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71-3·1문예를 아시나요] 중도일보 문예 당선 여고생 소설가 삶 '나침반'

[창간71-3·1문예를 아시나요] 중도일보 문예 당선 여고생 소설가 삶 '나침반'

1955년 중도일보 문예대회 현상모집 당선
대전사범 방학숙제 쓴 '단념' 인생 전환점
동아일보 심훈 '상록수'이어 농촌문학으로 데뷔

  • 승인 2022-08-31 16:38
  • 신문게재 2022-09-01 16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이규희 작가
이규희 작가
"대전사범학교 재학 중 방학 숙제로 학교에 제출한 단편소설 '단념'이 중도일보 고등부 문예에 당선되었고, 소설가의 길을 걷는 나침반이 되었죠"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이규희 작가는 1955년 중도일보와 맺은 인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충남 아산 잔실의 첩첩두메에서 자란 이 작가는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대전에서 앞서 정착한 오빠와 생활했다. 중학교 입학실을 치르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을 맞았을 때 피난 보따리에 새로 받은 교과서만 싸서 짊어지고 다녔던 그였다. 그것이 그가 그리는 먼 장래와 이어질 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 작가는 "대전사범학교에 입학하니 시인 한성기 선생님과 서지학자 백순재 선생님이 계셨고, 소설을 써오라는 방학 숙제가 있었다"라며 "2년간 도시락 없는 점심시간에 읽은 소설책들이 밑바닥 실력이 되었는지 짧막한 단편소설이 엮어졌고, '단념'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숙제를 낸 백순재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으니, 학교에 제출한 '단념'을 아주 잊고 있던 중, 한성기 선생님이 중도일보의 고등학생부 문예작품 공모에서 이 작가가 숙제로 낸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이 작가는 "그때 '단념'이 제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고, 중도일보 당선이 운명을 바꾸었다"라며 "사범학교를 졸업해 교사의 길이 예정돼 있었으나, 문학에 대한 동경을 갖고 계셨던지 아버지께서 곧장 나의 대학 진학을 허락하셨고, 국문과를 이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가 사범학교에 재학 때 대전은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으나,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혼란으로 문학과 예술분야 지식인들이 대전에 머물며 학문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대전사범학교는 시인 한성기 교사와 서지학자 백순재 교사가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쳤고, 마침 여학생 1개 반이 새로 생겨 남녀공학이 되었다.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절로 소설가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이 작가는 대학 졸업 후 25살 새파란 나이에 소설을 잉태하려 그의 고향이자 첩첩 두메마을로 돌아와 건너방에서 묵묵히 소설을 써나갔다. 뭇새들 조차 곤히 잠든 고요한 밤, 아버지가 뒤란을 걷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완성한 장편소설 '속솔이뜸의 댕이'는 1963년 동아일보 창간기념 장편소설 모집에 당선돼 문단 말석에 발을 붙였다. 1935년 작가 심훈이 '상록수'로 당선된 특별한 공모전에서, 이 작가가 고향을 이야기한 순수 농민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설집 '그 여자의 뜀박질은 끝나지 않았다'로 1998년 제35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하고, 6년간의 자료수집과 인터뷰 그리고도 집필을 완성하기까지 6년이 더 소요된 '그리움이 우리를 보듬어 올 때'는 1980년대 신군부 시대 민주화운동을 세밀하게 묘사했고, 2010년 가톨릭문학상을 그에게 안겼다.

이 작가는 "아슬아슬한 고층빌딩 위에 앉아 있는 우리를 추락하지 않게 받치고 있는 것은 농민이고, 농민의 구슬땀이 왜 무의미해야 하는가 묻고자 속솔이뜸의 댕이를 썼다"라며 "중도일보 문예에 당선되면서 운명이 바뀌었고, 소설가의 삶은 한치의 후회함 없이 아버지를 포함해 내가 글을 쓰게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