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문학작품에서 만난 한국의 대표적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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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문학작품에서 만난 한국의 대표적 여인상

김선호 한밭대 명예교수·전 인문대학장

  • 승인 2023-08-02 10:54
  • 신문게재 2023-08-03 19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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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명예교수
필자가 한국인이라서 그러하겠지만 우리 한국의 여인, 아내, 어머니는 참으로 슬기롭고 지고지순하며 담대하고 아름답다고 늘 여겨 오고 있는 것이 솔직한 피력이다. 특히 역사를 빛낸 여인상들을 보면 더욱 견고해진다. 모계사회나 부계사회, 과거나 현재도 여성의 역할과 재기가 뛰어나다.

고려가요의 백미요, 우리 고전문학의 꽃이랄 수 있는 '가시리'를 천착해보자.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난/ 바라고 가시리잇고 나난//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잡사와 두어리마나난/ 선하면 아니올세라//셜온님 보내압노니 나난/ 가사난 닷 도셔 오쇼셔//

결론부터 말하면, '가시리' 여인은 참으로 슬기롭기가 그지없는 여인이다. 사랑하던 사람이든, 일부종사의 연을 맺은 낭군이든 그 이유야 무엇이든 굳게 믿었던 님이 떠난다 한다. 참으로 속 좁은 인간이고, 배신의 인간이고, 야속한 사람이다. 4연 8구체의 이 노래에서 일단 이 여인은 오만 정을 잃게 만든 상대에게 '가려느냐, 나를 두고. 날 더러는 어찌 살라하고 떠나려느냐' 하며 1.2연 4구에 걸쳐 애소 해본다. 상대의 뻔한 속은 다 읽으면서.



우리가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익히 보아온 것과 같이 떠나려고 작심한 사람은 못 말린다. 그 어느 누구도. 그런데 계속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피해자만이 겪는 큰 수치일 뿐이고 보다 추해질 뿐이라는 것은 지난 날의 이 나라 이별사의 대세였음을 잘 안다.

보라. 우리의 참으로 영특한 '가시리' 여인은 낚시꾼이 다 잡은 고기를 일부러 힘 빼기 위해 줄을 풀어준다. 이렇듯 어치피 떠날 사람 '슬기롭게' 보내준다. 말로는 붙잡아 둘 수도 있고 떼를 쓸 수도 있지만 서운하게 여기시오면 아니 오실까 두렵다는 밑밥을 깔아 놓는다.

문제는 4연 첫 구의 '셜온 님'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도식적으로 피 교육자에게 주입되는 '주체'는 '버리고 떠나는 님'으로 설정된다. 일단은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숙고해 보라. '어떤 얼치기가 자신이 버린 여인에게 떠나자마자 다시 돌아오겠는가' 만일 이런 얼치기가 연인이요, 낭군이라면 여인이 먼저 이 나약하고 못난 상대를 혼내 주고 버려야 마땅하리라. 사실 별리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는 주체는 통속적으로 볼 때 여인이다. 그러나 피해를 당하는 주체의 슬픔이 곡진하면 나만 서러워하고 마음 아파해서 과연 나에게 무슨 득이 되겠는가. 나를 버리고 간 사람은 나의 피 멍든 가슴도 모른 채 행복에 젖어 있을 진데. 이리되면 슬픔의 주체를 피해자인 '나'에서 '가해자'에로 넘기게 된다. 왜 떠나간 너 때문에 슬픔의 나날을 보내야 해? 천만의 말씀. 정작 슬픔의 대상이 될 쪽은 '너'가 돼야 하는 감정의 옮김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자리바꿈'이다. 그래야만 '어떤 이유로 떠났든 가시자마자 곧 돌아서서 오십시오' 라는 4연의 7.8구가 매끄럽게 풀이가 된다.

참으로 '가시리' 여인의 슬기 놀랍지 않은가. 세월을 낚는 강태공 심리. 낚싯줄 당겼다 풀어줬다 하는 영특한 심리. 치맛자락의 너른 마음. 실로 속 좁기 바지 끝만도 못한 남정네를 좌경천리안으로 끝내는 제자리로 돌려놓는 절의는 아마도 한국의 여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 DNA가 아닐까.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 없듯이 문학은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 우리의 문학작품을 통해서 우리 한국여인의 우수성과 슬기로움, 자애로움과 인내와 강건함과 절의를 보았다. 우리의 이러한 훌륭한 여인 특히 아내, 어머니들이 있어 이 나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진솔한 견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잘되는 집안은 아내와 어머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수고와 희생 공로가 필연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사시만 해도 그렇고 교육계 언론계 국방 예술 체육 모든 분야에서 한국을 빛내는 면면들은 대다수 우리의 우수한 여성들이다. 그러므로 현재, 아니 미래까지도 이 나라의 발전과 도약은 우리의 여성 특히 아내, 어머니들이 어떻게 중심을 잡고 슬기롭게 이끌어 나아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김선호 한밭대 명예교수·전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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