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그곳] 쪽빛 하늘아래 일렁이는 갈대물결... '공동경비구역 JSA'의 그곳 신성리갈대밭

[거기 그곳] 쪽빛 하늘아래 일렁이는 갈대물결... '공동경비구역 JSA'의 그곳 신성리갈대밭

남북 청년들이 처음 만났던 그 곳
사실은 충남 서천의 너른 갈대밭
사시사철 각기 다른 매력 뿜어내
세모시, 소곡주 체험은 덤이지요

  • 승인 2021-08-14 00:00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거깅ㅇㅇ
중도일보는 매주 대전·충남·세종 지역의 드라마·영화 속 등장한 장소들을 소개하는 '거기 그곳'을 연재합니다. 촬영지로 꼽혔던 이유, TV 속 색다른 모습의 장소들을 돌아보며 무심코 지나쳤던 '그곳'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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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갈대밭 위에 설치된 나무데크가 마치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서천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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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포스터.
▲낮에는 적, 밤에는 친구였던 네 남자
분단의 상처를 꽁꽁 숨긴 채 하나의 강물처럼 일렁이는 갈대숲. 바로 이곳에서 그들의 운명적 만남은 시작됐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사이에 둔 남북 초소 군인들의 비극적 브로맨스를 그려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한발의 총성과 함께 시작되는 이 영화는 2009년 개봉당시 9주 연속 1위를 기록, 관객수 583만명을 끌어 모으며 대흥행에 성공했다. 박상연 작가의 장편소설 'DMZ'을 원작으로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무성한 갈대숲을 헤치며 수색작전을 펼치는 한 무리의 남한 군인들. 아뿔사! 선을 넘어버렸다.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가지만 이수혁(이병헌)은 대열에서 낙오되고 지뢰까지 밟아 버린다. 죽을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인기척을 앞세우고 나타난 건 전우들이 아닌 북한군.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다. 마치 주술에 걸린것처럼...

"가까이 오지마, 나 지뢰 밟았어" 수혁의 다급한 외침. 북한군 오경필(송강호)과 정우진(신하균)은 기다렸다는 듯 발길을 돌리지만, 울먹이는 수혁을 외면하지 못한다. 사건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그들은 급기야 초소를 들락이며 금기된 우정을 나눈다. 때론 총알로 공기놀이를, 때론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애틋한 정을 쌓아간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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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숲 중간중간 전망대와 쉼터가 잘 조성돼 있다. /서천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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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변을 따라 자전거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라이딩하기에도 제격이다. /서천군 제공
▲드넓게 펼쳐진 갈대숲, 그 곳에 경계선은 없다
영화 속에서 판문점 인근 비무장 지대로 묘사된 갈대밭은 실제로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 위치한 신성리갈대밭이다. 약 7만평에 걸쳐 넓게 펼쳐진 갈대는 우리나라 4대 갈대밭 중 하나로 충남 서천군과 전북 군산시가 만나는 금강 하구에 자리하고 있다. 강물의 범람 우려로 농사를 지을 수 없던 까닭에 1000년 전부터 자연스레 형성됐다고 한다. 생태환경 보호를 위해 전체면적의 2~3% 정도만 공원으로 조성해 개방하고 있다.

이 곳은 예전 곰개나루터라고 불렸는데 고려말 진포해전이 있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쌀을 약탈하기 위해 처들어온 왜구 500척을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를 동원해 소탕했다고 한다. 신성리갈대밭은 영화 도입부 이병헌과 송강호, 신하균의 빵빵 터지는 코믹연기 덕분에 전 국민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등극했고 각종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다. 소지섭, 임수정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드라마 '미워한다, 사랑한다'와 장혁이 추노꾼 대길이로 완벽하게 변신한 '추노', 조선판 좀비 이야기를 담은 '킹덤'까지 이곳을 배경으로 꽤나 인상적이 명장면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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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축제 모습. /서천군 제공
▲황금빛 가을도, 여름의 초록도 좋다
신성리갈대밭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뿜어낸다. 매년 2월 새로운 생명을 위해 갈대를 베어내는데 4~5월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해 봄, 여름 내내 초록빛 벌판을 이룬다. 기자가 찾은 날도 초록 갈대들이 바람결따라 싱그러운 노래를 재잘댔다. 푸른 숲 사이 사이로 미로처럼 연결된 산책로,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짙은 풀내음이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갈대숲 위로 레일처럼 놓여진 나무 데크길도 더없이 매력적이다. 넉넉한 마음을 품은 듯 고요히 흐르는 금강을 한눈에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 더디가면 어떠랴, 곳곳에 설치된 쉼터가 발길을 붙잡았다.

늦가을에 만나는 갈대숲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속의 딱 그 모습이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갈대에 너울너울 꽃이 피어나 황금물결을 이룬다. 푸른 하늘을 잡아보려는 듯 더 높이 더 높이 손을 흔든다. 눈 이불 덮은 겨울의 갈대숲에는 차곡차곡 낭만이 서려있다. 철새들의 화려한 군무와 어우러져 한폭 풍경화를 그려내는 곳. 청둥오리, 고니, 기러기 등 매년 10만 마리가 이곳을 찾아오는데 인생작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출사객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4계절이 아름다운 신성리갈대밭, 감사하게도 이 곳은 별도의 입장료와 주차료가 없다. 단 갈대를 베어내는 기간에 방문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텅빈 들판처럼 공허함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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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모시박물관에 설치된 베틀모습. 서천군 제공
▲세모시 옷 입어보고, 소곡주 한잔의 추억을…
신성리갈대밭을 다 돌아봤다고 그냥 발길을 돌리는 건 안될 말. 한산 여행에서 모시박물관과 소곡주 갤러리 탐방은 필수코스다. 모시박물관은 갈대밭에서 멀지않은 한산면 지현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한산모시의 1500년 역사와 재배법, 모시옷과 공예품의 제작과정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모시옷 입기, 천연염색, 베틀체험 등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어 아이들의 현장체험 장소로도 그만이다. 이가 부서지도록 모시를 째고, 무릎이 닳도록 삼고, 팔이 빠지는 고통에도 베를 짜고…. 모시와 한평생을 함께한 전통직조기능 보유자들의 시연 모습 속에서 내 할머니, 어머니의 고달픈 세월을 읽을 수 있었다.

한산여행에서 소곡주를 빠뜨리면 서운하다. 백제가 망한 후 백성들이 나라 잃은 한을 달래며 소복을 입고 빚었다는데서 유래한 이 술은 충남 무형문화재 3호다. 달달한 맛에 한잔 두잔 홀짝이다보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해서 일명 '앉은뱅이술'이라고 부른다. 소곡주 갤러리에서는 70여개 양조장에서 제조한 각기 다른 맛의 소곡주를 시음해 볼 수도 있고, 두 팔 걷어붙이고 술을 직접 빚어볼 수도 있다. 시판 소주의 노골적 쓴맛에 물렸다면 이 달달한 맛에 빠져보시라.

황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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