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류와 공존] 고향은 대전, 국적은 일본… 식민지조선의 지워진 그들

[한일교류와 공존] 고향은 대전, 국적은 일본… 식민지조선의 지워진 그들

대전에서 태어나 패망 때 일본으로 인양
유년기 기억은 대전, 성장은 일본 이중적
지도 그리고 자료 수집하며 대전 의식화
총체적 역사와 개체의 의식구조 사이 헤매

  • 승인 2022-11-17 17:58
  • 수정 2022-11-17 18:10
  • 신문게재 2022-11-18 10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대전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이 기억하는 대전과 대전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5박 6일 일본에 체류했다. 일제시대 조선 대전에서 태어나 패망을 맞아 본국으로 인양(引揚·히키아게)된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리고 시민과 도시 간의 연대와 교류라는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어쩌면 대전이라는 배경이 있어 가능했던 취재기를 다섯 차례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제 고향은 '1945 대전'
2. 24년 교류 이어온 인연
3. 韓日 낮고도 큰 목소리
4. 상처의 기록과 예술화
5. 교류를 이어 공존으로



하기모토 형제2
하기모토 형제가 제작한 대전역 소제동 지형도과 관사촌 모형도.
▲한국태생 일본인의 귀향
1945년 8월 15일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이날을 패망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1907년 177명 철도근로자가 정착해 대전역에서 전방 1㎞까지 생활권을 이룬 재조선 대전 일본인은 1915년 4360명, 1925년 3770명 그리고 1937년 9278명까지 늘었다. 1938년 충남 대전부 본정통(혼마치) 2가에서 출생한 오쿠보 고조(大久保孝造·84) 씨도 재조선 대전 일본인 중의 한 명이다. 아이치현 가스가이시에 거주 중인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약속된 만남을 미루고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쿠보 씨는 "1945년 일본으로 귀환할 때 우리 가족이 탄 화물열차가 영동역에 도착하자 11살 형의 친구인 김기승 군이 어떻게 알고 나왔는지 따라 올라타 야간을 무릅쓰고 부산까지 배웅해주어 지금도 감사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교류했다"며 "우리 형제들의 묘가 대전 홍도총에 안장되어 있어 더욱이 대전을 남다르게 생각하고 고향이라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친형 오쿠보 준지(大久保舜司) 씨는 한일시민네트워크에 기고한 회고록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인 대전에 대한 기억을 남겼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대전에서 지내면서 이곳이 이국 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일본이라는 나라 중에 한국인이라는 특이한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여겼다는 솔직한 회상과 함께 그의 어머니가 3·1독립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문틈으로 보아 그로 인해 후년에는 일본 군대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에게 8월 15일은 이렇게 기억되고 있다. 하기모토 마사히코(萩本 萩元正彦), 하기모토 미치유키(萩元道行) 형제는 "1945년 8월 상순 어떤 여성이 우리 집을 찾아와 화장실을 빌려달라고 한 후 우리 어머니에게 실은 비밀인데 만주의 신경(현 장춘)에 있다가 급거 열차를 타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에 도착했다"라며 "더욱 남하할 예정인데 오늘은 야구장에서 야영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대전에서의 생활
대전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은 고용주와 종업원, 고용주 가족과 가사 사용인, 도시생활자와 그 편의를 제공하는 수선공, 행상, 노점상 등의 관계형식을 통해 교차된 것으로 보인다. 재조선 대전 일본인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조선적인 것'은 이 교차점에서 찾아진다. 다다미방이었으나 거실에 조선식 온돌을 놓아 장작이 필요할 때 나무를 패 근소한 임금을 받는 근로자, 가정을 방문해 빨래를 수거하는 여성이 방망이로 두드리는 조선식으로 해 줄 것인지 묻는 풍경 등을 기억으로 회상했다.

차은정 작가는 그의 책 '식민지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을 통해 식민지조선의 직업에 대한 민족 차별구조에 대해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귀환해서야 인지할 수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책에서 "귀환 일본인 인터뷰를 통해 수화물을 나르는 짐꾼이나 택시의 운전수 그 밖의 노동일을 하는 일본인을 본토에서 (처음)보고 놀랐다"라며 "조선에서 직업적 서열 상위를 점했다는 사실을 귀한 후 자각했을 터인데 조선의 기억에서 그러한 민족별 직업편제의 차별적 구조를 성찰하지 않았을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갔다.

이러한 내재할 갈등요소 탓인지 1922년 교묘한 방식으로 대전에서 한국인들에게 물건값을 더 받아 싸움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신문에 타전되고, 1921년 5월에는 일본인 교사가 한국인 학생을 모욕해 동맹휴학까지 벌어지는 등 식민도시 대전의 풍경을 언론은 이렇게 묘사했다.

박영규(91) 삼화모터스 회장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거주지가 달랐음을 증언한다. 그는 기차 연기가 밀려오는 신안동 방향에 조선인들이 살고 소제동에 일본인이 살았다고 기억했다. 박 회장은 "지금 가오동 방향에 일본인 농경지가 있었는데, 작물을 조선인에게는 판매하지 않았지"라며 "어떤 날에는 너무 분해서 잡히면 형무소감이었겠지만, 밭에 몰래 들어가 작물에 해코지를 하고 들키지 않으려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때 대전시와 일본 나고야시 사이에 자매결연을 맺고자 활약했을 정도로 교우를 맺고 있다.

▲고향의식과 사과
일본 국왕이 항복을 선언하고 조선총독부와 일본군의 균열이 생기면서 대전 시내에도 변화가 소용돌이쳤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에 몰렸고, 패전과 함께 가재도구를 헐값에 내다 팔고 귀환에 나서는 경우도 다수였다. 일본인들을 본국으로 귀환하기 위한 열차가 운행되고 대전을 포함해 대전 이북지역 일본군은 인천으로 그리고 대전 이남 지역의 일본군은 부산을 통해 무장해제와 송환됐다. 손에 들 수 있는 정도의 짐을 가지고 부산을 거쳐 본국으로 귀환한 일본인들은 대전에서와 전혀 다른 사회적 지위과 경제 상황에서 낯선 귀향생활을 재개했다. 극히 일부였지만, 미안한 마음을 수기로 남기기도 했다. 후쿠나카 도모코(福中都生子, 1928~2008) 씨는 '대전이라는 마을(大田町)'라는 시를 통해 '한일한병합이라는 비극의 이야기를 알지 못했습니다/ 내 부모 같은 사람들의 선량함이/ 누군가에 이용되었음을 알게 된 것은 수십 년이 지난 최근의 일'이라고 밝혔다. 반대로 대전이 철도건설의 거점으로 만들어진 도시임을 생각해보면 일본 제국주의적 욕망과 함께 확장된 선로만큼 재조선 대전 일본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상반된 의견이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일본=임병안 기자 victorylba@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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