의 '기호학파'의 양대산맥이 있었는데, 기호학파는 경기와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정계·학계의 주도권을 차지했고, 이율곡,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로 이어진 기호학파의 사실상 중심지역은 대전이었습니다.
김장생은 논산(연산)에서 활동을 했으나 그 제자들인 송시열, 송준길 선생 등은 대전에서 활동을 하였고 지금도 그분들의 '서당'이 보존되어 있지요.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학문 활동을 하는 공통점이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학설상 차이가 있습니다.
영남학파는 도덕과 명분을 중시하는 '주리설'이 주류를 이루고, 기호학파는 경제와 개혁을 중시하는 '주기설'이 특징입니다. 기호학파의 주기설은 오늘의 용어로 실용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고, 현재 대전의 과학도시 전통의 뿌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전은 종교적인 뿌리도 깊고 넓습니다. 식장산과 계족산을 끼고 유학의 본고장이 형성되었고, 보문산을 중심으로 불교의 맥이 흐르고 있습니다. 도솔산과 구봉산을 안고 있는 천주교를 앞세운 서학의 발원지이며 금병산과 도덕봉을 끼고 있는 수운교도 바로 대전이 중심지입니다. 따라서 학문적, 종교적 중심이 대전의 정체성이며, 이것이 현대적 과학도시로 발현되고 있습니다. 한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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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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