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사과와 용서, 과거를 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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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과와 용서, 과거를 넘는 법

  • 승인 2023-03-22 17:08
  • 신문게재 2023-03-23 18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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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빛나고 아름다운 복수는 없다. 피해자들은 덧난 상처를 감춘 채 살아가고, 가해자들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중이 바라는 현실판 '더 글로리'는 그저 꿈일 뿐이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도둑 시청까지 불러온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외신들의 평을 끌어 쓰자면 '완벽한 시나리오, 배우의 연기력, 탁월한 설득력과 표현방식 등'이다. 사견으론 주제의 '공감'을 꼽고 싶다. 누군가 저지르고, 누군간 당하고, 누군가는 침묵했던 '학교 폭력'이란 주제 말이다.

그 시절 그 교실에서 나는 매번 주인공은 아니었다. 때론 외면하고 어느 순간엔 손을 내밀었던 평범한 학생. 그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공감'이 가능한 것은 영광스럽지 않은 복수를 응원해 버린 이유다. 오히려 반성 없이 파국을 맞이한 가해자들의 얼굴이 무섭고 소름 끼친다. 사죄하지 않는 이들에게 용서가 가당키나 한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그들의 어른들은 왜 가르쳐 주지 않았나.

한국의 드라마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거쳐 사회 전반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학폭 논란을 뿌리부터 뽑아야 한다는 여론은 국가수사본부장직의 낙마 사태로 정점을 찍는다. 검사 출신 변호사, 정순신 아들이 학교폭력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탓이다.

법을 다루던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아들의 처벌을 피하고 피해자를 두 번 울렸다는 내용은 공분을 일으켰다. 이번 기회에 학폭 관련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진상조사를 위한 청문회 실시의 건이 야당 단독으로 의결되기도 했다. 청문회는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폭 사안에 대한 기록 보존 규정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 미비점을 손보겠다고 나섰다. 이달 말까지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청문회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백년대계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대책은 요원하고, 일시적으로 반짝 관심이 쏠리다가 묻혀버리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한일관계는 한쪽이 더 얻으면 다른 쪽이 그만큼 더 잃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명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강조한 내용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는 결국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우리 국민과 기업들에 커다란 혜택으로 보답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한일정상회담 이후 쏟아지는 국내비판 여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필요한 절차라는 것엔 공감한다. 다만 불행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지향점을 도출하기 위한 첫발은 당연히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과 사과'일 테다. 대다수 국민은 아직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수십 차례에 걸쳐 사과를 표했다고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어느 쪽의 이해가 우선인가. 대통령은 어느 쪽에 귀와 마음을 열고 있는가.

독도 영토분쟁, 교과서 역사 왜곡, 전범 논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가해 행태는 현재진행형인데, 대한독립을 외친 3·1절날 동네에 휘날리던 일장기를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게 옳은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모두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감정으로 치부해선 안된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직접적인 사과를 받지 못하고 과거를 넘어버린다면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올바른 역사관은 없다.

/고미선 사회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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