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류와 공존] "나고자란 대전 내 고향, 옛것을 남기려는 노력 감사해"

[한일교류와 공존] "나고자란 대전 내 고향, 옛것을 남기려는 노력 감사해"

1. 제 고향은 '1945 대전'
후지츄양조 쓰지 만타로 아들 아츠시 인터뷰
전쟁 후 대전에 3개월 더 머물며 정착 바라
대전 다시찾지 않은 아버지 유해 보문산에 유언
"젊은 세대 좋은 관계를, 옛것 지켜줘 고마워"

  • 승인 2022-11-17 17:59
  • 수정 2025-07-02 14:17
  • 신문게재 2022-11-18 10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대전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이 기억하는 대전과 대전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5박 6일 일본에 체류했다. 일제시대 조선 대전에서 태어나 패망을 맞아 본국으로 인양(引揚·히키아게)된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리고 시민과 도시 간의 연대와 교류라는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어쩌면 대전이라는 배경이 있어 가능했던 취재기를 다섯 차례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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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아츠시 씨가 일본 고난시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보문산 별장 대전시문화재 등록을 다룬 중도일보를 보며 대전에 대한 기억을 설명했다.
일본 나고야시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아이치현 고난시의 자택에서 대전 출생의 쓰지 아츠시(醇·84) 씨와 마주했다. 11월 초 일본의 가을은 벼 밑동만 남은 경작지 모습이나 낙엽지는 가을산 풍경이 한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오히려 놀라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다가 쓰지 씨의 집 앞에 도착했던 것이다. 이날 만남을 주선한 한일시민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인 고토 카즈아키(後藤和晃·82) 씨가 동행했고, 앞서 2019년 재조선 한국 태생의 일본인을 취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시회를 개최한 배상순 작가가 합류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만남과 교류가 극도로 위축되었던 일본에서 모처럼 일상을 되찾은 때 대전에서 기자가 찾아온 것을 기회로 쓰지 씨의 안부를 묻고자 여러 명이 모이게 된 것이다.

쓰지 아츠시 씨는 1938년 대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까지 대전에서 학교를 다닌 재조선 일본인 귀환자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대를 의미할 때를 조선이라고 칭하고 한일병합 이전과 광복 이후는 한국이라고 표현했을 때 일제시대 조선에서 거주한 그는 대전과 인연이 깊다. 그의 할아버지 쓰지 긴노스케(勤之祖, 1881~1931)가 한일 강제병합 이전인 1904년 한국으로 이주해 대전에서 면직물 판매업을 시작해 1907년 세운 쓰지장유(醬油釀造場)라는 간장공장이 역시 대전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 쓰지 만타로(萬太郞, 1909~1983) 때에 주식회사 형태의 후지츄양조(富士忠醬油)로 전환되어 대전에서 보기 드물게 큰 성공을 이뤘다. 1938년 당시 신문 보도를 기준으로 대전부 전체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6명 중에 김갑순과 조선흥업회사 등과 함께 쓰지 만타로 씨가 포함될 정도로 토지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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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씨가 그의 생애에 기억 남는 때를 모은 그림. 쓰지 씨가 직접 그렸다고 한다.
11월 3일 오전 11시 거실에 둘러앉은 기자를 비롯한 일행을 향해 쓰지 씨는 한국에서 지인이 보내온 항아리와 시멘트 덩어리를 우선 보여줬다. 쓰지 씨는 "옛날 간장공장에서 간장을 담아 판매할 때 사용하던 그릇인데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게 감사하다"라며 "시멘트 덩어리도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저희 아버지가 세운 보문산 별장에서 떨어진 것을 구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쓰지 씨의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 때까지 일으킨 장유사업은 대전 인근에 콩과 보리를 경작하는 곳이 많아 원료인 대두와 소맥을 구하기 유리한 조건과 대전 조선인 근로자들에게 힘입어 1926년 기준 간장 생산량 연간 1800석(石)에 전국 97개 기업 중 7위의 규모로 성장했다. 또 그의 아버지는 대전청년회부회장과 대전부의원 등 공직을 두루 지내며 상습 침수를 일으키던 대동천 정비사업을 비롯해 충남도청 대전유치운동에도 참여했다. 쓰지 만타로 씨가 대전에서 한국인과 좋은 관계를 맺었고, 지역에 애정을 쏟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고 77년이 흐른 현재까지 후지츄양조의 쓰지 만타로를 기억하는 이들이 여럿 있고, 대전 역사를 소개할 때 그의 이름과 기업이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있다. 이곳 출신 직원이 대창장류사라는 회사를 차려 지금의 (주)진미식품으로 이어지고, 후지츄양조에 뿌리를 둔 대창단무지 역시 대창농원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쓰지 씨는 "대전역 옆에 있던 후지츄 간장공장에 100여 명이 일했는데 관리자를 비롯해 대부분 한국인이었고 사이좋게 지냈다"라며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태평양전쟁이 종결되고도 대전에 끝까지 남을 수 있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선언과 포츠담선언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이후 대전에서 생활을 이렇게 기억한다. "일본인 중에서도 한국인과 관계가 나빴던 이들은 재빨리 도망치듯 일본으로 귀국했고 그들은 한국에 재산도 가져갔으나, 아버지께서는 10월 말까지 그대로 대전에 남아 계셨고 어떻게든 계속 정착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라며 "그러나 일본에서 근로했던 이들이 돌아와 (일본인을 향해)시위 같은 것을 하고 상황이 바뀌면서 저는 운영을 멈춘 공장 안에서만 지냈고 결국 대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저희가 일본으로 귀환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대화는 대전시가 문화재로 등록을 예고한 옛 보문사 요사채로 화제가 옮겨갔다. 대전시는 10월 말 보문산 옛 케이블카 인근에 있는 68㎡의 아담한 단층 주택을 대전시 문화재로 등록한다고 밝혔다. 해당 주택은 쓰지 만타로 씨가 1931년 가족의 별장을 목적으로 지은 집으로 사찰의 승방으로 사용되면서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전됐다.

별장
쓰지 만타로 씨가 만든 보문산 별장. 대전시문화재 등록을 앞뒀다.
쓰지 씨는 "별장은 중풍을 앓으신 할머니를 손수레에 모셔 요양하거나 병환을 얻은 삼촌이 잠시 머물거나 주말에 가족들이 모여 다과를 즐기던 곳"이라며 "대전역 옆 간장공장의 건물은 일본에서 나무를 가져다 일본식으로 지은 건물이었으나, 별장은 조선의 소나무로 조선의 건축양식을 적용해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문산은 그에게 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버지 쓰지 만타로 씨의 생전 유언에 따라 1983년 숨을 거둔 아버지의 유골 절반을 보문산에 안장했다. 쓰지 만타로 씨는 1945년 11월 일본으로 귀환한 뒤 한국이나 대전을 한 차례도 찾아오지 않았으나 유해만큼은 보문산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쓰지 씨는 "저는 1975년께 출장 차 전남 여수를 갔다가 저희 집안과 오랫동안 교류한 이영생(1915~1992) 씨의 도움으로 대전을 방문해 제가 자란 집과 보문산 별장을 둘러보았고, 1993년에는 여러 가족을 모시고 대전엑스포를 관람하는 등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라며 "아버지께서는 저희와 함께 대전에 다녀오자는 제안에 응하지 않으셨지만, 제가 촬영한 사진을 자세히 보시고 퍼즐을 맞추듯 오랜 시간 작업하셨다"고 기억했다. 쓰지 만타로 씨는 대전을 다시 찾지 않았으나 자신의 기억을 여러 자료로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7년간의 집필 기간 끝에 대전에서 삶을 다룬 '포플라와 바가지'라는 책을 출간했다.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문서자료와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노력해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쓰지 만타로
대전에서 태어난 재조일본인 쓰지 만타로와 그의 부인 히사코. 후지츄장유로 대표되는 쓰지 집안은 대전과 인연이 깊다.
쓰지 씨는 "이 책은 우리 가족만 읽도록 쓰신 것은 아닌 것 같고 기회가 된다면 대전의 사람들도 두루 읽는 그런 책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발전한 대전 모습을 반갑게 생각하고, 옛날 것들을 남기려는 노력에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지금 한일관계가 좋지 않아 가슴 아프지만, 형제라도 사이 나쁠 때가 있다"며 "한일 젊은 세대부터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고 그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아이치현=임병안 기자 victorylba@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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