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테미언덕 위에 하얀 집, 옛 테미도서관 건축 읽기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 테미언덕 위에 하얀 집, 옛 테미도서관 건축 읽기

황민혜 대전시 문화재전문위원

  • 승인 2023-07-31 08:39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KakaoTalk_20230726_101955886
황민혜 문화재 전문위원
대전 중구 대흥동 테미공원, 해발 100여 미터의 수도산에 위치한 이곳을 오르다 보면 살짝 연식이 있어 보이는, 하지만 누군가 공들여 디자인한 듯한 단아한 직육면체의 철근콘크리트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테미예술창작센터라는 이름을 가진 '옛 테미도서관'이다.

과감하게 돌출된 수직 부재와 그 내부를 다시 리듬감 있게 분절한 가로 부재. 그리고 그것들을 상냥한 리듬감으로 지그시 눌러주는 육중한 파라펫(최상증의 벽면). 건축물의 삼면이 모두 이 같은 수직 모듈로 반복되는 가운데, 비탈길 방향으로 살짝 치우쳐 낸 정문은 이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길을 친절히 이끌어준다. 건축가의 정교하고 섬세한 손길로 만들어진 이 모든 건축적 조작들은 단조롭지만 조형적이고, 엄중하지만 경쾌한, 이율배반적이지만 흥미로운 이 건물만의 독특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커튼월 구조 아니면 이리저리 매스를 분절시켜 공간감을 살리는 건축물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 이처럼 콘크리트로 나름의 멋을 부린 직육면체의 건축물이 어쩌면 특이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대 건축의 기원은 백 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으로 돌, 나무, 흙이라는 고전적인 건축 재료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철은 강해졌고, 유리는 단단하고 투명해졌다. 철근콘크리트가 개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자체에도 적정 강도를 얻을 수 있는 물·시멘트·골재 배합비가 발견됐다. 강도가 확보됨에 따라 기존에 두꺼운 벽으로 지탱하던 건축물에서 무게를 지탱하는 세장한 기둥이 분리됐으며, 이로써 평면의 형태는 자유로워지고 다양해졌다.

1920~30년대 이르러 모더니즘(Modernism)이라는 이름으로 건축 공간과 형태에 대한 여러 아방가르드적 실험이 완성됐고 모더니즘 건축은 단일 육면체, 벽에서 분리된 기둥. 평지붕, 단조로운 외피,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창 등을 자신의 중요한 건축언어로 삼았다. 이후 이 모더니즘 건축은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전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 전역에도 퍼져나갔다. 한국에서도 1950년대 전후 복구기를 지나 1960년대부터 모더니즘 계열의 건축물이 국제주의 양식의 연장선에서 경제성장과 함께 등장했다. 5.16 군사정변에서 제3공화국 이르는 군사정부 시기와 그 이후에도 얼마간 이어지는 시기 동안 국가 권위를 형태적으로 표현하는 후기 모더니즘 계열의 공공 건축물도 지어졌다.



대전의 대표적인 도심공원인 테미언덕에 세워진 옛 테미도서관 역시 이 같은 흐름 속에 1979년 12월 건축됐다. 시가 주도하는 공공 건축물, 특히 시민의 문화활동을 위한 공공시설이라는 상징이 부지 선정은 물론 건축의 시·지각적 요소들을 과장하고 변주하며, 리듬감과 비례를 추가하여 미적 감각을 배가시키는 방식으로 자신만이 건축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대전시는 이 옛 테미도서관 건물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문학관으로 변신시킬 예정이다. 묻혀진 지역의 우수한 건축유산을 밝은 눈으로 발견해 내고, 그것의 역사를 다시 이어주는 선택을 한 대전시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담대한 건축적 실험과 그 여정을 시작하는 옛 테미도서관에도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그렇게 역사는 이어진다.

/황민혜 대전시 문화재전문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이응다리+중앙공원'서 빛의 향연...22일 개막
  2. 우송정보대 간호학과, 재학생 위한 '취업 멘토링 프로그램' 개최
  3. 대전대·건양대·목원대 SW중심대학 사업단, 지·산·학 협력 활성화 위해 맞손
  4. (사)충남지역혁신사업단, 나사렛대 평생교육원과 업무협약 체결
  5. 건양대 인공지능학과 'KAICTS 2025 추계학술대회' 최우수논문상 영예
  1. 조승래 국회의원, 충남대 후배들과 만나 소통
  2. [기고]성암 이철영 선생의 사불응(死不應)과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생불환(生不還)
  3. 배재대 IPP사업단 2026년도 일학습병행 참여기업 모집
  4. 대전과학기술대, 한국스마트혁신기업가협회와 산학 협력 강화 협약
  5.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헤드라인 뉴스


대전 특화 방산기술 유럽시장서 `호평`…수출상담 성과

대전 특화 방산기술 유럽시장서 '호평'…수출상담 성과

대전 방산기업들이 동유럽 시장에서 1521만 달러 규모의 수출 상담 성과를 올렸다. 한화로는 223억 4195만 원에 달한다. 21일 대전테크노파크에 따르면 지난 13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방위산업 기술 비즈니스 교류'에서 대전 지역 7개 방산·드론 기업이 이같은 결과를 냈다. 이번 상담회는 대전TP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공동으로 방산 사절단을 파견해 진행한 1대 1 비즈니스 상담회로,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에서 개최됐다. 폴란드는 최근 동북 지역 국경 안보 강화에 나서며 국방예산을 확대하고 군 현대화를 추진하고..

3·8민주의거사업회, 기념관 운영 맡아 민주 교육과정 연다
3·8민주의거사업회, 기념관 운영 맡아 민주 교육과정 연다

대전3·8민주의거기념사업회가 내년부터 3·8민주기념관을 직접 운영하며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 교육프로그램 신설을 준비한다. 20일 대전시와 (사)대전3·8민주의거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4일 개관한 중구 선화동 3·8민주의거기념관을 그동안 대전시가 직접 운영하던 것에서 기념사업회에 운영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내년 1월 전환된다. 3·8민주의거기념관은 1960년 3월 8일 대전에서 시작된 고등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로, 당시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와 불의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나섰던 학생들의 용기와 희생을 상징하는..

한겨울에 피어난 봄...국립세종수목원 `제라늄 전시회` 개막
한겨울에 피어난 봄...국립세종수목원 '제라늄 전시회' 개막

연일 계속되는 초겨울 추위 속에서도 국립세종수목원 지중해온실에서는 봄을 미리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사장 심상택)은 11월 22일부터 2026년 3월 1일까지 국립세종수목원 지중해온실에서 제라늄 품종 전시회 '우린, 지금부터 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제라늄전문협회와 협업해 진행되며, 약 350종의 제라늄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제라늄은 남아프리카가 원산지로, 화려한 꽃과 쉬운 관리로 한국 베란다 정원에 적합한 식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겨울철에도 꽃을 피워 봄을 미리 준비하는 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