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그 말 한마디…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그 말 한마디…

황미란 편집부장

  • 승인 2023-02-23 09:40
  • 수정 2023-02-23 10:05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내사진-칼럼
다닥 다닥 다다닥…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단어를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운다. 짧지 않은 세월을 신문 편집기자로 살고 있다. 매일 수많은 기사를 읽고 그 뉴스 가치에 따라 레이아웃을 잡고, 또 제목을 달아 종이신문에 담아낸다. 그중에서 제일 어려운 과정은 제한된 글자 수로 각 기사마다 꼭 맞는 제목을 달아주는 일. 글의 내용을 잘 담아냈는지, 너무 상투적이지는 않은지, 단어 선택이 적절했는지 뜯어보고 또 곱씹어 본다. 그래도 남는 후회들. 정답이 없어서일까? 기사에 거명된 직접 당사자나 이해 관계자부터 글을 쓴 기자, 기사를 읽는 독자까지 내가 단 제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늘 걱정스럽다.



'일본침몰'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진도 8.8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강진과 쓰나미가 일어 1만8500명을 넘게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유례없는 비극에 국내 언론에서도 일제히 신문지면 1면을 통째로 할애해 보도했는데, 이때 일부 언론사가 내 건 제목이 바로 '일본침몰'이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이웃나라의 안타까운 참상을 전하는데 초점을 맞췄지만, 이들은 내심 지리한 대결구도의 한·일 관계를 자극하는데 방점을 뒀는지도 모른다. 이웃나라의 불행을 보며 통쾌해 할 것이라며 우리 국민성을 오해(?)했는지도 모른다.



또 한가지 사례가 있다.

"막장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라." 십수년 전 화제가 됐던 조관일 대한석탄공사 전 사장의 말이다. 막장 드라마, 막장 국회, 막장 인생이라는 단어가 유행어처럼 회자되던 때다. 조 사장은 '막장은 희망입니다'라는 글을 통해 광산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지하의 끝부분을 뜻하는 막장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단어의 대명사로 쓰이는 것에 대해 항의했다.

그는 "지하 수백미터 막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광부와 그들의 어린 자녀들이 '막장 운운'하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느냐"며 "막장은 폭력이 난무하는 곳도 아니고 불륜이 있는 곳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막장이란 단어의 '막'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에게 사용되는 용어이기도 하다"며 "드라마든 국회든 희망과 최고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 함부로 이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일침했다. 그 후로 '막장'이라는 단어는 신문 제목에서 만큼은 사라졌다.

다다 다다 다다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읊조리고 또 가볍게 쏟아낸다. 눈만 뜨면 들려오는 쿨함을 가장한 독설들, 그 거침없음에 환호하고 더 거친 말로 동조한다. 신문 제목과 달리 글자 수 제한도 없다. 마음과는 다르게, 또는 더 강하게, 속수무책 입 밖으로 뛰쳐나가는 말들. 그 정제되지 않은 어휘들로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이유로 분개하며 비천한 단어로 또 누군가를 노엽게 한다. 한 번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의 힘, 그 크고 두려운 힘을 알고 있음에도 날마다 말 속에 날카로운 가시를 키워간다.

가시 달린 말뿐이 아니다, 경계해야 할 것은. 무심코 던진 기약 없는 약속과 빈말들.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 어찌 보면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 밥 한번쯤 같이 먹어도 좋을 사이로 남고 싶다는 의중이 담긴 말이지만, 그 '밥 한번'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상대방에게는 기대만큼 더 큰 상처일 수 있다. 좋은 의도건 나쁜 의도건 중요치 않다. 말도 신문 제목을 달 듯 뜯어보고 곱씹는 연습이 필요함이 분명하다.

혀끝이 요동칠 때마다 주문을 외우듯 어느 현자의 조언을 마음속에 되뇐다. "펄펄 끓는 냄비 뚜껑을 조금씩 열어두면 끓어오르던 내용물이 가라앉게 되는 것처럼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대화의 목적과 관계의 끝을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황미란 편집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울대 10개 만들기 동행 모델' 띄운다… 한밭대 등 국공립대 연대 STU 제안
  2. 짙은 안개에 미세먼지까지… 충청 출근길 사고 잇따라
  3. 대전 학교급식종사자들 "교육청 임금체불" 노동청에 진정 신청
  4. [썰] 권선택의 민주당 대전시장 '판' 흔들기?
  5. 세종 파크골프 저력… 신현주 선수, 中 챔피언십 왕중왕전 우승
  1. [춘하추동]다문화 사회와 문화 정체성
  2. [대전에서 하룻 밤 더] 관광 소비액 5조원 목전 둔 대전
  3. 대전 대덕구, 덕암야구장 반려동물 놀이터 개장
  4. ‘그날의 함성 다시 한 번’…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
  5. ‘반려견과 함께’

헤드라인 뉴스


이 대통령 "추가 정부부처 분산 없다"… 세종 행정수도 의지 확고

이 대통령 "추가 정부부처 분산 없다"… 세종 행정수도 의지 확고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추가 정부 부처 분산은 없다”고 못 박았다.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0회 국무회의에서 ‘균형성장을 위한 지방 우대방안’과 관련한 토의에서다. 토의 중 해양수산부 장관 직무대행이 ‘부산 이전 성과’를 언급하자, 이 대통령은 "부산으로 옮겨서 실제로는 예측했던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며 "그래서 농식품부를 광주로 보내달라고 그러고, 강원도는 관광 도시니까 문체부를 강원도로 보내달라고 이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수부가 유일한 예외'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그래서 다시 한번 명확하게..

[대전에서 하룻 밤 더] 공유숙박, 체류형 관광모델 활성화 필요
[대전에서 하룻 밤 더] 공유숙박, 체류형 관광모델 활성화 필요

대전은 최근 타지에서 유입되는 방문객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2025년 기준 9000만 명이 넘는 외지인이 지역을 찾았다. 주요 백화점을 찾는 소비자부터 '빵의 도시'란 이름에 걸맞게 성심당을 비롯한 여러 제과점을 탐방하는 이른바 '빵 관광'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쇼핑과 식·음료 업종에 소비가 집중되다 보니 방문객을 지역에 머물게 할 핵심적인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 방문객이 대전에서 지갑을 열고, 소비하게 되면 그만큼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중도일보는 대전 방문..

공공기관 2차 이전 `빨간불` … 지역 발전 고려 최우선해야
공공기관 2차 이전 '빨간불' … 지역 발전 고려 최우선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해 이른바 '집중 전략'을 언급하면서 대전과 충남의 공공기관 2차 이전 대응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치권 안팎에선 '집중 전략'은 사실상 행정통합 지역과 기존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집중 배치하겠다는 의중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사실상 행정통합 무산과 1차 공공기관 이전 수혜를 받지 못한 대전시와 충남도 입장에선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인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13일 충북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공공기관 이전을 포함한 국토 재배치와 균형발전 문제는 국가 생존이 걸린 문제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

  • ‘반려견과 함께’ ‘반려견과 함께’

  • ‘그날의 함성 다시 한 번’…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 ‘그날의 함성 다시 한 번’…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

  • ‘봄이 왔어요’ ‘봄이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