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아이의 시선, 어른들의 세계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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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아이의 시선, 어른들의 세계 '미나리'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1-03-18 15:15
  • 신문게재 2021-03-19 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미나리 사진
참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보통의 영화들과 많이 달랐습니다. 영화관을 가거나 혹 다른 매체로 영화를 본다는 건 대체로 현실을 잊고, 영화가 만들어내는 세계 안으로 빠져드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보통의 경우 영화에는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여러 장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미나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럼 현실 그대로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분명 두 시간 남짓 영화관에 앉아 스크린을 봤는데 쉬 몰입되지 않았습니다.

또 기이했습니다. 보고 나서 시간이 흘러도 영화가 잊히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오래 남아 묵직하니 자리잡고 깊이 생각하게 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푹 빠져 있다가 끝나고 나면 가볍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전혀 상업적이지 않습니다. 몰입보다는 각성을, 동일시보다는 소격(거리두기)을 일으킵니다. 예술영화에 가깝습니다.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은 것은 아이의 눈이었습니다. 심장이 아픈 소년과 그의 누나가 어른들을 바라봅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들이 적응하려 애쓰는 낯선 땅의 사람들. 어른들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삶의 방식 또한 다릅니다. 그래서 부딪히고 어색해하며 힘들어합니다. 자기 딴에는 분명히 옳다 여겨 힘을 다하건만 다른 이에게는 그게 부담과 상처, 외면의 결과를 야기합니다. 그런 어른들을 아이들은 비교적 공정하게 바라봅니다. 다 사정이 있고, 마음은 알겠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그러지고 빗나가게 된 것이 채 열 살이 안 된 아이들의 눈에 비칩니다. 그리고 할머니. 그녀는 어렵기로 하면 가장 어려울 수 있을 텐데도 낙천적이고 씩씩한 모습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상황 속에서 어그러지는 것은 같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옳은데, 다 맞는데 그보다 더 필요했던 건 서로를 향한 위안이 아니었을까. 작품 속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은 감독의 자전적 영화인 '미나리'는 기억을 재현합니다. 80년대 모국을 떠나 이방의 땅에 온 이들의 난감함과 고통스러움이 잘 드러납니다. 비록 타국의 나그네가 되지 않더라도, 현대인이라면 거의 모두가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환경과 사람들 틈에서 힘들어했을 테고, 어떤 이는 현재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먼 나라의 오래 전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잔잔한 깨달음과 감동을 안겨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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