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일이 만난 사람]정효선 (주)삼이씨앤지(삼일 리드텍) 대표이사 회장

[한성일이 만난 사람]정효선 (주)삼이씨앤지(삼일 리드텍) 대표이사 회장

투수블록 신화를 쓴
보도블록계의 큰 손 여장부
맨손으로 자수성가해 꿈을 이룬 여성 CEO

  • 승인 2021-04-17 23:56
  • 수정 2021-05-03 16:20
  • 신문게재 2021-04-19 9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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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블록계의 신화를 창조해낸 여장부 정효선 (주)삼이씨엔지 대표이사 회장(삼일 리드텍 회장)을 만났다.

투수블록과 투수잔디블록, 가로수보호판 전문생산업체인 (주)삼이씨엔지와 (주)삼일 리드텍을 설립한 정효선 회장은 벽돌 한 장을 팔기 위해 갓 난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면서 영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억척 여성이다. ‘영업은 희열’이라고 말하는 정효선 회장은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뿜 품어져 나오는 유쾌함과 시원시원함의 아이콘이다. 정 회장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성공신화를 이루기까지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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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님, 회장님은 투수블록계의 신화를 창조하셨는데 비결이 뭔가요?

▲저는 영업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목표 의식이 뚜렷하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영업할 때는 강아지 눈빛으로 변합니다. 꼭 팔아줘야만 되는 동정의 눈빛을 담고 팔아줄 때까지 버팁니다(하하하). 40번을 찾아간 적도 있습니다. 동갑내기 남편의 아내에 대한 무한신뢰가 밑바탕이 되었죠. 제가 자식 위주로 살아온 경향이 강한데 남편이 저에게 져주고 제 말을 잘 들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성질이 대쪽 같아서 남편과 사업적으로 격렬하게 싸우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 이불 속에서 자니까 이혼 걱정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하하하). 15일 동안 고집 피우고 싸우다가도 16일째에는 풀리죠. 제 성격이 굉장히 긍정적이라서 스트레스를 안 받습니다. 이번 LH 관련 문제로 인해 더 공정해지고 긍정적인 효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엔지니어이고 오로지 공장 안에서 벽돌만 제조하고, 영업은 전적으로 제 몫인데요. 여자 혼자 몸으로 하다 보니 힘이 부칠 때가 많았죠. 설계를 넣어도 안되고 마지막에 갑자기 바뀌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포기나 좌절이란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대성기업/대성레미콘/대성콘크리트 사내 커플입니다. 대성기업은 88올림픽 때 보도블록을 책임졌던 기업입니다. 남편은 생산직이었고 저는 총무과에 근무했는데 둘이 연애를 하면서 결혼을 하게 되니 그때 당시만 해도 결혼한 여성이 직장에 남아 있는 게 어려웠던 지라 남편과 함께 독립하기로 하고, 서른 두 살에 직장에서 나와 같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96년 7월에 서른 두 살 제 나이를 따서 콘크리트 보도블록 제조업체인 삼이씨앤지와 삼일리드텍을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 진척되다가 막판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무너져 내릴 때가 많았습니다. 공부해가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요. 더 좋은 주문이 들어오리라는 희망을 갖고 안된 것에 대한 절망을 버렸습니다. 그러면 금방 에너지가 차오르면서 좋은 일이 생기곤 했죠. 삼이씨엔지를 오랫동안 운영하다 보니 영업 노하우도 오래 축적돼 물량이 달려 세종에다 최신 스마트 공장을 짓게 된 겁니다. 100억 원을 투자해서 일반제조업 공장과 땅과 기계를 샀습니다. 기계가 50억이고 건물이 100억입니다. 저희 기업을 이어갈 큰 아들은 젊은데 벽돌공장은 매우 낙후돼 있으니 공장을 새로 신축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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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는 게 좋아서 신나게 사업을 했습니다. 충남대학교 CEO 과정 동기 중 한 명이 저더러 허영만 만화의 ‘꼴’에 나오는 관상대로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하더군요. 제가 겉보기엔 매우 예민하고 차가워 보이고 까다로워 보여도 실제는 매우 털털하고 소탈한 성격이거든요. 웃기도 잘 웃고 남을 웃기기도 잘하다 보니 사람들이 저더러 개그우먼 김미화 닮았다고 많이 이야기 합니다(하하하). 정말 잘 웃거든요. 긍정적인 사고에 복이 들어오는 법이죠. 한 번도 찡그린 적이 없습니다. 배포가 큰 편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개그맨이 꿈이었습니다. 김미화 스타일을 사업에 녹인 셈이죠.



-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한밭대 야간 건축공학과를 다녔고 46세에 석사가 됐죠. 서른 한 살 큰아들과 늦둥이 초등학교 6학년 막내 아들이 있습니다. 제 나이 마흔다섯 살 때 큰아들과 연년생이었던 열아홉 살 딸을 백혈병으로 잃었습니다. 공주에 공장을 지으려고 하던 때였죠. 충남여고 다니던 딸아이 유채화는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너무나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딸아이가 투병하던 2년 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암은 대부분 재발 되더군요. 아버지의 제삿날 딸이 떠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에 영업도 못하고, 대인기피증도 생겼죠. 공장이 망하게 됐다고 동종업계에서 악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주식이나 사기, 보증으로 돈을 잃어도 돌고 도는 게 돈이라 돈은 벌면 되지만 건강을 잃으면 다시 재개하기가 쉽지 않고 더구나 자식을 잃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딸을 잃고 슬픔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막내 아들이 제 곁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래서 막둥이를 그 나이에 낳게 된 거죠. 막내 아들이 태어나면서 저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업은 5년마다 주기가 바뀌기 마련인데 변화를 타파해야 됩니다. 처음엔 중촌동에서 사업을 하다가 너무나 잘돼서 세종으로까지 오게 됐습니다. 중촌동에서 세종으로 회사를 이전한 셈이지요. 5년 주기로 모험을 한 셈입니다. 96년, 2000년, 2004년 주기가 올 때마다 과감하게 도전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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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끈질긴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네. 저는 상대방이 도와주실 때까지 쫓아다닙니다.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자금을 유치하고 대출을 받는데 목숨을 겁니다. 맨땅에 헤딩하면서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겁니다. 주실 때까지 쫓아다니는 악바리 근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하하하). 제가 5남 3녀 중 6번째로 태어났는데요. 제 나이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나이 마흔에 혼자 되신 엄마는 8남매를 행상을 하시면서 키우셨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항상 호탕하게 웃으시며 다니셨습니다. 부사동 집에서 영동, 옥천 등으로 행상을 다니시던 엄마는 80세 되시던 해 돌아가셨는데요. 엄마는 말로 시키시는 교육이 아니라 몸소 살아가시는 행동이 바로 저희에게 산 교육이 됐습니다. 엄마가 보여주신 행동과 엄마가 살아오신 삶이 저에겐 교훈이 되고 실제 교육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매우 성실하셨고, 자식들에게 강한 책임감을 심어주셨습니다. 우리 앞에서 단 한 번도 우신 적이 없습니다. 여장부 소리를 들으시며 사셨지요. 저는 똑순이도 아니고 여장부도 아니지만 엄마의 기질을 닮아 엄마처럼 씩씩하게 용감하게 삽니다. 엄마가 행상을 가시면 사람들이 점심때가 되면 밥을 먹고 가라고 권하셨는데 그게 너무나 고마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엄마를 생각하면서 직원들에게 밥을 잘 해 먹입니다. 엄마가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가 인생을 똑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모두 다 엄마 덕분입니다. 엄마는 8남매 중 유일하게 저만 안 때리고 키우셨습니다. 제가 눈치고 빠르고 잽싸고 야무진 데가 있죠(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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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일하러 나가시면 저는 어린 동생들을 밥 해먹이고 살았습니다. 어린 아이 손이 주부 습진이 걸릴 정도로 부엌일을 했죠. 동생들 돌보며 효도하는 착한 딸이었습니다. 엄마는 애기 손이 주부습진에 걸렸다며 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엄마는 저더러 ‘공부도 잘하고 앙칼지고 주댕이가 여물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두 살, 두 살, 두 살 터울 남매들은 학교에 준비물을 챙겨갈 돈이 없어서 그냥 학교로 갔는데 저는 끝까지 버티고 학교에 안 갔습니다. 애들 앞에서 주눅 들기 싫었거든요. 엄마가 준비물 살 돈을 주실 때까지 계속 조르고 학교를 안가니 엄마가 결국은 주셨습니다. 제가 절대로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을 아시니까 주시는 거였죠. 제가 다른 욕심은 없어도 옷 욕심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졸라 협상을 하기도 했습니다(하하하). 저는 힘은 약해도 말로 다 해 붙이는 스타일입니다. 엄마가 장사를 안 나가시는 날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호박 넝쿨이 담장에 올라와 애호박이 담벼락을 넘어왔을 때 친구가 애호박을 따서 저에게 줬는데 엄마는 그 애호박을 갖고 그 집에 찾아가 미안하다고 사과하시고 돌려드렸습니다. 마침 그 집이 교장 선생님 댁이었는데 저더러 ‘넌 참 훌륭한 어머니를 뒀구나’ 하시더군요. 저는 엄마가 용돈 주시면 모아놨다가 어버이날마다 엄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습니다. 엄마는 저를 많이 의지하셨고 예뻐하셨죠. 저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엄마의 공이 큽니다. 엄마는 저를 잘 키워주셨고 엄마가 주신 교훈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힘이 됐습니다. 엄마 살아 생전에 최선을 다해 보살펴드렸고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엄마에게 미안함이나 죄스러움도 없습니다. 공주 공장 준공식 할 때 엄마가 저더러 ‘주댕이 값 했구나’ 하셨죠. 엄마는 호탕하고 웃기시는 재주가 있으셨습니다. ‘주댕이 여물다’는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납니다. ‘성질 값 한다’고 하셨죠(하하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난 후 후레자식 소리 들으면 안된다고 강하게 키워주신 어머니께 감사합니다. 8남매를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 키우시다 보니 추석 명절 때도 새 옷 입는 것은 언감생심이어서 다른 형제들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는데 옷 욕심 많은 저만 나팔바지에 니트를 입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했어도 8남매가 병도 안 걸리고 건강하게 잘 큰 게 가장 큰 축복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 기질을 닮아 일수 심부름도 다녔습니다. 어릴 때부터 경제 관념을 익히게 됐죠. 가정환경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어머니는 제가 멀리서 걸어오는 소리를 들으시면 ‘싸남이 잔뜩 들어있네. 구둣소리 딱딱거리는 것 보니’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시집갈 때 가난한 집에 간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순수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 뒤로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렸으니 한시름 놓으셨죠. 저는 직원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줍니다. 어르신들이 손주더러 ‘내 강아지, 내 새끼 예쁘다’ 하시는 것처럼 저는 직원들의 매력과 장점을 보고 그걸 칭찬해줍니다. 그것도 매우 구체적으로 해줍니다. 진심 어린 칭찬은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죠. 직원들에게 밥을 해 먹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음식 솜씨가 좋거든요(하하하). 그래서 직원들과 허물없이 가족처럼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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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시면서 어려움도 많으셨을 텐데요.

▲사업 시작 3개월 때 인사 사고가 나서 인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가진 재산을 인부 가족에게 보상금으로 모두 드리고 난 뒤 빈털터리가 되어 맨날 콩나물만 먹이고 애들을 키웠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버텼습니다. 그때는 젊었으니 열심히 살았습니다. 나이 먹고 보니 저처럼 열심히 사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도와주게 되더군요. 서른 두 살 어린 나이에 젊은 부부 둘이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던 시절이었네요. 주변 사람들이 저희 부부를 가엾이 여기고 벽돌을 팔아주시더군요. 사업자금을 빌리러 다닐 때도 빌려 주실 때까지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러면 결국 상대방도 마음을 돌리시거든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았죠. 초창기 공장 운영 할 때는 집이 없어 공장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세종시에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사는데요. 벽돌공장을 하면서 안 다녀 본 곳이 없습니다. 중고 지게차 사다리를 사다 보니 자주 고장 나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그 때부터는 새 것으로 사기 시작했죠.

고등학교 때 “효선아, 넌 참 귀여워. 왜 이렇게 예뻐?” 하고 말해주던 매우 여성스런 친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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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여자, 여성 여성’ 하던 그 친구의 칭찬 덕분에 제가 자존감이 높아졌답니다. 선 머슴애 같던 저에게서 걸크러시 매력을 발견해준 친구의 칭찬 한마디에 어린 나이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나 할까요. 그런데 직원들은 제 눈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눈에서 나오는 힘이 있다네요. 영업하러 가면 꼭 팔아줘야 되는 연민 어린 강아지 눈빛으로 변하는데요(하하하). 제가 원래 싸움도 잘하고 욕도 굉장히 잘합니다(하하하). 늘 ‘갑’이 아닌 ‘을의 생각을 갖고 살죠. 한 번도 겁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원해서 하는 영업이니까요. 상대방이 원하지 않고 거절해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괜히 물건에 트집 잡으면 ‘넌 이제 끝이야’ 하고 상대를 안 합니다. 맺고 끊음이 확실하죠. 저는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습니다. 땀 흘려 번 돈 10원이 중요하죠. 그게 바로 내 돈입니다. 부동산이나 주식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직하게 제가 땀 흘려 번 돈만 제 돈입니다. 스물 네 살에 결혼해 서른 한 살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일궈온 공주 공장과 세종 공장과 집이 저의 전 재산입니다. 대상포진에 걸릴 정도로 몸이 부서져랴 뛰어다니며 영업하고 일궈낸 제 기업입니다. 지난해 코로나 때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다리에 대상포진이 왔는데 아플 때 재정비하고 쉬면서 일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이 구속되고 나라가 난리가 나는 듯 했어도 정부청사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이 잘 돼 있으면 CEO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조직은 끄떡도 없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제가 부재 시에도 시스템화가 잘 될 수 있도록 공유 서버를 만들었습니다.

정효선 대표님
-회장님의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소개해주실까요?

▲저는 60세까지 현업에 종사한 후 일을 시스템화 시켜놓고 아들에게 경영 수업을 쌓도록 하고 강연을 다니면서 사는 게 꿈입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결과 성공의 끈을 잡을 수 있었는데요.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 열정을 갖고 참고 견디면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심어주고 싶습니다. 저는 저를 믿고 도와주신 분들께 실망 시키지 않고 보답을 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비가 오면 스며드는 투수블록으로 사업을 성공궤도에 올려놓기까지 용기를 주시고 동기 부여를 해주신 분들을 위해 스토리텔링으로 쉽게 풀어 경험에서 깨달은 노하우를 전수해 드리고 많은 중소기업들을 위해 제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강의’가 지식을 전하는 거라면 ‘강연’은 살아온 이야기를 전하는 거라고 하죠. 제가 살아온 스토리는 ‘열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저의 아이콘인데 이 이야기를 꼭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자존심은 남을 늘 의식하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본인을 사랑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저는 남의 눈을 의식해서 사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고 싶은 겁니다. 저는 자선사업을 많이 하고 싶고 꼭 실천하고 싶습니다. 보도블록 1억 원 상당을 공주시에 기증하기도 했고, 독거 어르신들이 사시는 시골 마당에 보도블록을 깔아드리기도 했습니다. 세종시에서도 기증행사를 했지요. 제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자선 사업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도와 주신 분들을 위해 제 기업의 이익을 환원해드리고 싶습니다. 또 장학금 사업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고, 그런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부자는 아니더라도 제 회사가 지속 가능 기업, 계속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면 10억이든 100억이든 재산이 있을 때 자식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다 쓰고 죽자’는 생각을 하는데요. 사회적 기업, 계속 기업을 만들고 자선사업을 하고 기부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제가 공덕을 쌓는 게 우리 아이들을 도와주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공덕을 쌓아야 자식이 잘됩니다. 제가 오지랖 넓게 많은 분들을 도와드리며 살다 보니 다른 분들이 아들에게 너무나 잘해주십니다. 지금 아들과 함께 충남대 CEO과정을 다니는데 다른 분들께서 제 아들에게 잘해주시는 게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감독관이 저희 공장을 방문하면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엔지니어 남편을 보고 저와 환상의 커플이라고 합니다. 각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면 다들 믿고 맡겨주시죠.

‘쿨하게 주자, 다 주자’ 이런 신조로 삽니다. 서로 윈윈 상생하며 더불어 사는 삶이 최고죠.


대담, 정리 한성일 국장 겸 편집위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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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선 회장은 누구?

▲1965년 대전 출생. 문창초, 대전여중, 대성여상, 한밭대 건축공학과 학사, 석사 졸업. (주)삼이씨엔지(삼일리드텍)대표이사 회장



-(주)삼이씨엔지는 어떤 회사?

▲1996년 한국산업규격표시인증 획득. KS F 4002 속빈콘크리트 블록 - KS F 4004 콘크리트 벽돌, 1996년 삼이벽돌 설립, 2000년 상호변경 및 대표자 변경(삼이콘크리트 대표 정효선), 2001년 양도양수(지위승계) - 한일산업(주), 2001 한국산업규격표시인증서 재교부(대표자 및 상호변경), 2006년 (주)삼이씨앤지 법인 설립, 2007년 공장 이전 및 상호, 대표자 변경 (양도양수 -지위승계) - 공장위치: 충남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 산11번지. - 업 체 명:(주)삼이씨앤지 - 대표이사: 유병용, 2007년 한국산업규격표시인증서 재교부 - 공장이전, 업체명 및 대표자 변경(삼이콘크리트 · ㈜삼이씨앤지), 2007년 공장 등록(공주시), 2010년 전면투수블록 특허등록, 2010년 엠보스톤 투수블록 성능인증서 획득, 2010년 한국산업규격표시인증 획득 - KS F 4006 콘크리트 경계블록 - KS F 4419 보차도용 콘크리트 인터로킹 블록, 2012년 조달청 우수제품 지정증서 획득, 2013년 특수블록 외 2건 특허 출원, 2013년 한국화학융합연구원 투수지속성 인증서 및 TR마크 획득, 2013년 한국건설생활연구원 품질보증서(Q)마크 획득,2014년 대표이사 변경 (정효선 대표이사), 2015년 제 22회 충청남도 기업기업인대상 우수기업인상, 2016년 2016 충청남도 유망중소기업 선정, 2017년 한국산업규격표시인증 획득 ·KS F 4561 시각 장애인용 점자블록, 2017년 인재육성형 중소기업 지정(중소기업중앙회), 2018년 중소기업인의 날 대통령 표창장 수상(행정안정부), 2018년 조달청장 표창장 수상(조달청), 2019년 우수제품 지정서 수여(신제품 네추럴 파이프스톤), 2019년 자랑스러운 충남인 상 수상, 2020년 대표자 추가 - 대표이사 : 유병용(각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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