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교문을 통과해도 존중받아야 하는 인권

  • 오피니언
  • 월요논단

[월요논단] 교문을 통과해도 존중받아야 하는 인권

박병수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장

  • 승인 2022-03-13 08:31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박병수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장
박병수 소장
"아동이 학교 교문을 통과하였다고 해서, 그들의 권리를 잃는 것은 아니다."

UN 아동권리위원회는 2001년 발표한 일반논평 제1호(교육의 목적)에서 이를 천명했다. 이와 더불어 아동권리위원회는 교육은 아동 중심적이고 아동 우호적이며 아동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한 UN의 인권조약기구가 당연한 말을 언급한 것을 보면 당시 많은 국가의 아동이 학교 내에서 인권을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 향상과 더불어 학생에 대한 체벌이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학생의 자치와 참여 및 의견을 표명할 권리는 기회와 경험의 확대를 거치며 조금씩 증진됐다.

초중등교육법은 2007년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할 학교의 의무를 규정하는 조항이 신설됐고 2020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두발·복장 등 용모, 교육 목적상 필요한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사용' 등에 관한 사항이 학교규칙의 기재사항에서 삭제됐다. 최근에는 학생의 인권보장을 명시하고 학생 인권 침해행위의 금지 규정을 신설하며 총학생회와 학생옹호관 설치 및 운영, 학교운영위원회 학생 대표 참여 등을 법률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학생인권법)이 발의됐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의 향유자이자 권리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또한 학생이 일방적인 규제와 지도의 대상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자신의 기본권을 행사하는 주체로서, 학교의 영역에서도 기본권 행사의 방법을 연습하는 기회를 부여받아야만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형성하고 결정할 수 있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밝혀 왔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학생의 인권은 여전히 과도하게 제한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학교는 학생의 두발 길이와 모양, 치마 길이, 속옷과 양말 색상, 신발의 색상과 굽 높이, 가방 모양을 학칙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 학교에서 학생의 휴대전화를 아침 등교 시 수거하고 하교 시 돌려주고 있다. 어느 학교는 학생회 임원선거 출마자의 공약 및 연설문을 사전 검열하고 실현 가능성, 우려 사항 등을 이유로 내용을 수정하도록 하기도 했다.

이러한 학생 권리에 대한 학교의 과도한 제한 조치는 타인에게 위해를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간섭받음이 없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결정할 수 있는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자기결정권과 개성을 자유롭게 발현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의 통신 자유와 학생의 자유로운 의견표명권 및 학생 자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유력한 방안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그동안 경기와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인천 등 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물론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이른바 만병통치약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인권이 제정된 지역의 학생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직간접적인 체벌, 사전 동의 없는 소지품 검사, 서약서(동의서) 작성 강요 등을 경험했다는 비율이 다른 지역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대전 인권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대전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반갑고 감사하다.

교육현장에서 학생이 교육의 주체로 인식되면서 인격형성과 인권이 보장되는 교육 권리를 제대로 존중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았다. 학교에서 학생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가운데, 학생 중심적이고, 학생 우호적이고 학생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한다. 그럴 때 우리는 아동이 학교의 교문을 통과해도 그들의 인권이 상실되지 않는다는 선언을 현실에서 구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병수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곡교천 탕정지구 연계사업' 밑그림 그려졌다"
  2. 주말 사우나에 쓰러진 60대 시민 심폐소생술 대전경찰관 '화제'
  3. 의령군 자굴산 자연휴양림 겨울 숲 별빛 여행 개최
  4. [라이즈 현안 점검] 대학 수는 적은데 국비는 수십억 차이…지역대 '빈익빈 부익부' 우려
  5. 대전우리병원, 척추내시경술 국제 교육 스파인워커아카데미 업무협약
  1. 대전 교사들 한국원자력연 방문, 원자력 이해 UP
  2. "함께 걸어온 1년, 함께 만들어갈 내일"
  3.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변동중,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예술교육
  4. 낮고 낡아 위험했던 대전버드내초 울타리 교체 완료 "선제 대응"
  5. {현장취재]김기황 원장, 한국효문화진흥원 2025 동계효문화포럼 개최

헤드라인 뉴스


공백 채울 마지막 기회…충청권, 공공기관 유치 사활

공백 채울 마지막 기회…충청권, 공공기관 유치 사활

이재명 정부가 2027년 공공기관 제2차 이전을 시작하기로 한 가운데 대전시와 충남도가 '무늬만 혁신도시'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20년 가까이 정부 정책에서 소외됐던 두 시도는 이번에 우량 공공기관 유치로 지역발전 모멘텀을 쓰기 위해 역량을 모으고 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배정에서 제외됐다. 대전은 기존 연구기관 집적과 세종시 출범 효과를 고려해 별도 이전 필요성이 낮다고 판단됐고, 충남은 수도권 접근성 등 조건을 이유로 제외됐다. 이후 대전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 세종 이전과 인구 유출이 이..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직장맘에게 지급하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상한액이 내년부터 월 2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하한액이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을 웃도는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산전후휴가 급여 등 상한액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출산 전과 후에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있다. 미숙아 출산은 100일, 쌍둥이는 120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최소 60일(쌍둥이 75일)은 통상임금의 100%를 받는 유급휴가다. 정부는 출산·육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최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10일 소상공인 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 풍성한 연말 공연 풍성한 연말 공연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