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영화 '밀양'을 보고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영화 '밀양'을 보고

서경동 극단 헤르메스 연출가

  • 승인 2021-09-01 15:23
  • 신문게재 2021-09-02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20190722-0874--
서경동(극단 헤르메스 연출가)
요즘 가을바람이 부는지 싱숭생숭하다. 누구라도 만나 실컷 수다를 떨고 싶지만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봤다. '밀양'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신애'라는 인물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 첫 장면에서 신애는 핸드폰에 대고 말한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요." 첫 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밀양으로 이사 온 신애는 남편을 잃었다는 기색 하나 없이 씩씩하게 아들 준과 새로운 생활을 꿈꾼다. 돈이 있어 땅을 찾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남의 가게의 인테리어에 조언도 해주고 교회에 나오라는 말에 자신은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밀양의 생활에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아들이 납치된다. 납치범에게 전화를 받고 무작정 걸어가는 신애. 도로에 앉아 소리 죽여 운다. 카메라 앵글은 그런 신애의 뒷모습, 어깨를 낮게 떨며 우는 모습을 잡는다. 돈을 납치범과 약속한 장소에 두고 나올 때도, 아들의 시신을 볼 때도, 경찰서에서 살인자와 마주쳤을 때도, 아들 화장터에서도 그녀는 큰 소리의 울음조차 없다. 아들의 사망 신고 때 무표정의 신애는 연신 불안해한다. 머리를 계속 만지고 자신의 주민번호도 기억해 내지 못 한다. 그리고 신애는 가슴을 부여잡고 거리로 나온다. 숨을 쉬지 못한다. 하지만 소리를 내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더욱더 포장된 감정으로 타인을 만나고 모임에 나간다. 오히려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을 때 내는 화와 지렁이를 보고 놀라 지르는 소리가 신애의 감정이 온전히 담긴 목소리다. 자신에게 솔직히 반응하며 내었던 목소리.

평화에 감정을 숨긴 채 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만나게 되고 그가 자신은 용서받았다는 말을 들은 후 그녀의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신애는 도로 위로 걸어간다. 나지막이 욕을 하며 하늘을 노려본다.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신애. 그녀의 감정은 쏟아져 나왔다. 손목을 긋고 도로로 뛰어나온 신애는 소리친다. 처음으로 차의 경적 소리에 지지 않으려는 듯 소리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그 후 병원에서 퇴원한 신애는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화를 내기도 또 웃기도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며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신애. 카메라 앵글은 그녀의 뒷모습을 잡는다. 거울 속 신애의 얼굴. 자신을 마주하는 거울 안에는 환한 빛이 가득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마당 한편을 보여 준다. 그곳에는 한 줄기 햇살이 비친다. 우리의 감정 밑바닥에도 있을지 모를 신애의 마음 같은, 그 빛 속에는 고인 물, 마른 나뭇잎, 쓰레기 등이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처럼 섞여있다. 그 감정들이 따뜻한 햇볕에 단단해지길 빈다. 오롯이 자신을 마주하고 볼 수 있을 때 우린 살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신애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하고 살아가면서 힘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던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찾고 표현하는 것이 인간으로 얼마나 평범하고 보편적인 수단이며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걸 신애를 보면서 깨달아 본다.

감정을 나누고 공감받고 이해받는 마음은 서로를 잡는 끈이 된다. 그 끈은 버팀목이 되면서 삶 속에 조금은 특별한 마음이 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다. 카메라 앨글처럼 서로의 뒤를 묵묵히 지켜봐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영화를 본 뒤 먹먹한 마음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해본다. 그리고 수다를 떨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3.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